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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첼 Dec 04. 2023

아빠가 가족을 사랑하는법

산타할아버지를 꼭 만나고 싶은 나의 동심을 기억한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신다는 이야기를 믿었다.     

티브이에서 하는 재미있는 프로그램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방문을 열어 거실을 보고, 없는 거 확인하고 또 방에 앉아있다가 방문 한번 열어보고.

그러고 있었는데. 퇴근하신 아빠 목소리가 들린다.

“수진아~ 여기 뭐가 있다.!!”

후다닥 뛰어나가 보니 선물만 덩그렇게 놓여있다.

“어? 조금 전까지도 없었는데…. 아빠는 산타할아버지 봤어?”

내 나이 7살 때 기억이다. 특히 날 보고 사랑스럽게 웃는 아빠의 얼굴. 

    

성장하면서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은 줄어 갔고 대화는 어색하기만 했다.

사업을 하시는 아빠는 한결같이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셨다.

1997년 대학에 합격하였고 아빠와 단둘이 등록하러 가게 되었다.

친구들이랑 밤새도록 이야기도 잘하면서 아빠랑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너무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아빠도 나도 말이 없이 어색하기만 했다.

“엄마한테 잘해라.” 아빠의 한마디로 대화가 이어질 법도 했지만. 난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IMF가 지나가는 듯했다. 아빠는 제과기계를 만들어서 납품하는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계셨는데. 세상이 시끄러워도 우리 집은 조용했다.

97년도에 내가 대학을 입학하고 99년도에 동생이 대학에 입학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꼬박꼬박 학비를 납부해주셨고. 나와 동생은 대학 생활을 즐기며 철없는 20대 초반을 지내고 있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2002년도에도 월드컵을 응원한답시고 매일 빨강 티를 입고 밖에 나가서 놀다가 집에 들어오는 생활을 했으니 우리 집이 어떤 상황인지 알 수도 없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하루는 엄마가 집을 팔아 빚을 좀 갚아야 하겠다고 했다.

집을 팔 만큼 우리 집에 빚이 있었다는 것도 그제야 알게 되었고 집을 내놓은 부동산에서 우리 집이 이미 가압류가 되어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이미 1996년도에 다른 사람에 의해 가압류가 되어있다는 사실을.. 엄마도 몰랐던 것 같다.

그럼, 아빠가 알 텐데. 아빠로부터 그 이유를 들어야만 했다.

저녁이 되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빠를 보며 나와 엄마와 동생은 하이에나가 먹잇감을 물어뜯듯이 묻기 시작하였다.     

“우리 집이 어떻게 된 거야? 가압류가 되어있던데?     

그 얼굴.     

멋쩍게 웃는 아빠의 그 얼굴     

아! 그 얼굴을 잊을 수 없다. 그 상황에서 아빠는 웃었다.     

“어떻게 알았지?”     

장난하듯이 말하는 아빠는 별일 아니라는 투로 이야기했고.

자세히 이야기 해주지도 않았다.     

엄마는 막막한 탓에 울기 시작했고.

되먹지 못한 딸들은 따지기 시작했다. (자기들이 뭘 했다고)     

아빠는 몇 년 동안 일이 없었고 직원들을 이미 다 내보냈고.

회사의 기계들도 이미 처분한 상태였다     


그 후로 집은 경매가 붙어서 빚잔치를 하고도 나서도 그 빚이 남아 2006년도에 내가 결혼했을 때 받은 축의금 일부까지도 빚쟁이들이 와서 가져갔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우리 식구는 염치 불구하고 20평짜리 작은 아파트 친척 집에서 약1년정도  신세를 지며 살았다.

그동안 나도 취직했고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모두 경제활동을 하여 그나마 18평 작은 아파트를 구입해서 4식구가 나올 수 있었다.     


아빠는 그렇게 힘든 상황을 행여 가족들이 알까 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출근을 하셨다.

 몇년동안 아침마다 어딜 나갔다가 들어오셨던 것일까?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의논도 못 하고 혼자서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셨을까?

그 긴 시간 그 큰 빚을 가족들 모르게 혼자 해결 하려고 하셨던 것일까?

성인이 되어서도 현관에서 신발도 못 벗고 쏘아붙이는 아내와 딸들을 보면서 어색하게 웃는 아빠의 얼굴을 떠올리면 지금도 울컥한다.     


작년부터 부모님은 아무런 연고가 없는 시골로 가서 지내신다. 며칠 전에는 김장하러 내려갔는데. 엄마는 아빠 식사하시는 자리에서 낮에 있었던 일을 이르듯이 나에게 이야기한다.     

여전히 아빠와의 대화도 안부 묻는 것도 어색하지만

“아빠! 사람들한테 그렇게 말했어? 그러지 마세요. 사람들한테 그렇게 하고 싶은 말 막 하고 그러면 안 되지..”

난 어린아이에게 타이르듯이 조용히 이야기했다. 어찌하든 그 자리에서는 엄마 편을 들어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아빠는 여전히 말없이 식사만 하신다.

     

너무도 뻔하게 산타할아버지인척하는  그때의 아빠

고등학교 내내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딸을 데리러 와 주었던 아빠의 공을 엄마에게로만 돌리는 아빠

6년 동에 식구들 걱정하지 않게 혼자서 큰 고민을 하고 살았던 아빠

아빠가 식구들을 사랑하는 당신만의 방법이다.     

마늘 농사지어 수확해서 직접 까서 빻아 주신다.

쪽파를 길러 뽑아서 다 까서 주신다.

“너희 아빠가 이렇게 준다고 마늘도 쪽파도 하루 종일 앉아서 다 깠어.”     


이제야 알겠다.     


우리 아빠는 나를 이렇게 사랑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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