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유, 평등,우애를 위한 행위를 하고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
*'자유, 평등,우애'는 한국에서도 헌법의 기초가 된 프랑스혁명의 3대 기조로 사람들에게 '자유, 평등, 박애'로 잘못 알려졌지만 원어 Fratenite는 우애 혹은 동지애로 번역해야 맞고 박애는 틀리다. 인권혁명의 기조였고 한국에서도 헌법의 기초가된 개념인 만큼 중요한 내용이라 잘못된 교육내용을 어느날 시정할 필요가있다.*
나는 어떤 글을 쓰고싶냐고 누군가 물었다. 그 누군가는 작가분이다. 이미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져보고 새로 알게된 나에게도 그런질문을 던질줄 아는 그분은 예리한 성찰자셨다. 간단한 물음인것 같은데 답이 안나와서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고 먼저 왜 답이 쉽게 안나왔는지 생각해보았다. 그 결과 그런 질문은 한 사람의 세계관, 가치관과 직결된 문제로 나는 무엇을 위하여,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고싶은가의 문제와 직결되는 결코 쉽지않은 물음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주로 써오던 써지는 대로 쓰는 글이 아닌 쓰고 싶은 글에 대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가님은 또 나의 행동들에서 비춰진 나를 보고 '세상을 소비하는 사람이 아닌 세상을 직면하는 사람'이라는 평을 남기셨다. 평범한 한국어로 되어있었지만 나로선 무슨말인지 이해하는데 거의 하루종일 걸렸다. 지금의 나는 과연 세상을 직면하려 했던 사람인가, 미래에도 정말 그럴까?생각해본 결과, 그랬다. 이 작가님은 매우 예리하고 깊이있는 성찰을 바탕으로 상대를 파악하고 있었고 나의 앞으로 나아갈 경로 또한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파괴에 대한 글을 쓰고싶다. 우주를 파괴한다는 인도의 시바신처럼, 파괴력을 가지고 기존 사회의 부조리와 스스로의 부조리를 파괴하고 싶고 그런 일들에 대해 쓰고 싶다.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한 기록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차후 스스로의 행동 방향과 방법을 설정하기 위함이 더 크다. 운이 좋다면 다른 누군가, 특히 벗이라 할만한 뜻을 비슷하게 하는 누군가에게 보여져서 그들의 단 하루의 삶이나 혹은 하나의 행동에 도움이 될수 있다면 더할나위없이 좋겠지만 지금은 거기까지 기대하진 않는다. 난 지금, 나와 나의 벗들은 지금 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다운 생존을 위해 거의 발버둥치는 수준에 있기 때문이다. 나의 글이 절규에 가깝게 들리지 않는것은 아직 나에게 간절함이 부족하고 지쳐있고 나의 행동의 수준이 미미하고 사고력과 표현력이 미숙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미 타자들에 대한 사회적 성공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브런치활동을 시작할당시 나의 원래 목표치였던 '구독자수10명 미만'에 비해 나는 이미 목표를 5배나 초과 달성했다. 1020때 이미 주변에서 인정을 받는 나름의 사회적 성공을 맛보았다. 현재로선 타자의 인정과 사회적성공이 나에게 필요한 이유가 있다면 그건 더 넓게 사람들을 이해해감과 동시에 나의 행동을 하기위한 목소리들의 모음, 그리고 나의 행동과 목소리가 필요한 벗들에게 전해지기위함 정도겠다.
오늘은 나무 전지작업을 하고있다. 나뭇가지를 톱이나 전지가위로 자르거나 도끼로 팬뒤 장작불에 집어넣고있다.
'주경야서'가 나의 희망사항이다. 낮에는 그렇게 몸과 마음으로 일을하고 그 전후로 아침이나 저녁에 글을 쓰는 것이다. 파괴에 성공한 것들을 장작불 같은데 집어넣어 불같은 뜨거운 열기와 빛으로 바꾸고 싶다. 죽어가는 착하고 귀여운 존재들이 살아나 다시 활동하면서 피어나는 환한 웃음소리 같은것, 그들의 피어나는 웃음같은 꽃을 보고 그들의 노래를 듣고싶다.
새키우다 새에게 물려서 그들의 엄청난 저작력을 확인하고 새를 쥐어박기도 하는 일과는 별개로, 새들에게 모이를 주면 이들의 울음소리가 최소 1킬로 밖에서도 들릴정도로 크게운다. 오늘 아침엔 일어났더니 근처의 한강에서 백조들이 떼지어 우는소리가 들렸다. 겨울이와서 백조들이 이 근방의 한강을 지나다 며칠 머물고 있는것인데 다른 새들과 마찬가지로 아침이 오니 백조들도 시끄럽다 싶을정도로 떠들어서 그 소리가 1킬로이상 떨어져 자고있는 창문너머의 나에게까지 들렸다. 내가 키우는건 아니지만 국가보호종으로 지정되어 사냥꾼의 총을 신경안쓰고 마음껏 떠들수 있는 것이다.
앞의 글에서 여러번 썼듯 선사시대와 별반 다를바없는 이 야만적이고 부조리로 가득한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 착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억눌리는 자유를 확보하고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는걸 알고 실천하고, 그리고 이런생각에 대해 뜻을 같이하는 알던 모르던 어딘가의 동지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행위를 하고싶고 그에 대해 글을 쓰며 그들과 대화하거나 그들의 웃음을 보거나 그들의 웃음소리를 듣고싶다.
이어서.
아까 낮에는 밖에서 웃옷을 다시 입었다. 나무 팬다고 몸에서 열이나서 웃옷을 벗었었기 때문이다. 느티나무 같은 나무는 엄청 단단해서 적당한 힘으로 찍어서는 쪼개지지 않는다. 겨울에도 더워서 옷을 벗어야할 정도로 힘껏 내리쳐야 겨우 쪼개지는 것이다.
몸과 마음의 그러한 열기를 조용히 가슴에 품고 되도록이면 너무 드러나지 않고 나의 일을 하고 그것에 대해 쓰고싶다. 내가 가진 열정을 스스로와 주변을 위해 사용하고 싶다. 그리고 억눌린, 죽어가는, 꽃피지 못한 모든 착한 사람들의 그와같은 열정을 이해하고 자유롭게 열어주고 꽃피울수 있도록 도와줄수 있었으면 좋겠다.
후쿠시마원전오염수 방류반대, 검찰개혁등 사회변화를 위한 노력, 학살과 억압으로 고통받는 먼 팔레스타인 친구를 위한 노력 등 내가해온 일들이 모두 그런 맥락인것 같다.
모두를 도울수 없고 또 크게 대단한 일을 할 여력도 없지만 10.20.30때 모두 열정을 가졌던 나 스스로와 그리고 같은 곳을 보고 같은것들을 관심 가지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기위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눈으로 그들의 눈을 바라보기 위하여 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