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쓰는 꿈

by 별작가

7월 말, 해가 달궈 놓은 제주 돌담을 따라 혼자 걸었다. 바람은 뜨겁고, 땀은 비 오듯 쏟아졌다. 불편한 운동화 안쪽에 발끝이 부딪힐 때마다 고통과 함께 질문을 뱉어냈다. 나는 왜 이 길을 걷고 있을까.

그 질문의 시작은 딸과 함께한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 그 길에서 나는 배웠다. 같이 떠나도 결국 각자의 속도로 혼자 걷는다는 것. 그리고 도장을 모아 마지막 한 장의 증서를 받는 일보다 더 오래 남는 건 길 위에서 적어 둔 짧은 문장이라는 것을. 여행이 끝나고도 손이 자꾸 찾은 건 증서가 아니라, 땀에 번진 글자들이었다.

제주 올레길까지 두 길을 다 완주하면 공동완주증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다시 수첩을 챙겼다. 이번 올레길은 혼자 걸었다. 길을 걷는 동안 나는 끊임없이 기록했다. 휴대폰 메모장에 짧게 남긴 문장, 땀 젖은 손으로 휘갈겨 쓴 수첩의 낙서, 가끔은 사진 한 장이 말 대신 기록이 되었다. 발자국마다 떠오른 생각이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아 두고 싶었다. 그렇게 발자국과 문장이 번갈아 길을 잇는 동안, 나는 조금씩 가벼워졌다.

마침내 공동완주증을 손에 쥔 순간, 마음은 이상하게도 종이보다 문장으로 가 있었다. 서랍에 들어갈 건 증서였고, 나를 내일로 밀어주는 건 여전히 문장이었다. 올레길에서의 기록들을 브런치에 옮겨 적으며 알게 됐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화려한 결승선을 통과했음을 증명하려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지친 하루에 내 한 줄이 잠시 기대어 쉴 의자가 되어줄 수도 있다는 가능성. 나에게 ‘작가의 꿈’은 바로 그 가능성을 믿고 계속 걷고, 계속 쓰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길 위에서 쓸 것이다. 산티아고에서 시작된 약속이 제주에서 이어졌듯, 다음 길에서도 한 줄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아니, 먼저 한 걸음을 내딛고 그 옆에 문장을 붙일 것이다. 나는 내 글이 서툴다는 걸 안다. 하지만 길 위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듯, 글 또한 멈추지 않고 써 내려간다면 언젠가 작가라는 내 꿈에 닿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 이 자리에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이미 내가 꿈꾸던 ‘작가의 삶’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