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우린 다시 부르리라

<하데스타운>

by Raffe
이미 결말을 알고 있지만,
거대한 세상 앞에 내 모습은 너무나 초라하고,
내 발버둥에 미동조차 않는 듯 하지만,

그것이 세상의 진실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마음으로,
조금이나마 세상이 비틀어지길 바라는 희망으로,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지키고 싶은 간절함으로,

이번에는 뒤돌아보지 않으리라,
우리의 길을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으리라,
그런 우리를 보며 누군가가 따라오게 되리라,
계절과 바람이 기억하던 모습으로 되돌아오리라,

굳게 믿으며,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렇게 믿어보면서,

또다시 한번,
그들의 사랑 노래를 잃어버린 세상을 향해,

그럼에도 우린 다시 부르리라, 이 슬픈 노래를.
그럼에도 우린 다시 내딛으리라, 이 차디찬 발걸음을.




지난 9월, 잠실 샤롯데시어터에서 뮤지컬 <하데스타운>을 보고 왔다. 원래 뮤지컬 쪽에 그렇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리어 이런저런 넘버들을 챙겨보다 보니 한번 관극해보고 싶어서 다녀왔다. 세상에는 재밌고 하고 싶은 것은 너무 많은데 시간과 돈이 부족해서 모두 놓쳐버리는 것 같은 요즘, 그럼에도 놓치고 싶지 않아 발을 잠실로 옮겼다.


극의 내용은 만화책으로 익숙한 그리스 로마 신화를 각색한 내용이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 그리고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이야기를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면서 기존 정석적인 뮤지컬에 비해 좀 더 재즈풍의 음악으로 가득 채운 송스루 뮤지컬이다.


위에도 말했듯이 넘버들은 뮤지컬이라고 했을 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성악풍의 곡보다는 좀 더 재지하고 흥겨운 느낌. 저번에 봤던 <디어 에반 핸슨>도 그렇고 최근에 만들어져서 시상식에서 상 받고 무대에 올려지는 뮤지컬들의 트렌드가 좀 다양하고 부드러운 종류의 음악으로도 만들어지는 느낌. 만약 <지금 이 순간> 같은 장엄한 느낌을 기대한다면 조금 호불호가 갈릴지도?


캐릭터들도 꽤나 매력적이었고, 특히 회전하는 무대장치와 조명을 이용한 연출이 뛰어났다. 넘버 <Wait for me>와 <Doubt comes in> 장면에서의 연출이 특히나. 이야기의 흐름에 제대로 상상하게 만드는 연출이 기억에 남는다.


또 기억할만한 점은 리프라이즈를 많이 사용하는데, 그게 이야기의 구조와 꽤 잘 어울린다는 점. 예를 들면 1막에서 불안에 떠는 에우리디케를 향해 확신에 찬 오르페우스가 외치던 <Wait for me>를, 2막에선 반대로 불안에 떠는 오르페우스를 향해 확신에 찬 에우리디케가 힘껏 외친다. 1막에서 숨 쉴 틈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일하는 일꾼들이 등장하는 <Chant>가, 2막에서 일꾼들이 오르페우스의 노래에 감화되어 고개를 들며 일어설 때 다시 울려 퍼지고, 오르페우스는 <Epic>을 서로 다른 상황에서 세 번에 걸쳐 다시 부른다. 반복되는 테마와 리프라이즈를 적재적소에 잘 사용한 것이 인상 깊었다.





이야기의 골자는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오르페우스 신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나 <올림포스 가디언> 같은 매체를 통해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이고 수많은 이야기들의 영감이 되어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이다.



