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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배꼽 Mar 08. 2024

이민일기 / 육아의 희노애락

나는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함께 노는것도 돌보는 것도 어렵다. 그러나 내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자녀를 갖는다는 것은 원초적인 본능처럼 느껴졌다. 혼자 죽고싶지 않은 두려움일까 아니면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일까. 어떤 것이든 언제나 항상 너무 늦기전에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의 한켠으로는 내가 나의 부모와 같은 부모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언제나 숨어있었다. 나의 부모는 관습적이고 소심하며 남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또한 무례하기도 하고 의심도 많았으며 언제나 불안하고 걱정이 많았다. 나는 자라면서 부모에게 배운 것은 양치를 하는 법부터 시작해 아무것도 없었다. 부모를 보면서 존경하는 마음은 없었고 부모는 나의 정체성을 부정하며 어린 나의 마음을 산산조각 내었다. 


지금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았을때 꽤나 정상적인 인간이다. 친구들이 여럿 있고 회사 생활을 꽤 잘하는 편이며 나름대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정립하고 있다. 괜찮은 사람을 만나 결혼한 것 같고 이러저러 해도 크게 모나지 않은 결혼생활을 하고있다. 그러나 나의 형태를 이렇게 빚어내기까지 오랜 시간을 고통받아야 했다. 중고등학교 부터 이십대 중반까지 나를 이끌어주거나 조언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한국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도망치듯이 아무것도 없이 유럽으로 나왔다. 나는 정말로 가난하고 부끄럽고 바보같은 시절을 반복해서 보내고 나서야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을 조금 이해했고 내 길은 내가 개척해야 한다는 이상한 사명감도 가지고 있다. 그 마음가짐은 나를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는걸 전제한다. 한국사회에서는 행복한 삶에 대해 여러가지 조건이 붙는다. 그런것들에 맞추려다 보면 나는 불행한 사람인것만 상기시키게 되는데 그것을 타파하고 내가 정말 나답게 살게 된것은 멀리 떠나고 한참이나 지나서였다. 


아이를 키우면서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부모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는 그것의 반대였다. 왜 나의 부모는 이런 단순한 일들을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잘 시간에 자는것, 먹고 치우는것, 깨끗히 씻고 몸을 정돈하는 것, 뛰어놀게 해주는것, 새로운 도전을 격려해주는 것, 부모의 고뇌를 전가하지 않는 것, 걱정이 되어도 손을 놓는것. 


외국 남자와 살면서 한국남자랑 살았다면 달랐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적이지만 점점 정신병이 들어가는 것 같은 집안사에 그것을 낱낱이 보고도 부모와 나를 동떨어진 존재로 이해하는 남편에게 고맙다고 해야할까. 남편의 가족과 나의 가족은 7년 결혼생활에 한번도 만난적이 없다. 남편이 한국말을 못해서 참 다행일 때가 많았다. 


시어머니는 아이를 굉장히 잘 보신다. 눈높이를 맞추어 주고 존중해주며 따듯한 마음으로 대한다. 반면 나의 어머니는 아이의 행동에 하나하나 간섭하고 극단적인 단어를 사용하며 끊임없이 성격이나 외모를 판단한다.

아이는 계속 변하는 물같은 존재인데, 어른을 보고 배우고 우리가 사는 방법을 보고 따라하는데, 내가 불안하고 호들갑 떨고 부정적인 판단을 내려버리면 그대로 아이를 그 테두리 안에 가두는 것을, 왜 그렇게 간단한 것을 모르는 걸까. 내가 그런 환경에서 자라 이정도 사람구실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기적이다. 불행중 다행은 나의 부모가 나를 키운 방식덕분에 나는 정확히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고있다. 지금 내 아이를 대하는 나의 부모를 보면서, 아, 나는 절대로 내 부모와 같은 길을 걷지 않을 것이다. 라는것을 상기한다. 


나와 남편은 자란 환경이 매우 다름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아이를 키우는 방식에 대해서는 대부분 매우 동의한다. 우리의 공통적인 육아의 목적은 아이를 홀로설수 있는 인간으로 키우는 것이다. 나는 아이가 혼자 자고 제 손으로 숟가락을 들어 입에 넣고 화장실에 앉아 변을 보는것까지 매우 일찍 시작했다. 그런 것으로 아이가 나에게서 매정하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그저 해야하는 습관의 한 종류일 뿐. 나와 남편 둘다 집에서 일을하게 되면서 시간적으로 여유롭고 그덕에 함께 요리하고 청소하고 일하고 밥먹고 모든 일상이 가족이 함께하니 내가 어떻게 해야 더 잘 할까 이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저 이 아이가 너무 빨리 커감이 놀라울 뿐이고 그 시간을 어떻게 잘 보내야 할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있다. 유치원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게 되었을때, 내가 혼자 일주일간 출장을 가야할때, 그런 것들은 하나둘 겪어야 하는 자연스러운 일들이다. 


아이를 볼때 때때로 나나 남편의 모습이 보일때가 있다. 내가 다루기 어려웠던 나의 문제들,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학교생활에 겪었던 힘든 시간들. 우리 아이도 나의 조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런 어려움이 있을수 있겠다. 내가 키우는 방식이, 나와 남편을 믿고 아이가 조언을 듣고 따를수 있는 정도의 관계를 만들수 있다면 나는 부모로서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아이를 낳고 나서 뒤집힌 나의 세상이, 아이는 때때로 울고 소리를 질러도 내 삶은 그 전과 비교해 너무나 평화롭고 꽉 차있다. 이런 정신없는 시간들이 되돌아보면 아쉬운 날이 오겠지. 어쩌면 아이가 나를 떠난 후에 내 인생 3막이 또 시작이 될지도. 아직은 먼 훗날 이야기이다. 아이는 마음과 몸이 건강하게 자라는게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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