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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낌의 윤리

– 창작자의 양심과 저작권 보호의 본질

by 아이언캐슬



문장을 쓸 때, 우리는 가끔 멈춰 선다. 마음속에서 또렷하게 떠오른 구절이지만, 어딘가 익숙하다. 손끝이 주춤하고, 마음속에서는 조용한 저항이 일어난다. "혹시, 이건 어디선가 본 문장이 아닐까?" 이 작은 의심, 거리낌은 창작자가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윤리의 문턱이다. 우리가 저작권을 논할 때, 조항이나 규정보다 앞서 짚어야 할 것은 바로 이 거리낌이라는 감각, 즉 창작자의 내면에서 작동하는 윤리의 시계다.

창작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예술을 자연의 모방이라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넘어서 모방을 인간의 본능이자 카타르시스의 출발점이라 보았다. 현대에 이르러 창작은 더 복잡해졌다. 이제 우리는 창작을, 감정과 기억, 이미지와 단어의 파편들이 무의식의 심연 속에서 재조립되어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과정으로 본다. 즉, 창작은 완전히 새롭다기보다는 '새롭게 다시 말하는' 일에 가깝다.

그렇기에 창작자는 언제나 의심을 품는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문장은, 진정 나만의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흔적을 무심코 베껴낸 것일까? 창작은 자문으로 시작되고, 거리낌으로 점검된다. 작가는 기억의 파편을 꿰매고 조율하면서도, 그 조각들이 자신만의 감정으로 공명하는지를 끊임없이 되묻는다.

그렇다. 거리낌은 창작자의 양심이 내는 첫 번째 목소리다. 그것은 때로 불편함이고, 때로는 창작을 멈추게 하는 불안이다. 하지만 그 감각이야말로, 모방과 창작을 가르는 분기점이 된다. 창작자는 거리낌을 통해 자신이 쓰고 있는 문장의 기원을 탐색하며, 그것이 자기 고유의 감각과 호흡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살핀다.

법은 유사성을 판단하지만, 창작자는 정직함으로 창작을 판단한다. 저작권은 창작자의 손끝에서 시작되지만, 그 정당성은 창작자의 양심에서 비롯된다. 작가는 법보다 먼저 자기 내면을 들여다본다. 그 자문이 없는 글은, 아름다울지 몰라도 진실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AI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다. AI는 수많은 텍스트와 이미지, 언어 패턴을 학습하고, 그중 일부를 정교하게 재조합해 낸다. 겉보기에 놀라운 창작처럼 보일지 몰라도, AI는 그 문장에 대해 거리낌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이 누구의 말과 비슷한지, 혹은 누군가의 고통이나 기쁨을 복제했는지, AI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자신이 무엇을 만들었는지조차 모른다. 의미도 없고, 책임도 없으며, 윤리적 기준도 존재하지 않는다.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은 유사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창작'이라 불릴 수 있는가는 여전히 질문으로 남는다. 창작은 단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품고 살아갈 수 있는가?'의 문제다. AI는 그 글 속에서 삶을 살지는 않는다. 그 문장이 만들어진 이유도, 누군가에게 어떤 상처를 줄 수 있는지도 감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AI는 거리낌이 없고, 거리낌이 없기에 윤리도 없다.

우리가 인간 창작자에게 저작권을 부여하는 이유는 단지 결과물이 독창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창작자가 그것을 '의도'하고, '책임지며', '의미 있게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과정에는 거리낌이라는 윤리적 감각이 작동한다. 그 감각은 창작자가 자신의 글 앞에서 진실하게 머무를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다.

기억의 파편은 누구에게나 있다. 누구나 비슷한 단어를 쓰고, 유사한 장면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파편을 어떻게 꿰매고, 어떤 결로 엮어내는가는 창작자만의 몫이다. 누군가의 고백에서 울림을 느끼고, 그 울림이 다시 한 줄의 문장으로 피어났을 때, 그건 모방이 아니라 공명이다. 공명이란 나의 진실이 타인의 진실을 만나 울릴 수 있을 때 발생한다. 창작은 바로 그 공명을 믿는 행위다.

결국 저작권 보호란, 창작물을 둘러싼 소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창작자가 자신의 양심으로부터 출발했는가에 대한 보호다. 법은 글의 구조를 지키지만, 창작자의 양심은 글의 숨결을 지킨다.

창작은 거대한 영감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감각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자주 지나쳤던 문장, 오래전에 스친 감정, 이름 없는 기억들. 그것들이 우리 안에서 부서지고, 뒤섞이고, 다시 엮여서 한 문장을 만든다. 그 문장은 세상 어딘가에서 본 것 같지만, 단 하나뿐인 우리의 것이다. 왜냐하면 그 문장을 쓸 때, 우리는 망설였고, 멈췄고, 다시 적었기 때문이다. 그 거리낌이 남긴 흔적이 바로, 우리가 창작자였다는 증거다. 그것은 창작자가 자신의 양심으로부터 출발했는가에 대한 보호다. 법은 글의 구조를 지키지만, 창작자의 양심은 글의 숨결을 지킨다. 어떤 문장을 쓸 때, 마음속에서 작은 거리낌이 고개를 든다면 그 사람은 이미 창작자다. 그 거리낌이야말로, 저작권이 지켜야 할 가장 본질적인 성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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