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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그림.

여행의 첫날이 나쁘지 않아. 우짜라고?

by 날개



추석 보너스 주고 사업장 정리 끝내고 나니 오후 4시다.
그대로 아래로 아래로 논스톱으로 도착한 통영은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얌전하다.
다행이다.
숙소를 나서며 그는 신분증을 달라기에 지갑을 여는 데 없다. 에구머니나.
어제 농협 갔다가 통장 사이에 넣은 것을 깜빡한 것이다.
일단 근처에 주민 센터가 있기에 등본을 발급받자고 하며 서둘렀다.
무인 발급기의 지문인식이 되지 않는다.
그도, 나도
지문 인식이 되지 않을 만큼 손을 썼나?
열대여섯 번 만에 통과했다.
등본을 챙겨서 통영 여객선 터미널 도착하니 새벽 5시 25분이다.
승선표를 작성하고 잠시 커피 한 모금 삼키는데 들리는 소리.
" 가상 악화로 두미도는 오늘 결항입니다. "
삼키려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 추도는요?"
누군가 다급하게 묻는다.
" 추도는 오전 배만 운행합니다. 가까워서요."

우짜라고?

어제저녁으로 식당 주인이 통영에만 있는 우짜를 먹어 보라 해서 먹었는데 그 맛을 우리는 ' 우짜라고? ' 라 표현했었다.
싱거운 우동에 짜장소스 두 숟가락쯤 떠 넣은, 우동 맛도 짜장 맛도 아닌 희한한 맛에 우동가락만 건져 먹었었는데.
또 이도저도 못 할 상황이 되어 버렸다.

우짜라고?

새벽 비는 주룩주룩 터미널 주차장을 적시고......
뭐 어쩌겠어. 계획은 늘 바뀔 수 있으니까.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부산 가자 다시 신혼여행!
그렇게 리마인드 신혼여행을 해 보기로 했다.
태종대와 해운대가 끝에서 끝이라는 것도 몰랐던 어린 신랑 신부의 막연한 여행이었었지.
부산으로 가려고 시동을 켜자 6시 알람이 그의 핸드폰에서 울린다. 우선 국제 시장에 들러보자.
몇 년 전에 딸들이랑 갔던 좌판 먹거리 골목을 찾았다. 씨앗 호떡과 물떡, 그리고 매운 어묵, 그리고 비빔 당면을 먹었던 기억에서였지만 우리는 또 비가 오는데 장사를 할까?
노인 둘이 좌판을 벌여 놓고 충무 김밥을 뭉치고 있다.
조금 더 늙은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 열로 와요. 열로, 여 앉아요."
옆 좌판의 노인에게는 미안했지만 앉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더 늙은 노인의 좌판에 앉았다.
이번에도 또 "우짜라고"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비빔 당면은 옆 좌판에서 시켜 먹겠다고 했는데 비가 와서 재료 배달이 많이 늦어진단다.
괜히 미안한 마음에 일어나면서 옆 좌판 노인에게 죄송해하며 많이 파시라 하고는 서둘러 골목을 빠져나왔다.
내가 좋아하고 기억하는 충무 김밥은 분명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끼로는 충분했다.
거제를 거쳐서 해저터널을 건너 도착한 태종대.
물안개로 덮여 있다.
전망대까지 올라가면서 우리는 그때처럼 다음에는 광안리, 그리고 해운대?
우리는 그때의 무지를 킬킬 거리며 젖은 길을 건넜다.
참 오랜만에 와 보네.
전망대 카페에서 바다 멍을 하며 마신 따뜻한 커피는 너무 좋았다.
그래도 여행 첫날이 나쁘지 않아.
부산은 밀면이지.
점심으로 밀면을 먹고 나니 으스스했다.
촉촉이 내리던 비가 폭우로 변해 있었다.
그가 펜션을 예약했다. 경주에.
이미 우리의 추억을 상기시킬 해운대와 광안리바다는 이미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바다를 막아 버린 건물들이 반감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렇게 명절여행의 하루가 통영에서 부산으로, 다시 경주로 바뀌었다.

우짜라고? 준 메시지는 아직도 진행 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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