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무용단 '내가 물에서 본 것' 리뷰
국립현대무용단(단장 겸 예술감독 김성용)의 신작 <내가 물에서 본 것>은 안무가 김보라가 선보이는 작품이다. 보조생식기술(ART, Assisted Reproductive Technologies)을 중심으로 현대 사회에서의 기술과 몸의 관계를 탐구하며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과 페미니스트 과학기술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몸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안무가 김보라를 중심으로 구성된 제작진이 오랜 기간 리서치와 세미나를 통해 제작한 작품으로 김보라의 보조생식기술 경험을 통한 포스트휴먼적 몸의 형상화를 펼친다.
김보라는 아트프로젝트보라의 예술감독 겸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몸의 탐구로부터 공간의 경계를 허물며 춤으로 시간예술을 말한다. 특히, 몸의 물리적 세계와 초월의 실재를 관계짓는 존재론적 안무와 포스트휴머니즘, 페미니즘 관점의 무한히 변하는 몸과의 관계성에 대해 연구의 시간을 갖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혼잣말>, <꼬리언어학>, <소무> 등이 있으며, 국립현대무용단과 함께 2021년 작품 <점.>, 2022-2023년 리서치 <동시감각> 등을 선보였다.
앞서 언급했듯, 본 작품은 김보라의 자전적 이야기에 기반하여 만들어졌다. 그가 몇 차례에 걸친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 느낀 몸에 대한 위치와 의심은 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했고, 몸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했다. 이에 본 작품 <내가 물에서 본 것>은 낯선 공생 속에서 ‘무한히 변화하는 몸’에 대한 이야기이며, 여기서 ‘물’은 물질 또는 문제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김보라는 작업에서 몸의 언어로 중립적인 상태(Neutral state)를 가장 많이 사용했고, 이를 통해 몸의 안팎을 구분하지 않았다.
보조생식기술 앞에서 여성의 몸은 시험관 시술이 행해지는 하나의 대상, 그리고 성공 여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물질로 전락한다. 이를 표현하듯, 무대 위에 오른 무용수들은 한 명의 무용수로서 자신의 신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 마치 하나의 물질과 같은 모습이었다. 무용수의 의상은 마치 세포를 떠올리게 했고, 그들의 반복되는 결합과 분리는 생명의 탄생을 위해 유기적으로 계속해서 결합하는 세포 같았다. 이 과정에서 무용수의 신체는 철저하게 대상화되었으며, 이들의 주체성은 사라졌다. 이것을 더욱 강조하는 것이 소리에 가까운 음악이었다. 처음 극이 시작하는 순간 대형 셀로판지에 몸을 비비고, 셀로판지를 날카롭게 뜯는 소음과 같은 소리에서부터 출발해 초인종 소리, 전화벨 소리와 같은 일상의 소리들, 그리고 클래식 소리 등이 들려오고, 이 모든 소리가 컴퓨터 알고리즘에 의해 실시간으로 조작되어 파편화되고 공간에 흩어진다. 즉, 소리는 무대 위 무용수들의 행동 혹은 춤이 진행되는 동안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배경음이나 음악으로서 기능하지 않고, 춤과 독립된, 또 하나의 다른 개체로 존재한다.
이러한 연출은 이 작품의 주제가 ‘시험관 시술’이 행해지는 ‘여성의 몸’이라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 ‘생명의 탄생은 과연 아름다운 것일 뿐인가?’ 하는 질문을 가감 없이 던진다. 2022년 한국의 신생아 10명 중 한 명은 시험관 시술을 통해 태어날 정도로 한국에서 보조생식기술은 만연해 있다고 한다. 난임 클리닉과 보조생식기술은 생명이 잉태되기까지 여성의 신체 안에서 일어나는 수천 가지를 넘어 수만 가지의 사건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사실상 이것은 실제로 겪는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혹은 경험한 이들을 제외하고는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과정보다 결과만 이야기하고, 생명 잉태와 출산은 단지 아름다운 것으로만 사회적으로 포장된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김보라가 실제 겪은 자전적 이야기에 기반한 만큼, 대상화된 신체의 움직임, 그리고 심지어는 이질적이고 불순한 것으로까지 느껴지는 움직임을 통해 이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마지막에는 한 명의 무용수가 날계란을 무작위로 집어 무대 위에 무작위로 난사한다. 이때, 앞서 서로 각기 다르면서도 동일하게 움직이는 컨택즉흥과 같은 움직임이 주가 되었던 것과 같이, 여기서는 우연성이 더욱 도드라지게 강조된다. 여러 번의 시험관 시술의 결과가 여러 차례 실패로 끝날 수도 있음을 청각적으로 계란이 깨지는 소리를 강조해 드러냄으로써 여성의 신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우연적인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과정은 마치 김보라가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시험관 시술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누군가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치유와 위로를 전하는 듯하다.
좋은 음악만이 사람의 상처받는 마음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다. 자전적인 이야기, 그리고 그 안에서 느꼈던 창작진의 수많은 고통과 상처, 치열한 고민과 자료 등이 합쳐져 만들어진 ─ 본 공연의 프로그램 북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 무용 <내가 물에서 본 것>은 지금 이 시대 난임으로 고통받는 이들, 그리고 더 나아가 무언가를 원하지만, 신체적으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이들에게 ‘몸의 움직임’, 즉 춤을 통해 관객을 따스하게 안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