46번째 푸른 봄
“제발 저에게도 가르침을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며 춘재는 대뜸 머리를 바닥에 대며 큰절을 올렸다. 가운데 자리에 앉은 필호는 안경을 고쳐 쓰며 한숨을 내쉬었다. 영순의 집에서 열리는 공부방에까지 이렇게 제 발로 찾아올 정도로 춘재는 적극적이었다.
“알았으니까 그만 가서 앉아라. 다음부터는 교재도 챙겨 오고.”
필호는 춘재의 합류를 의외로 순순히 허락했다. 필호의 허락에 영순과 광철은 반발했다. 쥐방울만 한 애송이를 손 봐줬더니 이제 같은 공부방 멤버가 되어야 한다니. 그러나 배움에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필호의 단호한 반응에 꼬리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영순네 공부방 정예 멤버는 영순, 광철, 향미, 동오에 춘재까지 더해져 다섯 명이 되었다.
춘재는 의외로 공부방에 합류하고 나서 처음과는 달리 형들과 누나들에게 딴지를 걸기는커녕 꼬리 흔드는 강아지처럼 졸래졸래 따라다녔다. 춘재는 영순, 향미, 동오보다 두 살 어려 막내 노릇을 톡톡히 했다. 처음에 꼬장꼬장 말대답하며 기어오르던 춘재가 낯설게 보일 정도였다.
“그 녀석 되게 웃긴단 말이지. 딴따라니 뭐니 까불 때는 언제고 참 나.”
“뭐시 그라믄 그 놈이 그리 눈에 밟히디야?”
연습 전 기타를 무릎에 얹고 손끝으로 줄감개를 천천히 돌리던 광철이 어딘가 언짢은 듯이 영순에게 물었다. 광철은 게스트로 출연하기로 한 축제 공연이 코 앞으로 다가와 기타 연습을 할 겸 양동레코드에 와 있었다. 영순은 숙제를 한단 핑계로 그 자리에 가 있었다. 그런 이유가 없어도 양동레코드에 둘만 있던 때는 많았지만. 어느 정도 기타를 조율했다 싶었는지 광철이 한 번 기타의 여섯 줄을 한꺼번에 튕겼다.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교과서를 펄럭이던 영순이 광철을 건너보며 말했다.
“오빠. 기타 조율 다시 해야 되는 거 아냐?”
“왜? 어디 안 맞나?”
“소리가 안 맑고 울리는 게 살짝 어긋난 거 같은데?”
“역시 느는 귀가 짝다 그라제~”
광철은 그렇게 웃으며 통기타를 들어 귀를 바짝 대고 한 줄씩 페그를 돌리며 음이 같은 소리가 나도록 미세하게 맞췄다. 그 모습을 약간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영순이 다시 교과서를 보려던 순간이었다.
“와, 그런 건 어떻게 아는 거래요?”
춘재가 목재 테이블 아래에서 불쑥 튀어나와 순진한 얼굴로 질문했다. 그에 까무러치게 놀란 영순과 광철은 모두 자지러졌다.
“너, 너 뭐야? 여긴 어떻게 왔어?”
“광철이 형님이랑 영순이 누님이 여기 자주 오길래 따라와 봤죠. 여기 누구나 오는 감상실 아닌가요?”
춘재의 말이 원칙적으로 틀린 건 없었기 때문에 영순과 광철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 양동레코드는 광철의 아버지 창화의 오랜 친구가 운영하는 작은 음악 감상실로 오랫동안 영순과 광철의 아지트였다. 또한 광철만의 개인 연습실과 마찬가지인 공간이었다. 광철은 춘재가 그런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사실에 불쾌했다.
“여그 아무나 올 데 아녀. 볼 일 없으면 얼른 나가불어라.”
영순은 그런 광철을 보고 흠칫 놀랐다. 그처럼 싸늘하고 냉정한 모습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순이 본 광철은 언제나 여유롭고 모두에게 잘 웃는 사람이었다. 춘재 역시 그런 광철을 보고 겁먹었는지 움츠러들었다.
“죄, 죄송해요. 저, 전 그냥 노래를 배우고 싶은데 마땅히 배울 데도 없고….” “광철 오빠. 야박하게 왜 그래. 노래에 관심이 생겼다고 하잖아. 무슨 노래가 좋은데?”
