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맥심 광고에서 들리던 그윽한 목소리와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던 하얀 잔속의 커피에서는 커피 향이 났다. 완벽한 시청각의 후각화다. 나에게 커피는 이 커피광고에서 나던 커피 향 그 자체였다. 그 감미로운 향기 옆에 시집이라도 한 권 펼쳐둬야 마땅할 듯 어떠한 세속적 충동도 없는 여유 있고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 그래서 나는 집에서 혼자 커피를 마실 때에도 부스스한 머리나 잠옷 바람으론 절대 마시지 않는다. 주변도 몸도 정갈하게 정리한 후에 ‘OFF’로 되어 있던 내 모습의 마침표로써, 하루를 제대로 시작하는 ‘ON’ 사인으로써 커피를 마신다. 오늘도 방학이라 늦잠 자는 아이들을 깨워 아침 먹여 학원 보내고 청소, 환기까지 끝낸 후에 옷을 갈아입고 커피를 한 잔 마시는 중이다.
커피가루의 짙은 색과 대비를 이루는 하얀색의 프림은 물에 닿는 순간 순순히 그 개별성을 버리고 하나의 브라운 향기로 어우러진다. 간혹 뜨거움에 대한 저항의 흔적으로써, 몇 개라고 세기에도 안쓰러운 커피가루가 보이기도 하지만 스푼으로 한두 번 더 저어주면 그만이다. 커피를 마시기 전, 눈으로 감상하는 애피타이저 같기도 한 이 기적 같은 현상은 내가 믹스커피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윽고 몸속으로 자욱이 퍼지고 혈관을 따라 구석구석 스민 향은 나를 노곤하게 풀어놓고 내 체취로 다시 베어 나올 것 같다.
‘커피’라는 이름을 가만히 불러보면 이름 자체에 사유의 향이 아려있는 듯하다. ‘ㅋ’은 작은 탄식과도 같고 그 뒤에 오는 모음 ‘ㅓ’는 탄식을 삼키는 읊조림으로 들린다. ‘ㅍ’은 깊어서, 깊은 곳을 우두커니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고 모음 ‘ㅣ’는 그 깊은 곳에 향기가 낮게 피어오르는 느낌이다. 희미한 탄식과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향기가 두 글자 안에 포개진다. ‘커피’란 단어도 지그시 들여다보면 생김이 참 트렌디하다. 적어도 홍차, 쌍화차, 둥굴레차, 녹차보다는 그렇다. 커피는 이 생김과 소리와 향기로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트렌디한 신분으로 존재할 것이다. 그때에도, 앨리스를 안내하는 토끼처럼 모든 감각을 깨워 향기로운 사유의 나라로 안내할 것이다. 커피를 마시며 커피에 대해 생각하는 지금처럼 말이다. 이렇게 오전마다 마주하는 이 믹스커피는 최저 비용으로 나를 우아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사치이다.
바쁘게 일했던 작년까지만 해도 이 ‘커피타임’은 본격적인 업무의 시작을 내 몸에 알리는 예열 의식이었고, 지금은 혼자 있는 공간과 시간 속에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 치루는 나만의 의식이다. 나는 내일 이 시간에도 '커피의식'을 치룰 것이다. 머그잔에 커피 향을 가득 채우고 피천득의 '인연'을 펼쳐들며 스위치 ‘ON’할 것이다. 그리고 토끼는 새로운 사색의 숲으로 나를 안내해 줄 것이다. 나는 매일 커피나라의 앨리스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