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날씨가 덥다가 다시 서늘해졌다. 비가 왔다가 구름이 꼈다가 그러면 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도 크다. 그래도 눈 뜨자마자 열심히 먹을거리를 싸고 낚싯대를 싸고 저 언덕 위에 사는 친구를 픽업해다가 Søtra까지 나왔다. 한 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곳에는 이미 몇 명의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낚시를 하고 있다. 낯가리는 노르웨이인 아니랄까 봐 대여섯 명 바닷가에 서있는 걸 보고 너무 붐빈다며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한다. 몇십 분이 더 걸려 바위 넘고 수 풀지나 도착한 바위로 덮인 바닷가에 자리를 잡았다. 시간은 이미 오후 한 시가 넘었고 도착하자마자 배가 고파 가스버너를 한구석에 키고 소시지를 구웠다. 한 명은 주섬주섬 잠수복으로 갈아입고 한 명은 또 낚싯대를 꺼내서 준비하고 한 명은 소시지를 굽고 다들 자기 할 일에 바쁘다. 아이는 위험한 바닷가를 두려움도 없이 깔깔대며 뛰어다닌다.
한 명은 바다에 뛰어들더니 저 멀리 가버렸다. 두 명은 열심히 낚시를 하는데 생선은 한 마리도 보이질 않고 자리를 바꾸어가며 해본다. 갓난아기를 안은 엄마는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고 나는 뛰어다니는 아이를 붙잡으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도 두런두런 이야기하다가, 뭘 주워 먹다가, 저 멀리 수영하는 친구에게 인사도 한번 하고 드디어 잡힌 생선 한 마리에 다들 기뻐했다. 바람이 꽤 많이 불었지만 예상치 못한 따듯한 햇빛에 밝게 내리쬐었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굳이 해야 하는 일도 없이 정처 없이 있으니 여기만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처음 만나는 커플은 너무나 친절했다. 백일 남짓 된 아기를 안고도 길도 없는 곳을 지나 바닷가에 여유롭게 앉아있는 그 엄마의 편안함이 좋았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지만 사소한 질문이나 농담거리로 함께 웃었다.
독일에서는 친구들을 만나면 반가움의 표시로 자연스럽게 껴안고는 했는데 노르웨이에서는 왜인지 그런 게 어색하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다가가면 멀뚱히 어색하게 마지못해 안는 것 같기도 하다. 처음 만났던 사람들은 하루종일 함께 있었지만 그러기가 어색해 보여 악수만 나누고 헤어졌다. 자신들도 오슬로에서 살다가 이사 와서 친구가 별로 없다더니 나중에 너무 즐거웠고 만나서 반가웠다며 연락이 왔다. 나이가 들고 어린 아기가 있으니 구태여 밖에 나가서 노는 것도 드물고 사람을 새로 사귀는 게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또 이것저것 재는 것은 사람을 많이 만나면 자연스럽게 된다. 어쨌든 가까운 지인이 된다는 건 편안한 사이가 되어야 한다는 건데 여건도, 가치관도 어느 정도 맞는 점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대부분 서로 잘 알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날 만난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느낌이었나 보다. 흔쾌하게 다음번 만날 일을 기약해 본다.
베르겐에서의 하루는 어쩌면 지루하고 단조로우며 큰 이변이 없다. 그래도 주말마다 열심히 산도 다니고 바닷가도 다닌다. 낚시를 하면서, 산을 오르면서 땀을 줄줄 흘리며, 이런 하루를 감사하게 생각하며 보낸다. 아기를 낳고 나니 이런 평화로운 날들이 가장 최고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값비싼 식재료를 보면서, 갑자기 크게 늘어난 아파트 임대료나 유치원비용을 내면서 숨이 턱 막힌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된다는 남편의 말에 그래 그런가 보지 하고 눈감아 버린다. 산을 가겠다고 비싼 장비를 사고 등산복을 입으면서 거울을 보면 몇 년 전에 베를린의 클럽에서 열심히 춤추던 건 없던 일 같이 되었다. 그래도 그게 없던 일은 아니라 또 베를린에 방문하여 옛 친구들과 노는 날도 다시 오겠지. 지금은 마치 작년의 태풍 같던 이민을 잠잠히 하고자 하는 시간이라 여긴다. 6개월이 지나고 매일 일과가 생기니 조금 살 것 같다.
운전도 느리게, 사는 것도 느리게. 사는 데에 많은 비용을 지불하지만 그것은 안정감으로 돌아온다. 이상한 일이다. 언젠가는 집을 살 수 있겠지. 지금 많은 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되겠지. 이런 마음가짐이 이제 조금 이해가 된다. 북유럽에 산다는 건 지루하고 느긋한 생활상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다. 어찌 되었던 그런 삶을 살 준비가 되어있는 것 같다. 평화로운 일상이 최고인 것 같은 그런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