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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베르만 Jun 09. 2023

찔레꽃


 우연히 ‘찔레꽃’이라는 단어를 보았다. 그리고 이 세 글자에서 할머니가 부르던 ‘찔레꽃’이 들려오는 듯했다. 처음엔 내 귀에 들리는 ‘찔레꽃’이 글로 써지지 않아 조급했으나, 그저 할머니의 삶을 기웃거린 희미한 흔적으로 몇 자 적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어렸을 적 나는 할머니의 ‘찔레꽃’ 노래를 들으며 컸다. 할머니는 우는 나를 달랠 때에도, 물에 헹군 김치를 죽죽 찢어 내 그릇에 올려줄 때에도, 누룽지를 긁어 설탕을 뿌려줄 때에도 ‘찔레꽃’을 불렀다. 내가 눈을 비비면 ‘찔레꽃’으로 날 재웠으니 ‘찔레꽃’이 자장가이자 내 유년 시절의 배경음악이었다. 나중에서야 할머니가 부르던 그 노래가 이미자의 ‘찔레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제주도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제주도에서 결혼했고 아들을 낳았고 남편을 잃었다. 할머니의 남편, 나의 할아버지는 제주 4.3 사건 때 기세하였다. 그저 나라가 혼란스러운 시기에 제주도에 있었을 뿐인데, 당시 시신수습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졸지에 새파란 과부가 된, 가진 거라곤 젖먹이 아들 하나였던 할머니는 시가에서도 친정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가난한 살림에 홀로 아들을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기댈 곳 없는 할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기댈 곳을 내주기 위해 독하고 억척스러워졌을 것이다.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제주를 떠나 서울로 올라왔으나 서울에서의 삶 역시 만만치 않았다. 할머니는 그때의 이야기들을 허공을 보며 말했다. 구멍 난 구두가 부끄러워 신발 벗고 들어가는 자리에 못 갔던 아들 이야기, 추운데 어린 아들에게 외투를 못 사줘 가슴 아팠던 이야기, 늘 배고팠던 이야기 등등. 이야기는 다 달랐지만 할머니와 아버지가 주인공인 허름하고 영세한 이야기들이었다.
 할머니의 말은 듣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아 보였지만, 할머니의 기억은 듣는 사람이 있을 때에만 말로 나올 수 있었다. 간혹 틀니를 뺀 채로 이야기할 때면 입 안에 이가 없는 자리가 어두워 할머니의 얘기가 더 어둡게 느껴졌다. 말하는 도중 이야기의 공백이 생길 때면 입 안을 맹렬히 두드리는 말들을 단속하는 듯 입술주름이 씰룩거렸다. 그리고 그 공백 끝에 ‘찔레꽃’ 노래가 있었다. ‘찔레꽃’은 눈물에 젖어 있었고, 가재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던 할머니의 얼굴과 손엔 검버섯이 별처럼 피어있었다. 할머니의 개별적인 생애 안에 불운한 역사가 기구한 삶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아들이 삶의 전부였던 할머니는 며느리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며느리였던 엄마는 아버지에 대한 할머니의 집착을 힘들어했다. 난 고부간의 불화가 불안했고, 위태롭게 느껴졌는데, 눈치 보는 일 밖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난감한 상황을 통제할 수 없는 어린 나이의 숫자 뒤에서 안도했지만 아버지는 그 불화를 버거워했다. 아버지는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에서 늘 엉거주춤했고 할머니는 아버지의 아득한 짐처럼 보이기도 했다.

 할머니의 삶이 기구하다고 생각했던 결정적인 일은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세상의 중심이었던 아들을 앞세워 보내며 할머니는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슬픈 소리로 우는 것 같았다. 그저 울 수밖에 없는 처지가 더 슬프게 들리는 울음소리였고 지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언어로도 할머니를 위로할 수 없어 보였다. 모든 죽음이 그렇듯이 죽은 자보다 남겨진 자의 슬픔이 더 큰 법이었고, 할머니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고문이자 가혹한 형벌처럼 보였다. 나는 할머니의 텅 빈 눈동자를 보며 행여나 할머니의 기구한 팔자가 나의 어딘가와 닿아 있지는 않을지 문득 겁이 났다.

 엄마는 할머니를 ‘너네 할머니’라 불렀는데 그 짧은 호칭엔 엄마와 할머니의 먼 관계가 스며있었다. 엄마와 할머니는 같이 살 수 없었고 따로 사는 게 오히려 화해로웠다. 따로 살며 가끔씩 마주했던 할머니는 여전히 남겨진 자의 형벌 속에 사는 듯, 바스라 질 듯 메말라 보였고 목소리에도 물기가 없었다. 할머니는 편안한 기억 속에 머무르려는 듯 현재와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며 오갔는데, 사람들은 할머니를 보며 ‘치매’라고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가장 행복했던 시간의 기억 속에 사는 듯 표정은 더 편안해 보였고, 기구한 삶이 시작되었던 제주도에서 생을 마감했다.

 글을 쓰면서 이미자의 ‘찔레꽃’을 들어봤다. 할머니의 ‘찔레꽃’이 원곡이고 이미자가 모창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어릴 적 듣던 ‘찔레꽃’은 할머니가 살아온 시공을 향해 내뱉는 한(恨) 섞인 독백이자 시요, 넋두리였다. 부질없는 생각이긴 하지만 내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홀로 아들을 키우던 어린 할머니와 늘 배가 고팠을 나의 어린 아버지를 꼭 안아주고 싶다. 어쩌면 할머니도 과거의 기억을 오갈 때, 아들이 어렸던 시절에 머무르며 아들에게 겨울 외투와 새 구두를 사주고 밥도 배불리 먹이며 행복해하지 않았을까.
 
 ‘찔레꽃’을 듣고 있는 지금, 할머니가 안으로 삭였을 상처들과 상처가 발효된 시간들이 내 몸 깊숙한 곳에 있다가 말로 나오려는 듯 목구멍 깊은 곳이 가려운 느낌이다. 손으로 긁을 수 없는 목구멍 깊은 곳에서 물에 씻은 김치 맛이 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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