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20년 1월,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사회 초년생이었다. 당시 회사는 '코스피 1800선 붕괴'로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단지 회사 선배가 집 중도금 지불이 어려워졌다더라, 누가 1억을 날렸다더라 등의 이야기로 상황을 짐작할 뿐이었다.
그즈음 달리는 회사 차 안에서 사수가이런 말을 했다. "야 지금이 인생에 몇 없는 기회야. 무서우면 빚은 안내도 돼. 모아둔 돈 다 갖고 들어가. 풀매수해라." 농담반 진담 반으로 "빤쓰를 팔아서라도 한 주 더 사라"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나는 모아둔 돈도 별로 없었거니와 '적당히 벌고 적당히 쓰면서 적당히살자'라는철학을 가지고 있었기에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1년이 지나, 코스피는 3000을 돌파했고 내 사수는 큰돈을 벌었다. 내 회사 동기는 부모님께 빌린 5000만 원으로 시작한 갭투자로 2년 만에 몇억을 벌었다고 했다. 그 사이 서울경기 집값과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었다. 회사는 '높은 실적과는 별개로 코로나로 인한 불안정한 시장'을 이유로 임금 동결을 결정했다. 나를 포함한 직원들은 분노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많이 허탈했다. 적당히 벌어서, 적당히 쓰면서, 적당히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투자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느낀 것이다.
1. 투자를 시작하다
"성공적인 투자는 위험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관리하는 것이다" _ 제이슨 츠바이크
분명 자본주의 사회에서 위험을 피하기만 해서는 내가 목표한 삶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처음에는 '내가 번 돈으로 최소한 물가 상승률은 방어해 보자'라는 목적으로 투자를 시작했다. 정보 습득을 영상으로 하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을 평소에 갖고 있어서 주식 관련 책을 다섯 권 정도 샀다. 지금 떠오르는 책은 <완벽한 재무제표 읽기>, <현명한 투자자>,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 <전략적 가치투자> 등이다. 사실 정확한 내용과 전략이 모두 머릿속에 남아있지는 않지만, 나에게 '투자의 필요성', '투자자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일깨워 주기에는 충분한 책들이었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정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신진오 <전략적 가치 투자>
처음 투자를 시작했을 때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슨 종목을 살 것인가"였다. 마치 워렌 버핏처럼 '경제적 해자'가 있는 기업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 기사와 리서치들을 틈틈이 읽고, 장을 항상 모니터링하면서 좋은 종목, 섹터를 찾는 것에 몰두했다. 21년도에 워낙 장이 좋았던 것도 있지만 찾은 종목이 상한가도 몇 번 갔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주식은 매수는 기술, 매도는 예술'이라고 했던가. '어떤 종목을 살 것인가'에 대한 원칙은 어느 정도 생겼지만 '매도를 언제 할 것인가'가 너무 어려운 난제였다. 그래서 크게 벌지도 못하고, 손절매가 점점 많아졌다. 그때 나에게 방법론적인 영감을 줬던 책이 <전략적 가치 투자>다. 바로 이때부터 퀀트 투자와 자산 배분, 리스크 관리 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책에서는 다양한 매수/매도 전략들을 소개하고, 그것을 조금 수정-보완한 전략들의 백테스팅 결과들을 알려준다. 그리고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종목이 아니라 '내가 분배한 자산, 즉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라는 것도 알려준다.
가장 재밌었던 투자법을 하나 소개하자면, '투자 중단법'이다. 시장의 흐름이 좋지 않다고 판단되면, 혹은 내 포지션을 결정할 정보가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투자를 중단하고 관망하는 방법. 어쩌면(지금도) 개미가 기관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기관은 투자를 멈출 수 없으니까.
2. 퀀트 투자
"마법 공식은 과연 실존하는가?"
재무제표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퀀트 투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수치적으로 기업에 대해 분석할 수 있다면, 그걸로 투자하면 되는 것 아닌가?
나는 결국 주식 시장은 제로섬 게임이고, 그 안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내가 벌 수 있는 확률을 계속해서 올리기 위한 싸움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기업의 정량적인 지표(혹은 시장 지표)를 가지고 명확한 매도, 매수 기준을 정할 수도 있고, 나의 감정이 개입될 여지도 적은 퀀트 투자야말로 현명한 투자자의 전략이라는 생각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그렇게 한 1년 정도 퀀트 투자를 했었다. 내 손으로 직접 종목들을 필터링해서 투자도 해보고, 퀀터스같은 투자 프로그램들을 활용하기도 했다. 결과는 썩 나쁘진 않았고, 여전히 좋은 투자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요즘도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쉬고 있는 돈들이 있다면 꼭 퀀트 투자용 계좌에 넣어둔다.
라오어 <미국주식 무한매수법>
하지만 내 증권 자산을 모두, 100%를 퀀트 투자에 쓰는 것은 나와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퀀트 투자의 장점은 '쉽고, 명확하고, 감정 소비도 없고, 꾸준히 일정 수익률을 유지하며, 큰돈을 잃을 가능성이 낮다'는 데에 있다. 반면 단점은 '누구나 생각하는 쉽고 명확한 전략은 수익률이 낮고, 재미가 없으며(나에겐 굉장히 큰 단점이었다.), 심지어 시장 수익률보다 낮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단점은, '과거의 데이터를 통해 얻은 그 방법이 미래에도 통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이다.
