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시 - 소멸의 궤적
새벽이 넘은 골목길처럼
텅 비어있는 쓰레기통
철로 된 너를 실수로라도
건드는 그 순간에는
텅.. 텅..
차갑고 딱딱하게
절규할 것만 같아서
오늘 밤엔 내 마음도
텅 비어버린 네 속의
어두운 그림자 같다
그렇다고 너에게
악취 나는 것들을 들이 내밀수도 없고
축축하게 젖은 것을 들이 내밀수도 없고
네게 줄 마지막 선물이기에
핀 뽑은 수류탄을 준비하느라
마음이 조급하다
너를 정말로 아끼기에
검은 옷을 네게 입혀
끈적한 것으로부터 널 지키고 있는데
정작 너는 매섭게 뚜껑의 쇠턱을 열어
나를 바라보는 듯하다
태생이 그런 존재이다
너의 가치이자 너의 정의이자
너의 존재 이유이기에
너의 '쓸모'라는 숙명 앞에서
나는 방관할 수밖에 없다
너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은
수류탄과 함께
갈기갈기 찢어지고 불타올라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눈물 젖은 휴지의 먼지 한 조각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