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노르웨이로 돌아온지 이제 2주일 정도 되었다. 26시간의 비행을 뒤로 하고 돌아온 이 산속의 집에서 우리는 몇일을 걸려서야 겨우 시차를 적응했다. 한살 하고도 두달 된 나의 아기는 그 긴 시간동안 잠도 잘자고 생글 생글 웃었지만, 마지막 몇시간은 너무나 힘들고 피곤함을 못참고 괴로워하는 걸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다시는 안할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그렇지만 다시는 안 할수는 없겠지.
새벽 세시쯤 일어나 오후 다섯시쯤 되면 비몽사몽 하다가 차근 차근 조용 조용 일상으로 돌아왔다. 수없이 많은 일을 처리하고 그 와중에 아기는 바닥을 기고 걷고 웃다가 울다가 정신 없이 하루가 간다. 아이를 낳고 나니 왜이렇게 시간이 빨리가는지. 이전에는 즐길 수 있는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시간을 잡으려 애쓰다가 번번히 놓치는 느낌이다. 아이가 있으면 미룰수도 없고 고민할 수도 없다. 지금 당장 해야지 겨우 해낼수 있다. 이민을 하면서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움은 해본 사람만이 알것이다.
이러한 괴로움은 물론 내가 자처해서 하는 것이며, 한국의 가족들은 이러한 괴로움을 잘난척이라고 해석한다. 고난도 내가 자처한 것이며 한국의 모든 것이 너무나 좋은데 그것을 왜 뒷전으로 하고, 왜 가족들을 뒷전으로 하고 떠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도저히 숨을 쉴수 없던 집안 공기. 그런 숨막힘이 나의 일상이었다. 방문을 닫지 못하거나, 일기를 쓸수 없거나, 집을 가고싶지 않아 밖을 배회해야 하는 그런 시절. 이제는 먼 예전이 되었지만 아직도 가족들 만나면 그 영혼의 냄새가 꾸역꾸역 밀려온다.
아는 사람의 도움으로 잠시 지낼 수 있었던 이 집 거실은 난방은 되지 않아 아주 춥다가도 난로에 장작을 때면 집 전체가 따듯해진다. 너무 따듯해 입고있던 두꺼운 양말도 벗고 가디건도 벗는다. 아기도 그때는 내복만 입히고 자유롭게 집안을 돌아다닌다. 어떤 날들은 너무나 추웠지만 또 그 나름대로 유리같은, 깨질것 같은 상쾌함이 밀려오기도 했다. 습기찬 공기가 바람이 되어서 불때는 숨을 막아 컥컥대기도 했다. 아기는 그런 바람을 맞고 깜짝 놀라 산을 걸어가는 내내 엉엉 울었다.
매일같이 산에 갔다. 그렇게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 빨간 오두막을 종점으로 두고 처음 갔던 거리는 너무나 멀었고 힘들었지만 그 다음날, 또 다음날 갈때는 점 점 가까워졌다. 아기는 등에 지고 처음 해보는 것에 짜증내고 울었지만 점점 웃는 소리도 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옹알이도 한다. 나무도, 눈도, 구름도 쳐다보고 웅얼웅얼 거린다. 등뒤에서 잠들어 침을 흘리다가도 금방 일어나 주위를 둘러본다.
아이를 낳고 아팠던 관절은 시간이 지나도 잘 나아지지 않았다. 이사를 하고 여행을 하면서 통증이 많이 심해져서 밤에 누우면 욱신거려 잠을 못이룰 때도 있었다. 딱히 할수있는 일이 없기에 통증을 그러려니 하다가도 괜시리 기분이 나쁘고 무기력하게 만들 때도 많았다. 추운 날씨, 아픈 관절, 아기와 집에만 몇일을 있으면 정상적인 사람도 우울해진다.
산에 하루 이틀 갈수록 걷는 속도가 빨라진다. 오르막길을 걸을때는 숨이 차지만 몸이 따듯해지면 힘이 난다. 아기를 등에 지고 몇키로를 내려오는게 가능해졌을때 내복은 땀으로 젖었지만 멈추지 않고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몸이 뜨거워지니 고통이 줄어든다. 팔이 아파서 어떤 운동을 하기도 힘들었는데, 몇일째 고통이 없이 편안했다.
남편 친구 가족들의 따듯한 마음과, 나를 매일같이 데리고 산으로 가는 인내와, 별 볼일 없이 와서 아기를 돌봐주는 배려가 나의 고뇌와 압박감을 상쇄한다. 고여 있으면 마음은 자꾸 상한다. 조용한 산길을 올라가는 일과가 정신을 맑고 단순하게 한다. 아기는 계속 큰다. 이제 꽤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어금니가 나고 다양한 소리를 낸다. 엄마라고 하지 않지만 천천히 뒤뚱뒤뚱 걸어 나를 안아주고 이마를 맞대는 아기가 모든 일이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