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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첼 Dec 07. 2023

친구가 많은가요?

내가 사랑하는 친구 Y

큰아이 고등학교 면접 보는 날

교장선생님이 아이에게 질문을 하신다.


“네가 생각하기에 엄마랑 네가 제일 많이 닮은 점은?”


큰아이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친구가 많아요.”


아들의 대답을 듣고 살짝 웃음이 나왔다.


교장선생님은

“엄마가 친구가 많아?”


“엄청요.”


내가 친구가 많은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을 친구라고 해야 하는지. 알고 지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나의 감정을 공유하고 나의 이야기를 알고 그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친구라고 해야 하는지.


친구 같은 아들, 친구 같은 딸, 친구 같은 누구누구..


친구라는 범주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이야기해야 하는 것인지 살아가면서 그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것도 결국 변하기 마련이더라.


특히나 사람의 마음처럼 쉽게 변하는 것도 없다.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싶을 정도로 변해서 낯선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니,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래 알고 지냈다는 이유로 애쓰지 않기로 했다.


감정을 소모하는 일이 너무도 괴롭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 Y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 저학년 때부터였을 것이다.


동네에서 성당을 같이 다니면서 알게 된 동갑내기 Y였다.


계속 과거형으로 이야기하는 건 지금은 그 Y만을 만나거나 이야기하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친구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가깝게 오래 사귀어 정이 두터운 사람]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지만, 함께 생활하면서 친해져 사실상 반쯤 가족인 인간관계]를 친구라고 정의한다.


사전적인 단어로만 본다면 Y는 한때는 친구였고 지금은 알고 있는 사람, 즉 지인이라는 표현이 더 알맞은 표현이다.


어느 날 오후 1시 정도가 되었을 무렵 한창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나 눈물 나.”


밖의 보니 완연한 봄날에 개나리가 막 피어나려고 하고 있다.


“밖에 나가서 걸어”


“일어날 수가 없어”


“.....”


핸드폰 이어폰을 꽂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Y야! 뭐라도 해봐. 너 소파에 누워있지? 일어나서 창문 열고 밖에 나가봐. 날씨가 너무 좋아.”


그렇게 우울감에 빠져있는 Y의 태도도 화가 났고 그 친구와 새삼스럽게 비교하며 대안 없이 경제활동, 가사활동, 아이들 양육까지 혼자서 생활을 해 나가는 나의 처지도 화가 났다.


나에게 그 친구는 팔자가 좋아 심심해서 부리는 투정 같았다.


Y는 그 이후로 병원에 갔고 우울증 진단을 받아 약을 처방받았다.


우리는 삶의 모든 것을 공유하면서 직장도 함께 다니고 심지어 아이들도 비슷한 시기에 낳아 2주 동안 산후조리도 같이 하였다.


결혼해서도 동네도 근처에서 살면서 아이도 같이 길렀다.


결혼 전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는데 살아가면서의 아주 약간의 환경의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아주 큰 차이로 변했다.


성실하고 자상한 남편과 함께 사는 Y는 집도 사고 때 되면 여행도 다니는 내 또래 여자들이 하는 것을 다 하고 사는 생활이었고.


임대아파트에서 시작한 나는 결국 경제적인 이유로 이혼을 하여 생활의 수준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좁혀지지 않았다. 난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미묘한 그런 좌절감이 있었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받고 온 날. 내가 이혼하고 위자료도 없이 아이와 살아야 하는 것이 결정된 날 내가 울었던 것처럼 울었다.


친구로서 서로 위로해 주고 같이 울어주고 안아줬던 것은 여기까지였을 것이다.


Y의 우울증 증상은 점점 더 심해지고 병원에 갈 때마다 알약의 개수가 늘어난다고 했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에 3번씩. 한 번에 먹는 약 9알.


적지 않은 약을 먹는 것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Y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짜증이 날 때가 있었다.


감정의 기복에 따라 전화를 안 받는 건 일수였고. 약속하고 그 약속을 어기는 것도 다반사였다. 문자와 카톡을 보내면 무시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동안은 “그래 치료받는 중이니까.”라고 이해하려 했지만. 나의 그런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이혼이라는 경험을 하고 나서 사람과의 관계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 아무리 부모·자식과의 관계라도 말이다. 사람은 이기적인 성향이 있어서 서로 나만 봐달라고 하고. 그것이 절충되지 않으면 헤어진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날도 난 Y에게 바람을 맞았다.


식구들이 우리 집에 다 같이 온다는 말에 난 점심까지 준비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남편만 보내서 용건만 처리하고 갔다.


그날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당분간 연락하지 말고 지내자.


그래도 너랑 나랑 알고 지내온 시간이 30년이 넘는데 아예 안 보기야 하겠니?


언젠간 보겠지. 잘 살아.”


친구 Y는 전화도 답장도 없었고 그렇게 지금까지 연락이 없다.


면접을 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큰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는 친구가 많은 게 아니고 아는 사람이 많은 거지.”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충분히 사랑하고 타인의 모든 것을 조건 없이 인정해 줄 수 있어야만 친구가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친구를 만날 준비가 되어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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