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바람이 다녀간 자리
작은 발자국 하나가 남아 있었다
아무도 없던 그 고요 속에서
누구의 것인지 모른 채
나는 그 앞에 무릎 꿇었다
사라진 것들보다 남겨진 것들에 마음이 머물렀다
햇살은 아무 일 없단 듯 내려앉고
바람은 비밀을 감추듯 흔적을 덮고 있었다
나는 알았다
그것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는 걸
발끝에 남겨진 무게,
그날을 스친 체온,
잠시 멈칫했던 숨결,
그리고 조용한 망설임
마음속 어딘가 고요히 새겨졌다는 것을
말 한 줄, 시선 하나,
책 속에서 흘러나온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에 내려앉을 때
그것은 눈물이 되고,
별빛이 되고,
새벽 불빛이 된다
기록은 바람 되어 피부를 스며드는 말처럼
풀꽃 눈동자 속에 다시 피어
지워지지 않는 계절이 된다
파도도 닿지 않는 해변의 가장 깊은 곳
그곳에 남겨진 마지막 걸음 하나
누구에게 닿기 위한 시작일까
침묵보다 두꺼운 기록은
바람결에 실려 발자국 곁을 떠돌다
마침내 이슬 한 방울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