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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미국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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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a Kim Nov 24. 2021

현대의학이 성사시킨 아기와의 만남

출산 일기 1/2

원래 출산예정일은 9월 22일이었으나 제왕절개술이 필요하다는 산부인과 선생님의 판단 하에 9월 16일 목요일로 수술 날짜가 잡혔다. 임신 기간 10개월 동안 진료를 봐주신 담당 산부인과 선생님은 뉴저지에서 아기를 워낙 많이 받아서 '뉴저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Joseph Chong 선생님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수술을 받은 해켄색 대학 병원 간호사들 사이에서도 실력 좋고 성실하기로 유명하셨다. 수술 하루 전날부터 입원하는 한국과는 다르게, 미국 병원에서는 전날 밤부터 금식을 시작하되 병원에는 수술 두 시간 전까지만 오라고 했다. 오전 11시 반 수술이라 넉넉하게 9시 전에 병원에 도착해야지 생각했지만, 출산 가방을 최종점검하면서 시간이 지체되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수술복으로 환복하고 침대에 누워 나와 뱃속 아기의 바이탈을 체크했다. 빠르게 뛰는 아기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긴장되기 시작했다. (아기의 심박수는 어른의 2배 이상이다.) 전담 간호사가 들어와서 수술 절차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어떻게 마취가 이루어 질 것이고, 어느 시점에 남편이 수술실로 들어올 수 있고, 수술실에 누워서는 가슴 아래로 가림막이 쳐진 상태로 아기를 꺼낼 것이고, 아기가 나오면 바로 엄마에게 보여줄 것이다 등등의 상세한 안내를 받으면서 조금씩 마음을 추스렸다. 임신 전부터 있었던 왼쪽 난소의 물혹이 임신 기간동안 너무 비대해져서 (지름 12cm 정도의 크기, 그러니까 거의 아기 머리 사이즈였다) 아기를 꺼내고 나면 물혹과 함께 왼쪽 난소도 함께 제거될 예정이었다. 오른쪽 난소가 괜찮을지는 개복해서 확인해본다고 했다. 예상 수술 시간은 1시간 내외였다.


전체 수술 절차 중 제일 무섭고 두려웠던 순간은 하반신 마취를 위해 척추에 주사바늘을 꽂을 때였다. 남편은 수술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고, 예닐곱 명의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면서도 소란스럽게 사담을 주고받는 분위기 속에서, 수술실의 백색 조명은 어찌나 차갑고 서늘했는지. 간호사들의 말 소리가 뒤섞여서 나에게 하는 말인지, 자기들끼리 하는 말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간신히 알아들은 말들로 척추 주사를 위한 자세를 잡고나니 (침대에 걸터 앉아서 등과 어깨를 앞으로 구부정하게 내린 자세) 호흡을 가다듬기도 전에 찌릿하고 차가운 액체가 척추신경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 때는 정말 마음이 너무 약해지고 외로워서 울뻔 했지만... 마스크에 떨어뜨려놓은 아로마 오일 한 방울의 힘으로 버텼다. 곧바로 다리의 감각이 사라지고, 간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침대에 눕고 나니 남편이 들어왔다. 이 때부터 본격적인 수술이 시작되었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그리고 <슬기로운 의사생활> 같은 드라마를 봐도, 한국에서는 세상에 처음 나오는 아기를 배려해서 분만실 조명도 어두컴컴하게 해놓고 클래식 음악도 틀어놓고 한다던데, 미국 병원에는 전혀 그런게 없었다. 눈부신 백색 조명과 소란스러운 분위기 그대로 수술이 진행되었다. 나와 남편은 가림막 뒤편에서 서로 손을 꼭 잡고 아기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마취약이 잘 들어서 배가 갈라지는 느낌이나 고통 같은건 전혀 없었고, 복부가 강하게 압박받는 느낌이 여러 번 들었다. 압박의 강도가 점점 세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몸 전체가 강하게 흔들렸다. 물론 나는 상반신이 흔들리는 것만 느꼈지만. 몇 초 뒤, 의사와 간호사가 "good size boy", "nice" 같은 감탄사(?)를 주고 받는걸 듣고서야 남편에게 "뭐야? 애기 나왔어? 나온거야?" 소리쳤다. 남편도 나도 애기 울음소리가 들리기만을 기다리며 몇 초를 기다렸다. 그 몇 초 동안 얼마나 목이 탔는지. 아기가 건강하게 나온게 맞겠지? 왜 안 우는거지? 혹시 문제가 있는건가? 원래 바로 안 우는건가? 머릿속이 하얗게 복잡해져 갈 때 쯤, "응애~" 하는 소리가 들렸고, "born at eleven twenty two (열 한 시 이십 이 분에 탄생)" 라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이어서 들렸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나도 모르게 나오는 눈물. 기쁨인지 긴장이 풀린 탓인지 뭔지도 모르게 일단 흐느꼈다. 진짜 애기가 세상에 나왔다니. 곧바로 양수에 허옇게 탱탱 불은 아기가 눈 앞에 나타났다. 간호사는 잠깐 아기를 나에게 보여준 뒤, 남편을 한쪽으로 데려가서 탯줄을 자르게 했다. 다시 내 옆으로 돌아온 남편은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듯 했다. 물기가 다 닦아진 아기는 천에 감싸진 채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고 한 간호사가 마침내 셋이 된 우리의 가족사진을 찍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직 배가 훤히 개복되어 피범벅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스마트폰 렌즈를 쳐다보며 기념사진을 찍은 그 상황이 너무나 아이러니지만... 어쨌든 현대 의학과 기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귀중한 사진이다.


그 와중에 의사 선생님은 난소 물혹 제거술을 이어나갔다. 한 간호사가 "We have another baby here" 라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고, 의사가 갑자기 남편에게 잠깐 일어서 보라고 시켰다. 

"남편분~ 일어나서 이것 좀 보세요. 이쪽이 정상적인 난소고, 이쪽은 물혹이 이렇게 크게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다 제거할 수 밖에 없어요."

"아, 네. 네."

이건 또 무슨 상황인지. 가림막 뒤로 펼쳐진 피투성이 수술 현장을, 나도 한 번도 실물로 보지 못한 내 뱃속 장기를, 남편이 목도하고 있었다. 설마 의사 선생님이 이걸 남편에게 실물로 보여줄거라고는 나도 남편도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계속 누워 있었으므로 아무것도 못 봤지만 아마 그 순간 남편의 얼굴은 양수에 불은 아기의 살색 만큼이나 허옇게 질렸을 것이다.


잠시 후 남편은 간호사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아기와 함께 수술실을 나갔다. 의사 선생님이 내 배를 닫는 동안 남편과 아기는 회복실에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는다고 했다. 너무나 길게 느껴지던 다시 혼자만의 시간. 그래도 수술이 끝나고 나서 마지막에 의사 선생님이 한국어로 수술이 잘 진행되었고 오른쪽 난소는 이상이 없다는 설명을 해주는데, 누군가 내 옆에서 모국어로 이야기해주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너무 위로가 되서 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집에서 의사 선생님 오피스까지 차로 한 시간을 가야하는 거리라 검진을 다닐 때 마다 매번 멀다고 투덜거렸었는데... 수술 마지막 순간에 받은 그 심적인 위로만으로도 길었던 이동시간들을 충분히 보상받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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