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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배꼽 Aug 16. 2024

이민일기 / 외로움의 정의

아이를 낳고 첫 몇 년간은 의도치 않게 숨어 지내게 된다. 

갈 수 있는 시간도 장소도 제약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베를린에 있을 때는 친구들 몇 명이 아이를 같은 년도에 낳아서 아이를 낳고 생기는 새로운 일들을 공유하고 공감할 기회가 종 종 있었다. 그때에도 조금 고립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래도 짬짬이 일을 하기도 하고 육아휴직 동안에도 나름대로 쉬고 놀러 다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신생아 때는 오히려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아이와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평화로웠다. 이제 다른 나라로 와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려니 그것도 시간의 제약이 많아서 어려운데 막상 커가는 아이는 언제나 밖에 나가 놀고 싶어 하니 의도치 않게 가족나들이를 열심히 다니고 있다. 같은 나이 또래가 있는 친구가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자립적인 엄마로서 자립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내가 일에 매달리는 이유는 내가 주체가 되는 나의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이를 낳고 나서 나의 세상은 천지개벽을 하였고 모든 일에 최우선은 아이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내가 자주적으로 살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계속해서 스스로 상기시킨다. 최선을 다해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최선을 다해서 나의 인생을 살고 싶었다. 또 아이를 최선을 다해서 독립적인 인간으로 키우고 싶다. 그러나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사는 것은 모두 밸런스를 맞추는 것의 연속이다. 일하는 시간과 가족과의 시간, 사회생활을 하는 것과 혼자 있는 시간, 아이에게 마음대로 하도록 놔두는 것과 제지해야 하는 순간, 위험과 모험의 갈래, 규칙과 창의력의 사이... 사소한 순간들도 정확히 답을 모르겠는 때가 자주 있다. 육아의 방향에 큰 틀을 정해놓은 것으로 괜찮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결과론적이지 않다. 내가 바라는 것과 현실은 언제나 괴리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마음을 놓아야 하는 것이다. 인생에 존재하는 모든 위험을 내가 막아줄 수 없는 것처럼. 그래서 아이가 살아갈 인생을 내가 전부 걱정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가 행복한 삶을 살 것이다. 아이는 나를 언젠가 떠나갈 것이고 아이의 삶이 모험과 낭만, 어려움이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 자신에게 소중한 가치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독일에서 노르웨이로 온 뒤에 가장 힘든 점은 일을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한 도시에 사는 몇 안 되는 남편의 친구들은 너무나 마음이 따듯하고 정착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지만 내가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항상 한걸음 물러난다. 남편도 노르웨이에 돌아와서 그 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실없이 웃었다. 이런 사람들이었지 노르웨이인은. 미소를 짓고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베를린에서 살 때는 대부분 나 같은 이민자가 많아 오히려 스스럼없던 것이 있었다. 다들 자신의 문화가 남의 문화와 매우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지했기 때문에 방식이나 태도가 달라도 튀지 않는 편이었다. 내가 친한 친구들은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었고 항상 여럿이 모였기 때문에 영어가 주된 언어였다. 십몇년을 살았고 독일어도 할 수 있었지만 마음에 닿는 언어와 문화는 아니었다. 노르웨이에는 가족의 일원으로 오니 어쩐지 자꾸 노르웨이인에게 둘러싸여 있고 나의 다른 점이 더 부각되는 것이다. 외국생활 14년 만에 진짜 이 나라의 사회에 살러 왔구나 하는 마음이 들이치고 아 너무나 소외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언어에 대한 압박감도 색다르게 엄청나게 다가온다.


매일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밥도 못 먹고 컴퓨터에 앉아 일을 하다가 네시쯤 아이를 데리고 와 놀고 다섯 시에 저녁을 준비하고 여섯 시에 밥을 먹고 일곱 시 반에 아기를 재운다. 그럼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녹초가 되어서 과자나 좀 뜯어먹다가 열한 시에 잠드는 생활. 쳇바퀴 도는 생활이 이런 것이구나! 열심히 5일간 회사 다닐 때도 비슷했던 것 같은데 주말이나 주중에 하던 사회생활이 빠지니 컴퓨터만 붙들고 집에만 있는 이 생활이, 이러한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없는 것이 가끔은 너무 사무친다. 때때로 남편과 대화하다가 열이 터질 때는 나의 억누른 감정이 어디선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남편은 이해하지 못하기에 입을 다문다. 아무렇지 않은 척 노르웨이 사람들 사이에 앉아서 소외되는 내 모습이, 이 나이에 다시 언어를 배우고 친구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정착되지 않은 중간지대에 놓여 있는 것 같은 상태가 -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나를 깊은 곳으로 끌어내린다. 


나의 아이는 한국인이지만 노르웨이인이다. 아이가 자라기에 더 좋은 환경이기에, 한국에는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없기에 나는 이곳에서 살기로 결정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을 경험시켜 줄 것이고 아이는 아마도 노르웨이 인으로 자랄 것이다. 이유는 충분하고 논리적이었기에 내 인생에서 가장 수고로웠던 이민을 하고야 말았다. 어떨 때는 이럴 바에는 차라리 시골 어디 저 구석에 들어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아주 은둔을 해버리면 그저 고뇌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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