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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밤

'푸른 밤' 코멘터리

by 쓰다 Xeuda

매미소리와 함께 푸른 밤이 시작됩니다. 통기타의 근음만 사용하여 조금은 무겁고 더운 느낌의 반주가 몇 마디 이어지고 ‘푸른 밤, 더운 바람이 불어오던 어느 날’을 이야기해요.


사진 | 열매 @nevertheless_pic


이 곡의 편곡은 [남겨진 것들]과 [꿈, 칼, 숨]의 프로듀서였던 박진호 님과 함께했습니다. 저는 곡을 만들며 가볍고 산뜻한 대화, 한여름 초저녁의 선선한 더위, 나른하게 멈춰있는 시간 등을 상상했는데요. 프로듀서님은 저녁노을, 쏟아지는 별빛, 새벽을 지나 다시 찾아오는 낮의 모습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처음 편곡을 이야기하면서 제가 상상했던 그림과 조금 달라 고민이 되기도 했는데요. 덕분에 곡의 다이나믹이 훨씬 더 풍부해지는 것 같아 결국 프로듀서님의 의견을 받아들이며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경쾌한 리듬과 피아노 연주로 찾아오는 노을, 악기들이 쏟아지듯 빛을 내는 푸른 밤, 콘트라베이스와 첼로가 함께 만드는 새벽시간, 째깍째깍 끝없이 흐르는 시간을 담은 일렉기타까지. 그림처럼 그려지는 악기들이 푸른 밤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이내 다시 더운 바람이 불어오던 어느 날로 돌아오며 곡이 끝이 납니다. 편곡 과정에서 계속 이미지로 대화를 나누며 작업을 해서 그런지 완성된 곡을 들을 때면 한 폭의 그림처럼 제 안에서 음악이 펼쳐지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보통 보컬 녹음을 할 때엔 곡을 만들었던 당시의 상황과 마음에 기대어 노래를 하게 되는데요. 그때의 감정을 더 떠올려줄 수 있는 작은 상상을 더해 노래를 부르는 순간에 온전히 집중합니다. 기술적으로 잘 부르는 것과는 별개로 찰나의 몰입이 가져오는 ‘어떤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잘 불러도 어딘가 영혼이 빠져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고, 영혼은 담겼으나 너무 과해 노래를 못 부른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딱 맞는 느낌을 찾아 부르려고 하면 오히려 닿을 수 없이 멀리 가버리곤 합니다. 그렇게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온전히 몰입하여 지금 내가 있는 이 공간, 녹음실이 아닌 다른 어딘가로 가버린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요. 그럼 그때 보컬 녹음도 끝이 납니다. 마치 노래가 제 몸을 빠져나간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해요. “푸른 밤”을 녹음할 때도 그러했습니다.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를 노래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날의 개운함, 나른함, 편안함을 음악에 담고 싶었다고요. “푸른 밤”을 녹음하던 날 어쩌면 성공한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래를 만들던 날의 모든 감정과 이미지들이 제 안에서 들고나며, 시간이 멈춘 것처럼 편안하고 느긋했던 마음까지 전부. 4분 남짓 되는 저의 목소리 안에 싹 담아낸 기분이었습니다.


사진 | 열매 @nevertheless_pic


음악가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내가 만들어내는 음악과 듣는 이들의 마음이 돈으로, 별표로, 하트 표시로 환산되어 수치화되고, 주변 음악가들과의 비교가 너무도 쉬운 요즘. 내가 하는 음악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나에게나 듣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유를 찾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의문은 쉽게 해결되지 않고 늘 발치에서 저를 붙잡고 끈질기게 괴롭히고 있습니다만 푸른 밤을 발매하고 나서는 그런 마음이 들 때 종종 이 노래를 꺼내 듣습니다. 그럼 괜히 쌓여있던 고민과 불편한 마음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노래가 보내주는 어딘가에 잠시 다녀오는 기분이 들거든요. 그러고 나면 이 지난한 음악 활동에 분명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그냥 이거면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미지근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곡의 중반부로 가기 전 몇 번의 묵직한 콘트라베이스 보잉(Bowing:활을 사용한 연주)이 들어옵니다. 고래 소리 같은 느낌을 주려고 따로 부탁드려 녹음해 두었어요. 그런데 막상 곡에 넣어보니 너무 고래인 건 아닐까 싶어 프로듀서님께 슬쩍, “고래 소리 뺄까요?”라고 물어봤는데요. “왜요. 도마 생각도 나고 좋은데 뭐”라고 한 마디 툭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뒀습니다. 도마 생각도 나고 좋아서요.




여백이 많아 지금 여기의 여름 소리와 함께 듣기 좋은 어쿠스틱 버전의 "푸른 밤". 그래작가님이 그려주신 그림과 함께 유튜브에 업로드해 두었습니다. 한낮의 매미소리, 더운 바람을 느끼며 들어주세요!

https://youtu.be/-MMW_O_gptQ


그리고 보고 싶은 내 친구 김도마.

https://www.youtube.com/watch?v=par2iewvf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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