음악의 여신 뮤즈의 아들인 오르페우스는 아름다운 리라연주와 노래로 유명한 뮤지션이었다. 아르고 호 원정대에 참여하여 세이렌의 유혹을 노랫소리로 물리쳤을 정도. 그런 는 아름다운 에우리디케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된다. 그들에게 행복한 나날만이 가득하리라 기대했겠지만 어느 날 에우리디케가 방울뱀에 물려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슬픔을 이기지 못한 오르페우스는 단신으로 하데스의 세상, 저승으로 향한다. 아름다운 연주와 노래로 앞을 가로막는 모든 이들, 뱃사공 카론과 케르베로스를 감동시키고, 왕좌에 앉은 하데스와 페르세포네까지 눈물짓게 한 오르페우스. 하데스에게 이승에 돌아갈 때까지 따라오고 있는 에우리디케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조건으로 그녀를 데려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는다. 다시 집으로 향하는 머나먼 길, 오르페우스는 결국 돌아서면 안 된다는 말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았다가 에우리디케를 영영 잃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이다.


수많은 창작물들의 원전이 되어 전해져 내려온 오래되고 슬픈 이야기. 이 이야기가 하데스타운의 이야기의 원형이다.




<하데스타운>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위의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따라가지만, 이야기가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세부적인 부분에서 조금씩 오늘날 우리의 시대에 어울리게 각색이 되어있다. 가장 먼저 오르페우스가 메고 있는 악기가 요즘 시대에 어울리게 기타로 바뀌었다는 세세한 차이점에서부터 시작해서, 이야기의 배경도 조금씩 우리의 시대에 맞게 변화하였다.


이야기는 오래된 이야기를 소개하겠다는 이야기꾼 헤르메스의 목소리에서 시작하여 에우리디케를 처음 만난 오르페우스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이 무렵 세상은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계절이 뒤바뀌고 거센 바람이 겨울마다 불어와 먹을 것을 앗아가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에우리디케도 이런 힘든 세상 속에서 추위를 피해 돌아다니는 떠돌이 소녀. 오르페우스는 이런 세상을 원래대로 되돌릴, 잊혀진 사랑노래를 기억하고 있는 예술가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멜로디를 바탕으로 세상을 다시 되돌리리라는 부푼 꿈으로 에우리디케를 설득하고, 그녀와 결혼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들의 계절이 뒤바뀌고 바람이 너무 거센 이유는, 사실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결혼 생활이 위기에 있기 때문이다. 가방 가득 여름을 담고 다니는 저승의 여왕이자 봄의 여신인 페르세포네와 하데스는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고, 때문에 페르세포네가 다시 저승으로 돌아다는 시기가 들쭉날쭉해지면서 봄이 있었던 것이 언제인지 기억하기 어려운 나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번 해에는 평소보다 너무 일찍 하데스타운으로 돌아가버린 페르세포네. 지상에는 때 이른 추위와 바람 때문에 사람들이 먹을 것을 잃고 있다. 오르페우스는 세상을 되돌릴 노래를 쓰느라 작업실에 틀어박힌 사이, 불안함에 몸부림치는 에우리디케는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뱀과 같은 하데스의 말에 속아 스스로 하데스의 마을로 향한다.


하데스의 나라는 단순히 저승이 아니었다. 지하의 모든 광물을 주관하는 그는 서부개척시대의 광산주, 또는 산업혁명시대의 공장주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철로 만들어진 그의 제국을 운영한다. 그의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지하세계의 백성들을 그의 노동자로 전락시켜 고개를 들 틈새 없이 일에만 몰두하게 한다. 또한 자유를 위해서는 꼭 커다란 벽을 쌓아야만 한다는 프로파간다를 지하세계의 일원들이 되뇌이게 한다.


뒤늦게 에우리디케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 오르페우스. 지하세계로 사라진 그녀를 되찾기 위해 헤르메스의 도움을 받아 지하세계로 다시 향한다. 가진 것은 오직 기타와 두발, 그리고 목소리뿐이지만 그녀를 되찾아야만 한다는 일념으로 까마득해 보이는 길을 향해 나서는 것이, <하데스타운>의 줄거리이다.





