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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회에 대한 인지의 변화

thanks to Plestia Alaqad

by 까마귀의발
플레스티아 알라콰드. 팔레스타인 기자

'The eyes of Gaza'라는 책을 쓴 플레스티아 알라콰드를 나는 나의 2인 팀원으로 선택했다. 내가 이곳에서 종종 여자친구라 부르는 팔레스타인 현지 기자다.

팔레스타인을 거의 점령한채 봉쇄와 공격을 몇년째 하고 있는 시오니스트들의 눈을 피해 중간책을 통해 지원금을 전달하고 있다. 다소 일방적인 관계같지만 이런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없는 선물을 주는 것이 나로선 최선의 투자이고 최고의 선물임을 전부터 말해왔다.

몇해전에 터키, 시리아 대지진이 나서 두 나라에 텐트,침낭 등 구호물자를 보낼때는 구호물자준비에 각각 100만원정도씩 들었지만 일회성에 그쳤다. 시리아에 소포를 보내는 일이 그당시도 미국이 봉쇄정책을 펴는 나라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직접 보내는 루트가 없어서 레바논의 중간책을 거쳐야해서 좀 복잡하고 소포비용도 박스 두개 부치는데 30만원도 넘게 들었지만(총 130?) 그건 오히려 간단한 일이었음을 이번에 알게되었다.

이번에는 학살-인종청소가 진행중인 국가의 피난이재민인 그녀를 대상으로 몇개월째 수백만원을 사용하고있는것이다. 지원을 시작하고 2-3개월쯤 지나서 며칠에 한번 50~100달러씩 지원한 지원금액이 2천달러를 넘어가면서부터 난 내가 그녀에게 총 지원한 금액이 얼마인지 세는일을 그만두었다. 300만원은 넘은것같고 3000달러를 향해가고있는것 같다. 생활비 통장에 빨간불 들어왔다고 지원중단을 여러번 선언했지만 처참한 현지사정을 전해듣거나 외국기사를 통해보고('진실을 알려면 영어을 배워야 한다') 나는 지원을 중단하는데 실패했다.

세상에 부자도 많고 부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중산층들도 수도없이 많은데 당신은 책도 쓰고 약간의 명예도 있으면서 왜 나한테만 의지하려는건지 한번 물어봤는데 다른곳에서는 지원금이 끊겼다고 말했다. 나는 그말을 듣고 다시 또 말없이 70달러를 보냈다. 행운의 7이란 숫자다.

살다보면 아무리 잘나가는 혹은 잘나가던 사람이라도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을 수 있다. 군중속의 고독이란 말처럼 혹은 대중적 유명스타가 혼자있을때 느끼는 고독감처럼 인기가 많고 잘나가는 유명인이라 하더라도 한 사람이 아쉬울때가 있을수 있다. 이런 점을 알고있는 나는 그녀의 얼굴도 직접본적 없고 목소리를 들은적도 없으면서 그녀의 온라인 말만 믿고 계속해서 나름의 정성으로 그녀를 지원하고 있는것이다. 한번 팀원으로 선택하면 중간에 싸우고 깨지지 않는한 잘 버리지않는 습성이 있다.

물론 도로에서 차에치인 개를 데려와 치료하다 다리에 붕대감아주던 중에 물린적이 있다. 물리면 나도 성격이 있어서 가만히 안있는다. 그땐 개를 때렸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얼마뒤 화해하고 환자인만큼 심하게 때리진않고 버리지도 않는다. 다쳤는데 버리면 갈곳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싸우고나면 놓아준다. 나없이도 잘 살수 있겠다 판단되면 미련없이 관계를 놓는다. 몇개월전엔 내가 다니던 산에서 실종사고가 발생하여 구조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다행히 실종자가 구조되었고 얼마뒤 그 산의 지리를 잘알고있어 구조에 증요한 역할을 했던 나에게도 구조된 노인네가 직접 찾아오신적이 있다. 하지만 나중에 일이 어떻게해서 그렇게 꼬인건지는 모르지만 내 지인말로는 주변에서 나에대한 악소문이 퍼졌다고 한다. 내가 이 노인분한테 사례를 강요했다는 것이다. 수색활동에 나도 며칠간 구조팀 일부를 컨트롤하며 개고생을 한뒤에 구조소식을 듣고 기뻐했고 직접 인사까지 받았던 나였지만 지인을 통해 그 얘기를 듣고서 너무 황당해서 지인에겐 그런적없다 말하고 이 사건과 관련된 새로 알게된 사람들 번호를 전부 지웠다. 사람이 구조됐다는 기쁨에 구조과정에서 실종자의 성격파악하느라 소통했던 자녀분한테 나중에 꼭 같이 차한잔 하자고 말했던게 누군가의 귀에는 보답을 요구하는 강요로 들렸던 것이었는지. 아무튼 사례는 노인네가 찾아왔을때 책 한권 준게 전부였지만 내 성격상 그런말을 들은이상 책도 곧 찾아내어 난로땔때 불태우고 번호는 지웠다. 이렇게 사람의 번호는 심심치않게 지우는 편이다. 나없이도 그리고 오히려 그렇게 하는게 상대도 더 잘 살아갈 것이 판단해서이다.


