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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베르만 Jun 09. 2023

그 봄, 개나리는 명랑했다

첫사랑


 곧 개나리가 피는 봄이 온다.
난 중2 봄에 만났던 첫사랑 J를 개나리로 기억한다.
그 봄, J가 개나리색 잠바를 입고 내 마음속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난 매년 새 학기에 느껴지던 그 산만한 들뜸이 딱 질색이었다. 낯선 친구들 앞에서의 자기소개 시간도 싫었고, 봄이 온 줄 알고 지긋지긋한 겨울 외투를 벗어두고 나오면 늘 내 뒤통수를 치며 나를 잔뜩 웅크리게 만드는 꽃샘추위도 싫었다.
나의 중2가 시작되던 봄 어느 날. 웅크린 어깨로 학교복도를 지나고 있었는데, 반대편에서 역시나 꽃샘추위에 뒤통수를 내준 듯 움츠러든 개나리색 봄 잠바가 내 옆을 스쳐갔다. 개나리색 잠바의 주인은 개나리처럼 환했다. 찰나였다. 그 찰나의 순간이 30년 후 내 첫사랑의 시작으로 기억될 순간임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의 이름은 J 라고 했다.
J. 같은 공간에 있던 지난 1년간 너는 어떻게 익명으로 존재했는가. 지난 1년의 시간 동안 지금 이 찰나의 순간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고, 내 옆을 스쳐지나간 그 순간 J가 익명으로 존재했던 지난 1년간의 시간은 믿어지지 않았다.

 ‘가슴이 쿵 내려앉다’
이 표현은 심리적 묘사가 아닌 물리적 현상에 대한 서술임을 경험으로 알았다.
심장이 실제로 아래로 떨어지는 기분이었고 다시 제자리로 올라가기 위해 펌프질을 하는 듯 심장이 빨리 뛰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이 대책 없는 감정을 어린 소녀는 어쩔 줄 몰라 느닷없이 일기를 썼었고 그날 이후로 썼던 일기가 족히 10권은 됐으리라.

 개나리색 잠바를 입은 J는 축구를 좋아했다. 점심시간이면 익명의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놀았고 난 창가에 서서 눈으로 열심히 개나리색 잠바를 쫓았다. 내가 J에게 다가가는 방법은 ‘마주 보다’와 같이 함께 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닌 ‘바라보다’, ‘쳐다보다’, ‘엿보다’ 등의 일방적인 단어 밖에는 없었다. 점심시간이면 운동장에 개나리색 잠바가 있는지 훑어보는 게 습관이었고 나의 온 감각은 개나리 색만을 필터링했다. 가끔 내 시야 안과 밖 경계선에서 숨죽여 나를 지켜보던 개나리는, 내가 휙 쳐다보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까르르 웃었다. 나를 놀리는 건지 응원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웃음이었다. 운동장 가장자리에 핀 개나리는 몇 번이나 내 가슴을 쿵 내려앉게 만들었다. 그 봄, 개나리는 명랑했다.

 옆 반 반장이었던 J는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종종 우리 반 반장이었던 나를 찾아왔다. 그가 앞문을 드르륵 열기도 전에 이미 나의 안테나는 ‘개나리색’을 감지했고 책에 집중하는 척  2,3초 정도 날 부르는 소리를 외면하기도 했다. 그저 일기나 쓸 줄 알던 소녀가 부릴 수 있는 끼였을 것이다. 개나리를 첫사랑의 은유로 간직한 채 중2, 중3의 시간을 보냈고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던 어느 날 J가 나랑 같은 반이었던 여학생 Y를 (사실 처음엔 학교에서 가장 예쁜 여학생 Y라고 적었다가 괜히 자존심이 상하여 퇴고하며 고쳐 적는다.) 좋아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믿을 수 없었지만 Y와 J는 같이 롯데월드도 갔다 왔단다. 아.. 몹쓸.. 그날 내가 흘렸던 눈물은 무력감과 슬픔이 빚어낸 화학반응이었다. 첫사랑을 이루려고 일부러 여름 막바지에 봉숭아물을 들이며 첫눈을 기다리기도 했고 아카시아 나뭇잎도 하나씩 떼며 “이루어진다!!”로 끝냈건만.. 기도에 가까웠던 이 모든 것들이 부질없게 끝이 났어도 난 뭐 하나 따져 물을 수 없는.. 철저한 ‘을’이었다. 짝사랑의 본질은 갑을 관계였다. 삶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 중에는 내 의지나 노력과 상관없이 흘러가는 것들이 있는 법이라지만 이런 가르침은 어린 나에게 슬프고 또 슬펐다. 비트 빠른 서태지의 ‘하여가’를 듣는데도 눈물이 났다.

 며칠이 지나 졸업식 날 운동장.
같은 공간에 있어서 좋았지만 ‘우리’는 이제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또 다른 슬픔이 느껴졌다.
상대는 동의할 수 없는 ‘우리’는 과연 ‘우리’라고 부를 수 있던 것인가.
친구들과의 헤어짐을 핑계 삼아 마음껏 슬퍼하며 아쉬워했다.
졸업식이 끝나고 한참 뒤에 운동장을 다시 찾았다. 텅 빈 운동장은 새로운 봄을 예비하며 빛으로 들끓고 있었다. 봄에 개나리꽃이 피고 꽃잎이 바람에 날려 소멸하듯이 내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어 소멸하리라.
개나리꽃이 지고 가을이 되면 가지 끝에 ‘연교’라는 열매가 달리는데, 이 열매는 볼품없어도 귀중한 약재가 된단다. 그때 나의 슬픔도 아마 열매처럼 성장했을 거다.

 나이 40이 넘은 지금 나는 첫사랑 J를 그때의 설렘, 슬픔, 그리움보다는 그저 ‘가슴이 뛰었던 첫사랑의 기억’으로 담담히 회상할 뿐이다. 시간의 나이테 속에서 개나리는 첫사랑의 기억으로 , 나의 큰 아들이 태어나던 날 눈부시게 반짝였던 꽃으로 , 엄마 칠순 잔치 때 엄마의 함박미소 옆에 피었던 꽃으로 겹겹이 기록되고 있다. 앞으로도 아름다운 기억의 언어로 열심히 기록될 것이다. 내가 이 글 첫 문단에 “개나리를 첫사랑으로 기억한다.”가 아닌 “첫사랑을 개나리로 기억한다.”라고 쓴 이유이다. 두 문장은 비슷해 보이지만 크게 다르다. 내 나이테 속의 개나리들이 다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 해 봄, 개나리는 내 속도 모르고 그렇게 명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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