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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배꼽 Feb 02. 2024

이민일기 / 독일생활의 끝

독일에서 독일어를 배우고, 실수도 하고, 어려움도 있고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면 살아본 사람은 다 안다. 독일사람들의 꽉막힌 방식과 미친듯이 느린 일처리 속도. 오랫만에 한국에 가면 사람들이 어쩜 그렇게 친절한지. 그렇다고 모두 좋은 것만 있는건 아니지만 공인인증서와 핸드폰 인증만 빼면 한국의 일처리는 대단하다. 또 재량으로 정도껏 도와주기도 하고 유연하게도 상황을 봐준다. 이런건 독일에서는 죽어도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오랜 시간 살면서 배운건, 서류는 필요한것 필요없는것 전부 다 들고다녀야 한다. 정부기관에서 약속시간은 절대 늦으면 안된다. 계약서는 미리 다 읽어봐야 하고 계약해지하는 법을 숙지해야 한다. 계약해지기간은 얼마나 긴지, 계약해지를 할 의향이 있다면 최소 6개월 전에는 알아봐야 쓴맛을 안본다. 


이렇게 독일에서 채찍질(!) 당해서 노르웨이에서 서류준비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더 충격적인건 친절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영사관도 그 현지에 맞춰서 분위기가 조금씩 다른 것 같다. 독일도 한국분들은 친절했지만 조금 딱딱하고 유연하지 않았는데 노르웨이 대사관에서는 내 핸드폰으로 서슴없이 전화하고 상황을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했다. 한국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런걸지도. 


어쩔수없이 자꾸 비교를 하게된다. 뭐가 좋고 나쁘다는 사실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다. 베를린에서는 식재료를 마음껏 구하고 먹고 즐길수 있었지만 노르웨이에서는 한식 재료는 대체로 구하기 힘든 것이 많다. 그러나 사람이 별로 없는만큼 만원 버스도 없고 조용하고 산과 숲이 가까이 있는것은 대단한 장점이다. 


가치는 나이가 들면서 변화하고 내 생활 습관이나 가족형태에 따라서도 변한다. 노르웨이를 가고자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이를 키우기에 더 좋은 환경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였다. 덴마크도 나에게는 굉장히 매력이 있는 곳이었고 남편의 어머니가 덴마크이고 베를린과 상대적으로 가까우며 유럽연합 안에 있는것이 심적으로 많이 거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은 노르웨이의 산과 바다가 너무나 그리워 타협하지 못했다. 아직도 덴마크를 생각하면 내심 아쉬운 마음이 있다. 결정을 했고 거쳐를 옮겼으니 그런 아쉬움은 이제 떠나보내야 한다. 


내가 독일에서 살아온 세월이, 나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아직도 한켠에는 노르웨이어를 배우며 다시 멍청이로 돌아가는 내 자신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그래도 독일어를 하기때문에 훨씬 더 쉽게 배울수 있다. 노르웨이어와 굉장히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아직 노르웨이어를 못해도 영어는 편하고 워낙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라 그점도 외국 생활한 세월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직장을 가지고 돈을 버는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지만 어찌저찌 노르웨이 돈을 버는 일에 발을 들였으니 그건 내가 열심히 일구면 빛을 보게 될 것이다. 


이정도면 이민하고 두달째에 그리 나쁘지 않은 진행상황인 듯 싶다. 집이 생기고 주소가 생기고 건강보험이 되고 은행을 열고 차근 차근 하는 것들이 쌓여서 현대사회 사람으로 다시 거듭나고 있다. 인터넷 쇼핑을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시간을 들여 준비해 먹거나 이런 것들. 아이는 유치원을 시작했고 우리는 정말 시도때도 없이 일을 해야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평화가 가장 소중한 것임을 나는 이제 안다. 평화로운 생활을 그리워했다. 나는 천천히 그 평화로운 삶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것 같다. 


이제는 정말로 베를린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조금 다독이고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하다보면 내 마음의 집이 여기에 다시 생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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