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봉 씨와 숙자 씨는 나만 보면 부르신다.
" 받아 봐."
비스듬한 잔디밭을 타고 쌀자루가 미끄러져 내려온다.
" 뭐를 또 주시느라고."
" 올해 마늘이 잘 안 됐어. 갈아서 냉동실에 두면 오래 먹을 겨."
쌀자루 가득 햇마늘이 가득하다.
" 잘 먹을게요."
" 저그 늙은 오이도 내려 주지 그랴."
뒤에서 밭에 물을 주던 춘봉 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 그려 노각 무쳐 먹으텨? "
대답도 하기 전에 쌀자루가 무겁게 미끄러져 내려온다.
" 매번 받기만 해서 어째요. 잘 먹을게요."
2층 사무실에서 마주한 춘봉 씨와 숙자 씨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주고 싶은 것이 있으면 커피 마시러 오셨다며 뒷춤에서 봉지를 건네주신다.
춘봉 씨 외 숙자 씨는 젊어서는 다섯 아이 굶기지 않으려고 하루 종일 흙만 파느라 이웃과 어울릴 시간이 없었고, 이제 나이 들고 먹고 살만 하니 나눠주는 일이 제일 좋다는 부부.
낡을 데로 낡은 몸을 아직도 쉬어주지 않으신다.
김치거리를 다듬으며 뭉턱뭉턱 게워 내는 사연들에 듣고 있는 내 목젖이 덜컥 내려앉는다.
" 지난겨울에 주신 시래기 잘 먹었어요."
" 부드러웠지. 그게 시래기 무를 심어서 그래. 아직 조금 남아 있는데 가져갈 테야? "
" 아니에요. 지난주에 열무 주신거로 잘해 먹고 있어요. 국도 끓이고 볶아 먹기도 했구요. "
미끄럼 타 듯이 내려오는 내게 이장인 김팀장이 한 마디 한다.
" 저 엄니 아부지, 어을 리는 마을 사람이 없는디...... 싸모한테는 맥없이 잘혀유."
" 외로우신 거야."
말은 그리 했지만 아직도 밭에 물을 주고 계신 춘봉 씨를 올려다본다.
닿지도 않는 호스를 내 쪽으로 향하는 순박한 춘봉 씨.
찰칵!
소금 푸러 나오시는 수줍은 숙자 씨.
찰칵!
푸성귀의 싱싱함처럼 내일도 웃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