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을 옮겨 심는다.
열 살의 아이는 경복궁 잔디밭에 엎드려 원고지 칸칸에 말을 채웠다.
전 날 저녁에 엄마는 그림 그리기 대회라면서 화판을 가져가자 하셨었다.
내일은 어머니의 날이었다.( 이후 어버이날로 바뀌었다.)
시골에서 외할머니가 오셔서 청상의 큰 딸네집을 다니러 오셨고, 처음으로 아버지 없는 가족여행을 하기로 했다.
어디로 가든 뭘 하러 가든 열 살의 아이는 마냥 좋았었다.
할머니의 자꾸 젖는 눈과 엄마의 자주 더듬는 듯한 말소리에 눅진한 집 안 분위기가 경복궁 나들이 가자는 소리에 말끔하게 보송 거려지는 듯했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할머니 손을 꼭 잡고 들어선 경복궁.
원고지와 도화지를 나눠 주며 어머니에 대해서 작문이나 그림 중 하나를 제출하라고 했다.
아이의 이름 위에 번호가 17236이었다.
동생들은 도화지에 크레용으로 낙서를 하며 할머니와 엄마 사이에서 마냥 행복해 보였다.
얼른 써서 내고 나도 같이 놀고 싶어서 엄마를 원고지에 콕콕 새겨 넣었었다.
수건 돌리기도 하고 벌로 엉덩이로 이름 쓰기도 하고 예쁜 김밥과 할머니를 위한 찰밥까지 펼쳐 놓고 우리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었다.
어머니 날이라서였는지 꽃무늬 한복을 입은 엄마들이 꽃처럼 보였었다.
오늘은 동생들을 내가 보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에 열 살의 아이는 자유를 느꼈다.
분홍 빛깔의 솜사탕을 살며시 보듬은 듯했던 그날.
가족 모두가 환하게 웃기만 했던 그날.
흩어져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모여들고 게임을 진행했던 선생님들이 아이의 이름과 번호를 불렀다.
"ㅇㅇㅇ 17236번 어린이 본부석으로 나오세요."
엄마를 돌아보니 앞으로 나가라며 등을 떠미셨다.
쭈뼛거리며 올라선 본부석 상단에서 선생님들이 아까 써낸 원고지를 주며 낭독을 하라 하셨다.
쏟아지는 5월의 오후 햇살이 눈이 부셨었다.
원고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눈이 부셔서 원고지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었다. 시린 눈 때문에 아이도 눈물이 났었다.
그날.
하루 종일 웃기만 했던 아이는 할머니와 엄마를 울려버렸다.
읽지 말 걸.
아니 쓰지 말걸.
그랬다.
내가 브런치에서 작가의 꿈을 꿀 수 있었던 모종이 그때 심어졌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딸들이 혼자 남을 나를 위해서 글쓰기를 권했다. 나는 외로울 겨를 없이 거의 매일 책 읽기와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소소한 단상을 쓰면서 행복하게 지낸다.
작가라는 이름을 누군가 불러 준 곳이 브런치이기에 들어주고 불러주며 글을 그림으로 그리는 작가로 살아가는 것이 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