하지만 플레스티아는 그렇지 않았다. 기자이고 책까지 냈지만 전쟁의 고통, 이재민의 고통, 굶주림 속에서도 그 많은 사람들중에 계속해서 돕는사람이 현재 나뿐이라고 한다. 배고파서 잠이안온다는 말을 듣고 난 내가 그동안 믿어왔고 안다고 생각해왔던 현대 인류사회에 대해 여러번 다시 생각해보아야했다.

내가 이과생 출신으로 지구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건 20대 후반쯤이고(스무살 대학입학때 내가 쓴 기록을 보면 당시 관심이 어디쯤 있었는지 추측할수 있는데 그 당시 쓴 기록은 '현실이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였다) 현대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라는걸 알게된건 30대쯤으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매우 많이 늦어져서, 현실파악이 40을넘은 이제서야 되고있는 것 같았다. 여러 깊고 멋진 사상들과 책, 문학 음악 미술 등의 예술, 그외에 인류가 이루어낸 문화의 수준은 상당히 높은 편이라서 그에 반해 인류사회의 역사가 힘센박테리아가 약한 박테리아를 잡아먹는 수준의 냉혹하고 비정한 전쟁의 역사라는 사실, 그건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게 혹은 보이지않게 계속 진행중이라는 사실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것 같다. 이제야 비로소 화려한 인류문화라는 등잔 밑의 어둡고 참혹한 동물로서의 인간들을 이해하기 시작한것 같다.


물론 인간의 학명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란 말속에 동물이란 단어가 들어간다는걸 알고있었지만 생각하는 동물,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 등 단순한 동물 이상으로 어딘가 '인간다운' 면모를 가진 특별한 동물이라 생각해왔고 약육강식의 저열하고 수준낮은 정글의 동물적 특성은 어쩌다 범죄시에만 우발적으로 혹은 특정 사람이나 단체에서 가끔씩만 일어나는 특이현상 정도로만 생각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점에 바로 내가 요새들어 일어나는 일 -가령 스물몇살 먹은 예쁘장한 여기자가 '배고파서 밤에 잠이 안온다'는 말을 하고 나는 그점에 대해 한참을 생각해보게된 이유가 있다. 인간이란 '생각하는 동물', '문화를 가진 동물' 들의 생각 혹은 문화 같은 면만을 주로 바라보느라 '동물'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온 것이다. 박테리아, 아메바, 개구리나 사자들과 별반 다를바 없는 동물적 특성들이 인류사회의 저변에서 꽤 깊고 폭넓게 현재까지 흐르고있다는 사실.

이런 사실의 인지는 문화예술이나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속에서 자기계발에 투자해야할 비용을 몇개월간 몽땅 외국 전쟁기근지원에 털어넣고 술마시고 외국여행같은건 꿈도 못꾸고 가까운데만 돌아다니는 등 여가와 자기계발 활동이 축소된 나로하여금 그 어떤 자기계발이나 투자보다도 한층 더 깊은 나로선 새로운 인지의 지평으로 나를 이끌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했던 소크라테스에 감동받으며 스스로도 인류최고의 지성의 반열에 들어섰다고 생각했던 스무살 무렵보다도 지금 더 깊고 낮은, 인간사회의 동물적 모습들에 대한 이해에 비로소 도달하게 된 것이다. 꽤 오래걸린것 같다. 나이가 40이 넘었다.

인지의 변화는 어느날 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고 중2때 이러한 변화때문에 학교 자퇴를 시도했던 때처럼

앞으로의 생활에도 무언가 변화가 있을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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