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내가 추구하는 소비 방식이다. ”망설이는 이유가 가격이라면 사고, 사려는 이유가 가격이라면 그만두라 “는 문구를 SNS에서 우연히 봤다. 다소 극단적인 표현이라 처음엔 거부감이 들기는 했지만, ‘사려는 이유가 가격이라면 그만두라’는 말만큼은 참 와닿았다. 블랙 프라이데이, 혹은 파격 세일 등의 문구를 보면 ‘그래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 가격에 사겠어 ‘라는 생각에 필요도 없는 물건들을 많이도 담았었다. 하지만 그렇게 충동적으로 담은 물건들이 옷장에서, 서랍장에서 제일 먼저 버려지는 상황을 몇 번 목격한 뒤에는 가격을 이유로 소비를 하지 않으려 한다. 물론 그 충동을 억누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불과 며칠 전에도, 1달 전에도 이성은 내 감정을 이기지 못했다.
그나마 나를 컨트롤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내가 고안한 방법은 나의 인내심을 테스트해 보는 것. “사고 싶은 그 마음이 진심이니?”를 물어보는 나만의 단순한 방식이다.
1주일 뒤에도 갖고 싶으면 사자. 1달 뒤에도 갖고 싶으면 사자. 1년 뒤에도 갖고 싶으면 사자. 물건의 가격에 따라 기간은 달라진다. 그리고 고민의 시간이 오래 머무른 만큼 애정도 깊어지더라. 그런 물건들을 한번 자랑(?)해보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값비싼 사치품일지라도 나에겐 보물인 물건들.
1. 태블릿, 아이패드 프로 (Feat. 매직 키보드)
출처_애플 공홈 (아이패드 프로 4세대)
회사에 입사한 이후에 가장 먼저 큰 맘먹고 지른 물건이다. 당시 가격이 100만 원이 훌쩍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모두가 그렇듯. 나의 첫 고려 대상은 아이패드 미니였다. ‘영화 보고, ebook으로 책 읽는 것 말고는 내가 아이패드로 뭘 하겠나’ 싶어서 가장 가성비 좋은 모델을 골랐었다. 하지만 막상 유튜브로 아이패드 리뷰들을 찾아보고, 실제 매장에 가서 둘러보니 아이패드 미니 옆에 놓인, 떼깔부터 다른 아이패드 프로에만 눈길이 갔었다. 아이패드 프로에 홀린 가장 큰 이유는 패드 주제에 4개나 달려 있는 ‘돌비 스피커’와, 12.9인치의 노트북급 화면 사이즈, 넉넉한 배터리였다. 세 가지 모두 이 무지막지한 가격을 대변해 주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겐 너무나 매력이 있는 옵션들이었다. 결국 고민을 두 달 넘게 하다 질러버렸고, 지금까지도 항상 내 가방에 자리하고 있는 보물이 되었다.
나와 함께한 지 벌써 5년째, 요즘도 영화나 ebook은 아이패드로 본다. 노트북이 없을 때는 유용한 사진 보정 도구다. 재작년에는 또 그림에 꽂혀서 이걸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올해 매직키보드를 산 다음에는 카페나 야외에서 글을 쓰는 도구가 되었다. 이 정도면 돈 값 꽤나 했지?
2. 빔 프로젝터, 포 무비 다이스
출처_샤오미 공홈 (for movice dice)
내가 빔 프로젝트를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친구들과 글램핑을 처음 갔을 때였다. 당시 우리가 갔던 텐트에는 빔 프로젝트가 놓여있었는데, 그날 완전히 빔 프로젝트에 홀려버렸다. 은은한 텐트 조명과 고기, 술, 그리고 빔 프로젝트로 비추는 영화라니! (술 먹느라 유튜브 뮤직만 틀어놓긴 했지만) 이것이야말로 낭만이지. 바로 빔 프로젝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여행을 많이 가니까.‘ ‘가끔은 집에서도 볼 거야’ 등등 온갖 핑계를 대면서 비싼 빔프로젝트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휴대성도 좋고, 스피커 빵빵하고, 안시 성능 좋고, 소음은 적은 그런...
하지만 나에게 남은 양심이라는 것이 있었는지, 신제품은 선뜻 손이 잘 안 갔다. 빔 프로젝트는 결국 수명이 있는 소모품이고, 아이패드와 노트북이 있는 시점에서 내가 평상시에 얼마나 쓰겠냐는 생각에 결국은 중고 구매를 선택했다. <당근>에 ’ 빔 프로젝터‘를 키워드로 지정 후 기다리기를 몇 주째, 나의 기준을 만족하는 빔 프로젝터를 절반 가격에 판매하는 분을 발견해서 바로 낚아채왔다.