영순은 춘재가 음악을 배우고 싶어 그랬다는 말을 듣고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 그런 영순을 보고 광철은 왜인지 모를 섭섭함을 느꼈다. 누구든 노래가 좋다고만 하면 영순은 두 팔 벌려 환영할 모양새였다. 하지만 유치하게 그런 감정을 겉으로 티 내기는 어려웠다.
광철은 또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춘재는 음악에 소질이 있었다. 그가 영순에게 가르쳤던 기본적인 발성 기술이나 악기 연주 기법을 금방 터득했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금방 실력이 쑥쑥 늘었다. 영순은 그런 춘재를 보고 뿌듯했다.
하지만 양동레코드에서 계속 수업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춘재 때문에 공연에 앞선 개인 연습 시간을 방해된다며 광철이 불쾌함을 표시했기 때문이었다. 영순은 평소에는 다정하고 상냥한 광철이 왜 춘재만 얽히면 그렇게 화를 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춘재에게 영순과 둘만의 시간이 빼앗기는 게 싫었던 광철의 속마음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영순의 음악 교실은 춘재 아버지가 운영하는 ‘빛고운 세라비’에서 이어졌다. 처음에는 노래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춘재의 궁금증 해소를 위해 시작된 음악 교실이 입소문을 타 이를 들으러 다방에 오는 손님들도 생겼다. 그에 다방 사장인 일봉은 영순에게 이순신 장군이 그려진 500원 화폐를 건넸다. 1970년 기준 500원이면 영순이 향미와 함께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순대를 실컷 사 먹고도 남을 만한 거액이었다.
“이, 이렇게 큰돈을 주신다고요?”
“아이고, 영순이! 니가 델꼬 온 손님들이 얼매나 되는디! 이 정도 돈 가지고 뭘 그래! 암시랑토 않아야!”
그렇게 일봉은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영순은 그 돈을 받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토록 좋아하는 노래로, 음악 관련된 일로 처음으로 두 손으로 벌어 본 돈이었다. 영순은 500원 지폐를 든 두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일봉에게 연신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다.
“아이다, 내가 더 고맙제. 영순이 네 덕분에 우리 춘재도 노래에 관심도 생기고 말이여. 니는 노래 아는 것도 짱짱하니 많고, 말도 참 곱게 혀. 나중에 어른 되면 우리 가게서 일허지 않겄냐? 보상은 이보다 훨씬 후하게 혀줄라니까.”
“참말요? 그래도 돼요?”
“그라제, 당연허지. 내가 너 등쳐묵어서 좋을 게 뭐 있겄냐?”
그 말에 영순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광주극장이 마치 예전에 화재로 잿더미가 되었듯이 폐허더미가 되었던 영순의 꿈에 다시 대들보가 세워지며 증축되기 시작했다. 가수로는 아니었지만 영순이 그토록 사랑하는 음악으로 먹고살 수 있는 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광주극장이 재건 후 성황리에 운영 중인 것처럼 새로운 판자를 덧대 보수한 영순의 배는 당장 어디로든 출항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광철의 추천으로 사 모으기 시작한 팝스 코리아나와 같은 음악 잡지나 무가지에서 읽은 정보를 풀어놓은 것만으로 이러한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하늘은 영순에게 하나의 행복을 주었으니 하나의 불행을 주기로 한 건지 이별의 시간을 주었다. 그다음 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갓 20살이 된 광철이 가수가 되기 위해 상경을 결심한 것이었다.
떠나는 광철을 배웅하기 위해 공부방 친구들, 광철의 가족들과 광주역 역사에 섰어도 영순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서울행 기차를 기다리면서 춘재를 제외한 모두가 광철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지었다. 특히 광철을 맘에 품고 있는 향미는 대성통곡을 했다. 영순은 혼자 무미건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양영순, 뭐혀잉? 오라버니 떠나는디 웃는 얼굴로 보내줘야제~”
광철은 그렇게 장난치면서 영순의 왼쪽 볼을 살짝 꼬집고는 흔들었다. 하지만 이는 도리어 영순의 눈물 버튼을 누르는 꼴이 됐다. 영순은 가까스로 목까지 차오른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꼭…. 꼭… 가수로 성공해야 해…. 음반 나오면…. 꼭 편지로 알려줘….”
