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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애 Aug 03. 2023

도블의 끝은 파국

게임에 꼭 이겨야만 하는 아이



“난 선생님이랑만 도블하고 싶어요. 저랑 딱 한판만 해요. 네? 제발."


오늘 몇 판을 했는데 또 한판만 해달라니.

원빈(가명)이가 나를 애절하게 바라봅니다. 원빈이의 눈빛이 아주 부담스럽습니다.


제발 제발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지 말아 다오.


“좋아. 대신 두 가지만 약속해. 첫 번째, 한판만 더 해달라고 했으니 또 해달라고 조르기 없기. 두 번째, 게임에서 졌다고 화내거나 울지 않기.”








“난 원빈이랑 꼭 도블하고 싶은데. 원빈아 나랑 딱 한판만 하자. 제발."


어느 날, 원빈이를 겨우 설득해 함께 도블을 하게 됐습니다.


도블은 원모양 카드로 이루어진 보드게임입니다. 두장의 카드에서 같은 그림을 찾아 먼저 외치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게임 방법이 아주 쉽고 간단하지요?

무엇보다 게임 한판을 빠른 시간에 끝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도블을 아주 좋아합니다.


나는 돌봄 교실에서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를 보면 도블을 함께 하자고 제안합니다. 이 학교에 발령받기 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아이들과 셀 수 없이 많은 도블 게임을 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난 도블 고수가 되어있었지요. 카드가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똑같은 그림이 한눈에 딱 들어올 정도입니다.


나는 도블 고수라는 사실을 숨긴 채 원빈에게 열심히 져줬습니다.


물론 다른 아이들과 게임을 할 때도 웬만하면 져주기는 합니다. 이런 방식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건지 나쁜 영향을 주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는 것보다는 이기는 게임이 더 재미있잖아요. 잘 놀지 못하는 아이를 즐겁게 해 줄 목적으로 게임하자고 했으니 그냥 져줍니다.


예상과 다르게 원빈은 도블을 굉장히 재미있어했어요. 보드게임은 질색이라던 아이가 말이죠. 또, 또, 또…. 또 해요.

종일 말도 안 하고 놀지도 않던 원빈이가 무언가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만으로도 기뻤어요. 처음에는요……으음….

아이를 변화시킨 나 자신이 기특하기까지 했습니다.


원빈은 다른 아이들에게 도전장을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대부분 참담했지요. 고수임을 숨기고 져주는 나와 달리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를 악물고 게임에 임했거든요. 평소 보드게임을 많이 안 해본 초보 도블러 원빈이 이런 아이들을 이기기는 쉽지 않았지요.


으앙~~

질 때마다 큰소리로 울음을 터뜨리며 바닥에 큰 대자로 드러눕는 원빈.  세상에~

평소 말도 없고 조용한 아이에게 저런면이 있었구나! 아이구! 억울하다며 소리까지 고래고래 질렀어요.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지요.


파국. 


원빈이가 지면 게임은 항상 파국으로 끝이 났습니다.


이기고 지는 것보다 즐기는 게 중요하다고 차근차근 설명을 해줬습니다. 울고 화내면 교실에서 도블을 없애버리겠다고 협박도 해봤어요. 모두 다 소용없었어요. 다른 게임으로 주의를 돌려보려 해도 오직 도블뿐이었어요.


한동안 원빈은 돌봄 교실에 오면 도블카드를 책상에 펼쳐놓고 카드 하나하나를 몇 시간씩 관찰했습니다. 마치 수능 문제집을 바라보는 수험생 같이 카드를 보고 또 봤습니다. 보드게임은 질색이라던, 의욕 없이 교실구석에서 뒹굴거리던 아이가 저렇게 승부욕이 강했었다니.


아이들은 울고 화내는 원빈과의 게임을 피했습니다. 원빈 또한 자기보다 잘하는 아이들과의 게임을 거부했고요.

대신 나.

원빈이는 나를 연습상대로 선택했습니다.


레이저를 쏠듯 이글거리는 눈으로 카드를 노려보는 원빈을 보면서 나는 매번 고민에 빠집니다.


이 아이와 계속 게임을 같이 해주는 게 맞을까요? 게임을 져줘야 하는 걸까요? 지는 경험을 통해 뭔가를 배우도록 아주 냉정하게 이겨버릴까요?


오늘도 나는 도블게임을 합니다. 내가 같은 그림을 찾아 외칠 때마다 눈물을 글썽이며 울음을 참고 있는 원빈이. 그리고 원빈이 같은 아이를 만나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아직 답을 찾지 못한 나.


원빈아, 살아가다 보면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많고 지는 일은 너무나도 많단다. 졌다고 매번 통곡하고 슬퍼할 수는 없지 않니?


게임에 져도 괜찮다고 재미있었다고 말하며 멋지게 웃어넘길 수 있는 원빈이가 되길~




끄적여 보는 생각 쪼가리

저녁식사 후 아이와 도블 한 판 어때요? 생각보다 아주 재미있습니다. 하루 5~10분만 시간을 내줘도 아이가 행복해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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