지금까지 내 애장품들 중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은 물건을 꼽으라면 이 빔 프로젝터다. 평소 방 한 구석에 먼지 쌓인 채로 놓여있다가도, 여행을 떠날 때면 가장 먼저 트렁크에 실리는 내 보물. 여행지에서 오랜만에 전원을 킬 때면 금새 설레는 마음으로 충만해진다. 굳이 이걸로 영화를 보지 않아도 된다. 숙소 벽을 스크린 삼아 원하는 배경에 음악만 틀어놓아도, 참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3. 카메라, 후지필름 X100V
출처_후지필름 공홈 (x100v)
사실 돈을 벌기 시작할 때부터 참고, 또 참았던 물건이 있으니 바로 카메라다. 분명 내가 닳고 닳도록 쓸 것이 분명함에도 끝까지 고민했던 이유는 바로 가격. ‘가심비’라고 허용하기에는 용서가 안 되는 가격이 그 이유였다. 물론 흔히 ‘보급기’라고 부르는 카메라는 100만 원 언저리로 구매가 가능하지만, 나름 군대에서 정훈병으로 근무하며 2년간 이런저런 카메라를 만져본 데다, 사진을 워낙 좋아해서 눈은 또 높았다. ‘애매한 카메라를 살 바에는 사지 않겠다.’라는 고집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카메라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게 된다. 당시 내가 사고 싶었던 소니 알파 7은 바디 가격만 300만 원, 렌즈까지 더하면 400에서 500. 내가 과연 이 정도로 사진에 애정을 쏟을 수 있는가 고민하며 망설이기에 충분히 비싼 가격이었다. 그래서 생각을 접었을 때쯤 만난 카메라가 바로 후지필름 x100v였다.
찍는 재미를 주기에 충분한 기계식 조절 장치들, 단렌즈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35mm 화각, 레트로한 색감, 가벼운 휴대성, 라이카를 연상시키는 이쁜 외관 등 정말 한눈에 홀딱(?) 빠져들었다. 정말 짧은 시간 동안 리뷰 영상, 블로그 글만 수십 개는 본 것 같다. 똑딱이 카메라의 태생적인 단점인 ’ 렌즈 교환 불가‘라는 점도 나에게는 장점으로 다가왔는데, ’그럼 오히려 앞으로 돈이 안 드는 거 아냐? 럭키비키잖아?’라는 원영적 사고를 가능케 했다.
하지만 요즘 이 카메라가 나에게 다른 병을 불러일으켰으니... 바로 장비병이다. 이 카메라와 함께한 지도 벌써 2년째. 다른 화각으로, 다른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면서 요즘은 DSLR과 미러리스를 다시 뒤적이고 있다.
4. 마우스, MX Anywhere 3s
출처_로지텍 공홈 (mx anywhere 3s)
나는 성격이 꽤나 느긋한 편이어서, 여유롭게 행동하는 사람을 보더라도 웬만해서는 크게 답답함을 느끼진 않는다. 하지만 컴퓨터와 인터넷이 느린 것은 잘 못 참는다. 그래서 핸드폰 데이터도 항상 LTE 무제한으로 유지하고 있으며, 컴퓨터 포맷도 자주 한다. 나의 갖은 노력에도 한 가지 해결이 안 되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블루투스 마우스의 느린 연결 속도였다. USB 포트에 수신기를 꽂아서 연결하는 방식의 마우스는 연결 속도는 빨랐지만, 수신기를 잃어버리거나 집에 떼어두고 왔을 때 답이 없는 상황이 자주 있었다. 송수신기 없이 블루투스로 연결하는 방식은 반응이 굼뜨거나 다른 장비(회사 노트북)에 잠깐이라도 연결했다가 돌아오면 페어링이 잘 안 되는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고 유선 마우스를 쓰기에는, 주로 야외에서 노트북을 활용하는 나의 업무와 생활 방식의 특성상 너무 불편했다. 게임을 자주 하는 것도 아니고.
마우스를 계속 바꾸다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은 바로 ‘그냥 좀 더 비싼 걸 써보자’였다. 페어링 잘 되고, 가볍고, 무소음인 마우스를 찾다가 발견한 MX Anywhere 3s 마우스의 가격은 10만 원. 문서 작업용으로 사용하기에는 최악의 가성비 마우스지만 ‘연결이 빠르고, 사용성 좋고, C타입 충전기로 한번 충전하면 오래간다’는 후기에 바로 질러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나의 최애 전산장비가 되어서 출장 갈 때도 꼭 챙겨서 간다.
요즘은 마우스로 답답해하는 친구나 직장 동료를 보면 꼭 추천하곤 하는데, 후기들은 하나같이 훌륭했다. 요즘 게이밍 마우스나 애플 매직 마우스 가격을 보면 그리 비싼 것 같지도 않고, 어쩌면 꽤나 합리적인 소비를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머리를 짜내어보고, 집 안을 한참을 둘러보아도, 이 이상 내가 보물이라 부를 수 있는 소중한 물건들은 스슬프게도 더없는 것 같다. 위 물건들보다 더 애틋한 마음으로 데려왔던 물건들도 결국엔 나의 지갑에 상처를 준 소비로 남았다. 그 사실이 참 씁쓸하기도 하고, 그래도 돈 값을 한 보물들이 몇 가지는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기도 하고... 어떤 것이든 내가 가질 때만큼의 마음을 오랫동안 쥐고 있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