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퍼 옆에서 발소리가 주저앉았다
당신이 돌아오지 않던 그 오후 이후로
바닥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낮은 창으로 비스듬히 들어온 빛이
현관 앞 슬리퍼를 길게 끌고 간다
한 짝은 벽을 향해 비켜서 있고
다른 한 짝은 문 쪽을 본다
마치 그날의 당신처럼
나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의 자세
되돌아오지 못할 사람의 방향
나는 그 옆을 조심스레 지난다
매번 지나칠 때마다
슬리퍼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멈춘다
당신의 마지막 말처럼
차마 끝내지 못한 문장처럼
가끔 나는
그 슬리퍼 앞에 발을 맞춰본다
당신의 발이 어디까지 들어갔을까
당신의 체온이 어디쯤에서 멈췄을까
그 흔적을 되짚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게 된다
시간은 벽에 달린 시계가 아니라
현관 바닥 먼지 속에 쌓인다
슬리퍼에 들러붙은 발자국 사이로
아주 천천히 흘러간다
당신이 떠난 이후로
나는 어떤 날도
온전히 집에 도착하지 못했다
이따금 밤이 오면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다
슬리퍼가 먼저 눈치채고
작은 소리로 몸을 일으킬 것 같다
그러다 다시 조용해진다
소리는 오지 않고
오직 정적만이 벽을 타고 흐른다
슬리퍼는 여전히 거기 있다
아무도 신지 못하는 형태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당신이 다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면을
무릎이 약간 굽은 자세로
익숙하게 슬리퍼를 신는 동작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방 안으로 들어와
물 한 잔을 마시고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을
그러나 그런 상상은
늘 슬리퍼 앞에서 멈춘다
그건 문턱을 넘지 못한 그리움이고
몸을 지니지 못한 기억이다
나는 이제 안다
이 기다림은
돌아옴이 아닌
남겨짐이라는 것을
슬리퍼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바닥에 붙은 채 말을 잃은 표정으로
그 옆에 나는 조용히 앉아
오늘도 당신 없는 하루를 신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