어쨌든 퀀트 투자 당시의 대세 상승장에서 나의 수익률은 시장 수익률을 이기지 못했다. 이런 대세 상승장에서는 나스닥 QQQ와 같은 지수 추종 ETF들이 더 좋은 대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퀀트 투자도 좋은 방식이지만 굳이 주식 계좌의 100%를 퀀트 투자했어야 했나, 하나의 투자법에 너무 매몰되어 있었던 게 아닌가 한다. 개미 투자자들 사이에서 열풍이 불었던 <라오어의 무한매수법>도 결국 '투자법에 대한 맹신'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알려주었다.
3. 투자 원칙
"실패한 투자법은 없다. 실패한 투자자만이 있을 뿐이다."
올해로 주식 투자를 시작한 지 4년이 되었다. 처음 투자를 시작하면서 내걸었던 목표 "물가 상승률은 이기자"는 달성한 것 같다. 두 번째 목표인 "예적금과 시장을(정확히는 지수) 이기자"도 잘 이루고 있다. 누군가는 목표가 너무 콩알만 하다며, 그거 가지고 언제 돈 모아서 결혼하고 집을 사겠냐고 잔소리를 할 순 있겠다.
내가 요즘 느끼는 게 한 가지 있다.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종목 선정도, 자산 배분도 아닌 "나에게 맞는 목표를 정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공부나 일, 운동을시작할 때도 '내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는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질문이 아닌가. 투자에서도 마찬가지로 '내 수익률 목표'에 따라투자 원칙이 결정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내 목표인'물가 상승률을 이기자. 예적금과 시장을 이기자'는 말은 시장보다 돈을 잃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그렇기에 나는 변동성이 지나치게 큰 주식, 레버리지 상품, 선물 등에는 관심이 없다. 내 나름의 기준으로 다양한 섹터의 우량주를 고르고 분할 매수, 매도만 한다. 한 번 매수를 할 때는 최대 예수금의 10% 정도만 한다. 아무리 상승장이더라도 25% 이상의 현금은 꼭 보유한다. 이것들이 나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되었다.
이 외에도 요즘엔 내가 익숙하지 않은 '주식 차트의 기술적인 분석'을 공부하고 있다. 처음에는 "차트를 본다."는 말이 마치 도박꾼들의 허황된 신념이라고 비판(?)했지만, 공부하다 보니 차트 지표도 잘 활용하면 좋은 매매의 원칙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물론 아래와 같은 기영이 차트 이런 것 말고...
기영이 차트 (가즈아 Ver.)
4. 끝마치며
다시 한번, 나는 투자를 왜 하는가?
이 글을 쓴 이유는 요즘 다소 느슨해진 나의 '투자 공부'에 동기 부여를 주기 위함이 첫 번째고, 돈을 얼마나 많이 모아야 하는가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이 두 번째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내 주식 계좌의 역사를 훑어보기도 하고,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을 다시 펼쳐도 봤다. <전략적 가치 투자>나, <매트릭 스튜디오>와 같은 책들은 내 투자 성향과도 잘 맞는, 지금 다시 읽어도 좋은 훌륭한 책이라는 생각도 했다. 기술적 투자 관련책들도 교보문고에서 구경하면서, 다시금 투자 욕구가 샘솟는 한 주를 보냈다.
문병로 <매트릭 스튜디오>
두 번째 고민, 돈을 얼마나 많이 모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더 컸음에도 그 답은 여전히 찾지 못했다. '적당히 버는 것'이 목표라면, 그 '적당히'는 어느 정도인가. '시장을 이겨야 한다면' 꼭 시장을 이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의식주의 위협을 받아서? 솔직히 집을(상급지에 있는) 사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면, 꼭 시장을 이길 필요는 없다. 지금도 충분하다.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 솔직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았을 때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당장 눈앞의 무언가를 가지기 위해서 돈이 필요할 때가 많다. 상대적인 박탈감 때문에? 사회에서 나의 평판과 가치가 떨어질까 봐? 그렇다면 그것이 정말 중요한 문제인가에 대해서 답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내 아이가 생긴다면 또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 정도 돈을 투자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아, 난 부자가 될 운명은 아닌가 보다.
다만 요즘 '제로섬 게임에서 이기는 것'에서 투자의 이유를 찾는 내 모습에는 분명히 회의감이 든다. 돈을 벌었다는 사실보다는 '내 판단이 옳았다'는 것에 쾌감을 느끼고, 마찬가지로 돈을 잃었다는 사실보다는 '내가 틀렸다'는 생각에 좌절한다. '누군가에게 이겼다'는 것에서 투자 이유를 찾는 건 아닐까. 반성하게 된다. 사람들이 커뮤니티에 수익률 인증을 하며 과시하는 것도 동일한 심리일 거다.
얼마나많이 가지고있어야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분명히 중요하다. 나 같은 범인들에게 '최소한의 돈'은 행복의 필요조건이다. 다만 돈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며, 결국 수단이라는 점을 항상 생각한다. 나는 돈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돈을 가지고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에 대해서 항상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