사랑 노래
아주 오래된 사랑 이야기
슬픈 노래
우리 다시 부르리

It's a love song
It's a tale of a love from long ago
It's a sad song
But we're gonna sing it even so


결말을 아는 채로 좋아하는 영화를 다시 관람해 본 적 있는지? 다시 보는 중에,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등장인물을 지켜본 적이 있는지? 영화에 정말 과몰입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때의 속마음은 참 복잡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올바른 길을 선택할 것이라고 다짐하는 그를 보면서, 그의 비극적인 결말에도, 그의 선택을 응원하게 된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의 결말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이야기에서부터, 활자로 새겨진 글, 붓으로 그린 그림과, 연극, 영화, 만화와 같은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재해석되고 다시 불리어져 내려오다 보니, 우리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다. 오르페우스는 결국 고개를 돌리고 에우리디케를 바라볼 것이고, 에우리디케는 지하세계로 다시 끌려갈 것이다.


그렇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는 우리는 작품의 세계에 들어가면서 혹시나 이번에는 오르페우스가 뒤돌아보지 않을 순 없을까 하는 기대를 내심 품게 된다. 모두가 이미 슬픈 결말을 알면서도, 이번에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오르페우스가 단신으로 지옥으로 향할 때, 가는 길에 만난 장애물 앞에서 필사적으로 노래 부를 때, 절망에 찬 목소리로 일꾼들을 향해 노래를 부를 때, 떨리는 마음으로 하데스 앞에서 겨우내 완성한 노래를 부를 때에, 같은 심정 아니었을까? 자신이 어찌할 수 없이 거대한 세상 앞에서, 슬픈 결말이 눈에 그려지지만,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절박한 마음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것.


비록 이야기의 끝에서 하데스를 향한 의심, 자신을 향한 의심을 거두지 못해 뒤를 돌아본 오르페우스는 원하던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인간에게 누구나 있는 결함 때문에 불안과 의심 속에서 결국 스스로 일군 모든 것이 망가지고 이야기는 마무리되는 듯하다. 그의 발걸음은 결국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역사 속에서 똑같은 일들이 얼마나 많이 반복되어 왔는가? 희망찬 미래를 꿈꾸던, 모질고 각박한 세상 이면의 밝은 내일을 노래하던 그 시대의 오르페우스들이 너무나 거대한 하데스 앞에서, 또는 자신의 치명적인 결함 때문에, 무너지고 스러지는 것. 역사를 거듭하여 반복되고, 장소를 초월하여 반복되는 일이다. 우리 각자의 노력이 그런 커다란 벽에 막혀 멈추게 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가 돌을 꼭대기에 세워놓으려 애쓰는 시지프스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렇지만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속에서, 페르세포네는 이번에는 지상으로 되돌아올 시기를 놓치지 않아 다시 봄이 맞이했고, 오르페우스가 건네준 카네이션은 자기도 모른 채 에우리디케의 손에 쥐어져 있다. 이야기 속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무엇인가가 달라져있다. 우리도 알지 못한 채 조금씩이나마 우리의 이야기는 변해갈 테니, 결말을 예단하기보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시작해 보는 것. 그렇기에 우리는 다시 수많은 오르페우스의 여정에 함께 할 것이다. 비록 그 끝이 슬픈 결말일지라도.


그럼에도 우린 다시 부르리라
중요한 것은 결말을 알면서도 다시 노래를 시작하는 것
이번엔 다를지도 모른다고 믿으면서

But we sing it anyway
'Cause here's the thing.
To know how it ends
And still begin to sing it again
As if it might turn out this time




뱀발로, 판타지적 요소가 많은 작품인데, 적은 장치로 뛰어난 연출을 선보임에 틀림이 없지만, 관객의 상상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다 보니 나중에 누군가가 CG에 제대로 돈 들여서 영화로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겼다. 작년에 나온 <웡카>나 <위키드>처럼. <Chant>나 <Wait for Me> 같은 넘버들은 정말 멋진 연출로 재구성되지 않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 다만 이야기의 구조가 구조다 보니 영화로 매끄럽게 연결하기에는 애로사항이 심할 것 같기도 하다 싶고. 뭐, 내가 할 고민은 아니니 누군가가 뛰어난 아이디어로 스크린에 올려준다면 기쁜 마음으로 돌비시네마로 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