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는 휴가철이 되자 모두들 서둘러 어디론가 떠난다. 휴가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독일에서도 이렇게 휴가철을 느끼지 못했는데 모두들 어떻게 휴가를 떠나는지 자랑하느라 바쁘다. 여름휴가를 따로 계획하지 않고 학교 방학을 피해서 이주 정도 다녀오는 편이었는데 아이가 생기고 노르웨이에 와서 일을 하기 시작하니 유치원 방학에 맞추어 휴가를 가야 했다. 3주를 쉬니 아기 때문에 전혀 일을 할 수가 없고 조금씩 조금씩 컴퓨터에 앉았다가도 금방 일어났다. 나나 남편이나 프리랜서로 일을 하기 때문에 따로 휴가라는 것을 낼 수 없는 상황이고 일을 완전히 쉴 수도 없으니 오슬로 근처에 있는 시댁에 가기로 했다. 휴가 첫 주에는 노르웨이 이민하고 처음으로 베를린에서 친구가 와주었고 멀지 않은 친구네 별장에 놀러 가 이틀밤을 자고 오기도 했다. 모두들 별장 하나씩 산이든 바다이든 가지고 있는 게 워낙 보통이라 부럽기도 하고 그런 곳에 가 조용히 쉬고 올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도 감사하기도 했다.
차가 생기고 나서 차를 끌고 캠핑도 가고 낚시도 다니고 그랬다. 이번에 처음으로 베르겐에서 오슬로까지 차로 가기로 했다. 나는 보통 오슬로만 가본 경험이 있으니 이번 기회에 피요르드도 보고 조금이나마 즐겨보고자 결정했다. 아이가 있으니 7시간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아기에게는 무리라 중간에 캠핑을 하기로 결정했다. 베르겐에서 가장 빠르게 가는 길은 관광객이 많이 가는 피요르드에 있는 플롬이라는 도시까지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24 킬로미터의 긴 터널을 지나고 산 사이를 지나서 완만한 산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오면 오슬로에 거의 다 온 것이다.
자연이 아름답다는 노르웨이지만 포장이 되어있는 도로가 적고 많은 피요르드가 깊숙이 내륙으로 들어와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아도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또한 여행객이 많은 여름에는 길에서 사고가 나기라도 하면 길을 폐쇄하기 때문에 시간 지연이 많이 된다. 아니나 다를까 베르겐에서 두 시간 반쯤 떨어진 구드방엔 (Gudvangen)에서 점심을 먹고 쉬었다가 떠나려고 하는 순간 바로 앞 터널에서 사고가 나서 한 시간 반을 기다려야 했다. 돌아갈 길이 없으니 그냥 기다려야 한다. 아기랑 여행할 때는 이런 순간에 아찔하다.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사고가 수습되고 다시 남은 한 시간 반 길을 떠날 수 있었다.
캠핑을 하려고 캠핑 장비를 바리바리 싸서 가는데 친구가 부모님과 함께 별장에 있다고 거기서 자고 가라고 제안했다. 별장은 베르겐과 오슬로 딱 중간에 있었고 큰 가족이라 별장도 방이 많아서 캠핑보다 아주 편하게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지대에 위치한 별장은 너무나 아늑했다. 친구 어머니는 40년 전에 노르웨이로 이민한 분이라 나에 대해 걱정도 관심도 많으시다. 우리를 위해서 한 대접 차려주시고 아이를 돌보아주시고 아낌없이 내어주신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몇 마디에서 묻어 나오는 따듯한 마음이 많은 위로가 되어 다가온다. 다음날 아침에도 한상 가득 아침을 대접해 주시고 떠나는 길 오랫동안 배웅해 주시며 남은 길 조심히 가라 당부하신다. 언제나 빚지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까지 든다. 정이라는 것이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니다. 정말 편하게 하룻밤을 자고 또 길을 떠났다.
내륙에서 오슬로까지는 대부분 지루한 시골길이다. 큰 산도 없고 바다도 없고 시골마을 같은 곳을 여러 번 지나고 작은 길을 달려 시어머니 집에 도착했다. 느긋하게 같이 요리도 하고 바비큐도 하고 때때로 일도 하고 아이를 봐주는 손길이 한 명 더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아이를 키울 때 가장 어려운 점은 가까운 가족이 없다는 것이다. 급한 일이 생길 수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이를 밤에 재우고 나와 남편은 둘만 밤낚시를 하러 나갔다 왔다. 아 이렇게 조용할 수가. 고요한 산길을 걸어 호숫가에 도착하니 세상에 우리 둘만 있는 것 같다가도 오슬로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소리가 때때로 초를 친다. 오는 길에 오소리도 보고 어디서 나온 말들인지 말 두 마리가 차 문을 막고 있어 한참을 기다렸다. 밤에는 도란도란 얘기도 하고 시어머니는 자꾸 날 뭘 먹이려고 하셨다. 시어머니는 내가 너무 일을 많이 하니 남편이 더 돈을 많이 벌어와 가족을 지탱해야 한다는데 정작 남편은 나를 일하라고 열심히 응원한다. 시어머니가 내편인 것 같을 때가 더 많아서 나도 자꾸 시어머니 편을 들게 된다. 시어머니 집에 있던 옛날 장난감들을 모두 정리해 우리 차에 실으며 시어머니가 조금 아쉬울 것 같다는 마음도 들었다. 옛날에 자신의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것들이라 30년을 소중히 간직하셨는데 이제 우리에게 넘겨주신다. 소중히 간직된 오래된 물건들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가 있다. 그 마음을 우리가 잃어버리지 않고 잘 넘겨줄 수 있기를.
휴가를 잘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한번 해봐서 그런지 더 쉬운 것처럼 느껴졌다. 산길을 지나 캠핑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집에 돌아오니 최고인 것 같지만 또 조용하고 외로운 나날들이 계속된다. 유치원 여름휴가 기간은 끝나고 다시 열심히 일을 할 시간이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니 밤낮으로 일하는 것 같은 느낌도 있지만 또 언제나 필요하면 멈출 수 있다는 점은 이득이다. 장점을 생각하고 중심을 잘 잡아야지.
여름휴가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