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리뷰
푸치니의 <투란도트>는 한국에서 대표적으로 사랑받는 오페라 중 하나인 만큼, 수많은 버전으로, 여러 차례 국내에서 공연되었다. 이번 오페라 <투란도트>는 세계적인 오페라 축제인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이 100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에서 하는 내한 공연이라는 점 그 자체로 큰 의미를 지닌다. 한국과 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맞아 이소영 단장이 이끄는 솔오페라단과 아레나 디 베로나의 협력으로 아레나 디 베로니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개막 오페라 투란도트가 한국에서 그대로 재현됐다. 이 버전은 천재 연출가인 프랑코 제피렐리(Franco Zeffirelli)에 의해 재탄생된 작품이며, 세기의 마에스트로 다니엘 오렌(Daniel Oren)이 지휘를 맡았다. 제페렐리의 투란도트는 1987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의뢰로 첫선을 보였고 이후 베로나 아레나 오페라에서는 2년에 한 번꼴로 무대에 오르고 있으며 전 세계 다른 공연장에서 자주 연주되고 있다. 그의 투란도트는 화려하고 웅장한 무대와 섬세하게 고증한 의상이 특징이다.
주로 국내에서 대형 오페라가 상연되는 공간은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이었던 만큼, 서울 잠실올림픽 체조경기장 KSPO DOME이라는 공간에서의 오페라 관람은 상당히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객석에 입장하자마자 보인 커다란 무대와 1,000명 규모의 출연진과 제작진이 참여한다는 사실은 큰 기대를 하기에 충분했다.
오페라 <투란도트>는 총 3막으로 구성된 오페라이며,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중국의 역사와 맞지 않으며, 서구적 관점에서 만들어진 전설과 같은 중국의 이야기이다. 아리아와 배경음악에 간간이 강소지방의 민요 모리화의 멜로디가 차용된 것을 제외하고는 중국적인 요소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자코모 푸치니의 유작으로 그가 작품을 작곡하던 중 사망하여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가 프랑코 알파노(Franco Alfano)에 의해 완성되어 1926년 초연되었다. 푸치니가 작곡한 부분은 3막에서 류가 숨을 거두는 장면까지이다.
1막은 중국의 한 광장에서 투란도트 공주가 자신이 낸 세 개의 수수께끼를 풀면 그 상대와 결혼할 것이나, 문제를 맞추지 못하면 사형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시작한다. 이때 타타르 왕국의 멸망 후, 떠돌이 생활을 하던 타타르 왕국의 왕자 칼라프와 그의 아버지 티무르, 그리고 그를 모시는 노예 류가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러다 투란도트를 우연히 보게 된 칼라프는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고 투란도트의 수수께끼에 도전하게 된다. 2막에서는 칼라프는 세 개의 수수께끼에 ‘희망’, ‘피’, ‘투란도트’라는 대답을 하며 모두 맞추게 되나, 투란도트는 분노하며 그와의 결혼을 거부한다. 이에 칼라프는 동이 트기 전까지 자신의 이름을 말하면 기꺼이 죽겠다고 공주에게 역으로 제안한다. 3막에서는 투란도트가 칼라프의 이름을 알기 위해 류와 티무르를 잡아 와 류를 고문한다. 그러나 류는 모진 고문에도 그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결국 칼라프를 위해 자결한다. 이에 칼라프는 분노하며 투란도트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해준다. 그러나 칼라프와 류의 행동으로 사랑을 알게 된 투란도트는 황제에게 칼라프의 이름을 알았다고 말하며 그 이름은 바로 ‘사랑’이라 말하게 되고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린다.
극의 시작은 징 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더불어 대규모의 군중이 무대 위에 올라와야 했던 만큼, 극은 이들이 모두 무대 위에 올라온 순간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 그들이 올라오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수많은 군중이 무대 위에 있었고,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상당히 멀었기 때문에 칼라프, 류, 티무르가 등장하는 것을 알아차리기에는 상당히 시간이 필요했다. 이는 주인공들에게 핀조명을 주지 않았기 때문인데, 핀조명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극의 사실감은 높아졌다.
무대를 사용하는 구조와 연출 또한 독특했다. 1막이 끝나고 2막이 전환되는 시점에 암전된 후, "지금은 막 전환 중입니다"라는 안내 문구와 함께 무대 세트의 전환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는데, 보통의 무대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2막 후반에는 무대에 세워져 있던 병풍이 양옆으로 열리며 등장한 왕궁의 모습은 탄성을 자아내며 그 화려함에 모든 감각이 압도될 정도였다.
무대는 민중의 공간이 거리와 왕궁의 공간으로 크게 나누어 전개되었다. 민중의 공간은 평평하게 진행되며, 민중들은 대부분 비슷한 눈높이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왕궁이 등장하는 순간은 민중의 공간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하게 되며, 왕궁은 위압적으로 위에 위치하게 된다. 왕궁의 위치가 무대 위에 사선에 자리하게 되면서 가장 위에 있는 왕과 칼라프, 공주는 아래를 향해 보게 되는 반면, 아래에 위치한 민중들은 고개를 들어 위에 있는 왕궁을 보게 된다. 이런 무대적 구조를 통해 당대 존재하던 왕궁과 민중의 상반되는 모습을 두드러지게 시각화했으며, 조명 또한 민중에게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왕궁 공간에만 집중적으로 사용했다. 이렇게 수평적 구조에서 수직적으로 변화하는 연출은 이 공연의 또 다른 백미였다.
다니엘 오렌이 이끄는 오케스트라 또한 훌륭하였으며, 류 역을 연기한 마리안젤라 시실리아(Mariangela Sicilia)의 노래는 완벽한 메사 디 보체를 보여주었다. 풍성한 성량으로 작게 소리 낼 때조차 큰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훌륭한 기량을 보여주었으며, 류의 절절하면서도 헌신적인 마음과 태도를 노래에 온전히 담아냈다. 칼리프 역의 마틴 뭴로(Martin Muehle) 또한 1막에서 풍성하면서도 깊은 소리로 관중을 사로잡았다. 사랑에 빠진 칼라프와 그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고, 수수께끼에 도전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위풍당당했다. 다만, 투란도트 역의 옥사나 디카(Oksana Dyka)의 경우 비음이 강하게 나, 전반적으로 노래가 날카롭게 진행되어 다소 아쉬웠다.
그럼에도 푸치니의 아름다운 음악은 관객의 청각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특히, 오케스트라는 칼라프의 주제곡인 <아무도 잠들지 말라>의 선율을 굉장히 잘 살려냈다. 이 선율의 반복이 계속해서 반복되면서 관객에게 확실하게 인식되었다. 이에 사랑을 믿지 않았던 공주 투란도트가 류와 칼라프를 통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드라마, 그리고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강조되며 푸치니 음악의 아름다움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무대 세트 그리고 수많은 앙상블의 조화는 한국 관객에게 국내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특별한 대규모 오페라 관람의 시간을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