광철은 별걱정을 다 한다면서 웃으며 영순의 등을 끌어안고 토닥였다. 일부러 춘재 앞에 정면으로 보이게끔 몸을 돌려서 한 팔로 영순을 거의 얼싸안았다. 춘재는 그 모습을 보고 차마 욕은 하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조용히 이를 갈았다.
광철이 서울행 기차를 타고 떠난 뒤에도 영순의 삶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아버지 필호와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대학 졸업 후 영순이 교사가 되길 원했던 필호와 졸업 후 곧바로 ‘빛고운 세라비’에서 일하고 싶은 영순의 꿈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너를 고작 다방 레지로 만들려고 이 아버지가 그 오랜 세월 먹이고 입히고 키운 줄 아냐?”
“그냥 레지가 아니에요. 사람들한테 노래에 대해 알려주고 또….”
“그게 그거 아니냐! 레지로 몇 년이나 일할 수 있을 거 같으냐? 레지 출신 며느리를 좋아할 집은 있을 거 같아? 그리 어릴 적부터 훌륭한 선생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거늘…!!”
“아버지가 반에서 1등 하는 한 다방에 가도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고등학교 3년 동안 한 번도 안 놓치고 1등 했어요! 이제 저도 어른이에요! 제가 살길은 제가 정해요!”
“하, 그래 네 황소고집을 누가 꺾겠냐. 그래도 교육학과는 가거라. 선생 자격증은 있어야지.”
결국 이 부녀는 이번에도 서로를 또다시 꺾지 못했다. 필호는 음악에 대한 영순의 꿈을 한사코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중학교 입학 직전 딸을 광주극장 화재로 잃을 뻔한 이후로 이전처럼 결사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정한 엄격한 조건을 지키면 영순이 음악을 취미로 좋아하는 정도는 허용했다. 영순은 필호에게 음악에 대한 열정을 얕보이고 싶지 않아 필호가 요구한 조건을 필사적으로 지켰다.
그래서 교육자의 꿈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전남대학교 교육학과에 진학했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학업과 다방 일을 치열하게 병행하며 졸업장까지 땄다. 그 사이 향미는 봉제공장 미싱사, 동오는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생, 춘재는 ‘빛고운 세라비’ DJ가 됐지만 이들이 뭉치는 중심지는 ‘빛고운 세라비’인 건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영순이 다방에서 바쁘게 서빙을 하며 돌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거기 예쁜 아가씨 여기 블랙커피 한 잔 줘요~”
“네… 조금만 기다리세요. 어?”
영순이 돌아봤을 때 모자를 푹 눌러써 얼굴을 반쯤 가린 훤칠한 남자가 의자에 걸터앉아 어깨에 맨 통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 남자가 연주하는 노래는 어딘가 이상했다. 기타를 잡은 지 3분이 족히 넘도록 전주가 끝나지 않았다. 그 연주곡은 데뷔곡부터 당시 한국 가요계에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독창성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순간 영순 앞에 마주 앉은 채 광주극장 휴게실에서 기타를 퉁기며 그 노래를 열창하고 있는 광철처럼 말이다. 그렇게 광철은 서울로 떠난 지 7년 만에 광주로 돌아왔다. 어느새 극장 휴게실은 광철의 공연을 보기 위한 관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노래를 끝마친 광철은 영순을 마주 보며 말했다.
“영순아, 넌 그저 그대로 오면 된다잉. 노래든 시든, 그건 내가 다 할 테니라.”
그동안 묻혀있던 과거의 기억을 되찾은 영순은 그런 광철을 보고 조용히 한 줄기 눈물을 흘렸다.
★ DJ's Pick
산울림-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1978년)
김창완, 김창훈, 김창익 3인조로 구성된 록 밴드 산울림 2집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의 타이틀곡. 산울림의 대표적인 명곡 중 하나로 한국 록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명곡 중 하나로 손꼽힌다. 6분이 넘는 노래 중 3분에 달하는 파격적인 기타 솔로가 한국 음악 역사상 최고의 전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이렌처럼 들릴 정도로 퍼즈 톤을 과하게 걸어 일그러진 톤으로 들리는 게 특징. 산울림만의 독창성과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잘 살린 명곡으로 평가받는다. 가사 또한 매우 시적이고 문학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