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멋대로 컨텐츠 크리에이터라고 명명해버리기
인스타그램 계정을 제대로 오픈 해본 건 아마, 3월쯤이었다.
영국에서 돌아와 영국으로 다시 나갈 궁리에만 몰두해있던 그때, 이제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단 것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다. 부모님에게 더 이상 도움을 받아선 안 될 나이에 비로소 도달했단 것도.
처음엔 가볍게 생각했다.
그때쯤 우연찮게도 내 눈에 인스타그램 매거진 계정이 채이기 시작했고 영화나 음악, 패션 그리고 책을
다루는 계정들을 보며 나름 호기롭게 시작해봤던 계정이었다.
좋아하는 영화들이 너무 많고 하루에도 컨텐츠에 허우적거리며 사는 사람들 중 한명이었기에
뭔가를 소개한다는 개념 자체에 흥미를 나도 모르게 이미 느끼고 있었다.
그 전까진 빈둥빈둥 영국에서 아르바이트로 돈이나 벌면서 타국생활에선 필수불가결한 외로움을
불평하며 눈 앞에 닥친 현실을 도피하기 바빴다. 고맙다고 해야 할까.
시간은 영국에 돌아오고 나서야 내 등을 떠밀기 시작했고, 난 이제 정말 뭐라도 해야 했다.
CV에 그 흔하다는 인턴 경력도 없던 내게 밀려오던 위기감은 이제 내가 처리해야하는 어떤 것이었고,
일단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한 후, Figma를 독학하기 시작했다.
독학이랄것도 없는게, 한 가지를 오래 보는 걸 너무 힘겨워하기 때문에 유튜브로 강의 영상 이런거
모르겠고 그냥 닥치는 대로 만져보고 디자인했다.
첫 3월에 시작해서 요령도 없고 기술도 없던 그땐 하나하나 일일이 내 머릿속으로나마 그린 디자인의
청사진을 그대로 옮기기 위해 하루 종일 노트북 앞에 앉아 만들어내기 바빴다.
엉덩이 붙이고 일하는게 이렇게 어려운 거구나 하고 그때 처음 지각했지만 그래도 시간은 나름 빨리 갔다.
하지만 생각하고 기대한 것 만큼 반응은 쉽게 오지 않았다.
당연히 나의 취향을 '안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몰릴 줄 알았는데, 그건 굉장한 오만 그리고 오산
이었으며 열심히 만들어도 반응이 오지 않음에 실망해하고 우울해하던 밤들도 쌓여갔다.
그리고 지금 난 두 계정을 운영하고 있고 팔로워는 거의 2만, 6만에 달해간다.
나름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나는 고민이 많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내 계정의 정체성은 뭘까? 내 계정에서 정말 사람들이 얻어가는 것이 있을까?
내가 너무 자가복제 컨텐츠를 만들어가고 있는건 아닐까? 단순히 사람들의 반응을 위한 컨텐츠에만
집중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진 컨텐츠 창작과정을 이대로 둬도 되는 것일까?
익숙해졌을 뿐, 고민은 더 늘어났다. 그래서 이 매거진을 열었다.
글 쓰는 걸 좋아하지만 계정에 가끔씩 올리던 글이 별로 반응이 없단 걸 알고 이제 이따금씩 올리는 것 또한, 그래서 블로그를 개설하고 브런치 스토리에도 글을 올리는 게 고민의 흔적이다.
꽤나 우스운건, 사실 이런 글을 쓰게 된 계기도 또 다른 컨텐츠를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하면..
속물같이 보일 걸 알고서라도 솔직해지고 싶었다.
브런치 스토리에는 '테마' 혹은 '얻어가는 것' 이 있어야 반응이 온다더라-하는 블로그를 보고
영화 리뷰나 영감도 올리겠지만 이런 글도 올려봐야 하나 싶어 쓴다고 안 하면 거짓말이다.
게다가 요즘 나의 고민은, 내가 이렇게 컨텐츠를 만들어도 하나도 돈이 되는게 없다는 사실.
돈도 못 버는데 난 내 맘대로 나를 컨텐츠 크리에이터 라고 한게 민망한 요즘,
여러가지 고민이 많지만 그래도 머리속의 이런 고민들 공유하면 점점 나아지고 빛이 보이겠지
하며 이 글을 마친다.
찬찬히, '돈 못 버는' 컨텐츠 크리에이터는 어떻게 살아가는지 조금씩 써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