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베르만 Jun 09. 2023

온통 봄

 지난 주말 티브이를 켰는데 봄나물의 종류와 영양소, 조리법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같이 티브이를 보던 남편이 대뜸 두릅이 먹고 싶단다. 두릅이 먹고 싶다니, 봄이 오긴 왔나 보다. 가공식품에 길들여진 나와 다르게 남편은 날 것의 미각을 가졌다. 이런 남편 덕분에 두릅, 가죽나물, 미나리, 냉이 같은 제철 나물들을 접하며 각기 개별적인 질감이나 맛과 향을 알게 되었다. 미각이 확장되었으니 ‘남편 때문에’가 아닌 ‘남편 덕분에’라는 고마운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두릅을 사러 나들이 겸 경동시장에 갔다. 장 보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가벼웠고 시장은 봄의 에너지로 활기찼다. 상인들은 미나리, 냉이, 쑥, 달래, 민들레, 머위, 방풍나물 등의 이름과 가격을 빳빳한 종이에 손 글씨로 적어두고 있었는데 마치 봄의 명찰인 듯 정겨웠다. ‘방풍나물’ 옆에 풍을 예방한다는 설명을 친절히 적어둔 곳도 있었고, 5000원에 줄을 쫙쫙 긋고 4000원이라고 적어둔 곳도 있었다. 손님이 없어서 가격을 내린 건지 일부러 그렇게 적은 것인지 궁금했으나 물어볼 수는 없었다. 저 어린 초록들이 추운 땅을 뚫고 나오느라 애썼을 생각을 하니 기특하고 대견했다. 봄이 ‘spring’ 인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시장은 각종 채소와 과일들로 일곱 빛깔을 다 끌어안은 팔레트처럼 다채로웠다. 성격 급한 3월의 참외가 노란색 물감처럼, 상인들의 금고 역할을 하던 바케스는 파란 물감처럼 보였다. 딸기, 토마토, 파프리카, 오렌지는 채도 높은 색감으로 왁자지껄했고 보라색의 콜라비와 가지도 한쪽에 점잖게 진열돼 있었다. 이 풍경을 그대로 캔버스에 담는다면 색감만으로도 봄이 느껴질 듯했다.
 상인들은 봄을 주무르며, 생산자의 경건함과 소비자의 설렘을 바쁘고 질서 있게 매개하고 있었다. 시장은 봄과 인간의 직거래장이었고 봄의 유통 장소였다. 겨우내 추운 뱃속을 달래주던 호떡 천막에만 손님이 별로 없어 쓸쓸해 보였다.

 두릅을 사러 나선 길이었는데 두릅은 열흘 정도 더 있어야 나온단다. 아쉬운 대로 미나리와 냉이를 사 와서 미나리무침과 냉이 된장국을 끓여서 먹었다. 미나리와 냉이는 같은 봄나물이지만 맛은 선연히 다르다. 미나리는 질감과 향기가 선명하고 이름처럼 발랄한 맛인데, 냉이는 국물에 그 향을 내놓으며 엉기듯 풀어지는 맛이다. 남편은 미나리와 냉이를 먹으며 봄처럼 웃었다.




겨울잠 잘 시간이야.

겨우내 가파르게 놀던 바람
사근사근 달래어 포근포근 아랫목에 재웠는데,
흙 헤집고 올라와 지줄대는 풋새싹 소리에 그만 깨었네.
재우려면 어찌하랴.
등에 업고 밖에 나와 다시 토닥토닥 잠을 재우네.

아, 봄에 업혀 나온 꽃샘추위여.



 저번 주엔 꽃샘추위였는지 3월에 때 아닌 영하의 기온이 얼굴을 내밀었다. 봄이 잠시 겨울을 업고 나왔던 게 아닐까. 혼자 상상해 보며 시의 형식을 빌려 부끄럽게 몇 자 적어본다. 꽃샘추위가 누그러진 걸로 보아 봄에 업혀 다시 잠들었나 보다. 쉬이 잠든걸 보니 겨울이 차갑고 힘은 세지만 본질은 유순하고 착한 계절일 것이다. 그렇게 겨울을 재워둔 봄은 세상을 깨우며 곳곳에 와있었다.

 엊그제는 최근 부쩍 자란 머리를 정리하려고 미용실에 갔다가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가을 겨울엔 잘 자라지 않던 머리가 봄이 되면서 빨리 자란다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과학적 원리로썬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내 머리 위에도 봄이 와있었다.

 봄이 별 건가. 두릅이 먹고 싶어지고 머리가 빨리 자라면 그게 봄이다. 환기 때문에 열어둔 창문을 깜빡하고 닫지 않고, 옷소매를 더 이상 손등까지 끌어내리지 않으면 그게 봄이다. 오늘은 작은 아들의 공개수업에 갔었는데, ‘봄’을 주제로 시를 지어 낭송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엔 구청으로부터 ‘응봉산 개나리축제’ 안내 문자를 받았다. 세상이 온통 봄 천지다. 난 이 봄 안에서, 봄에 말을 걸며, 봄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찔레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