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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크 Oct 02. 2023

‘美味’ ch.1… 맛을 더한 '가치의 성장'

[걷다 보니 ‘발품 컨셉’-커피]#부산(9)

20세기 가장 위대한 프랑스 형이상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철학자 루이 라벨은 ‘가치론(Traité des valeurs)’에서 가치를 이렇게 정의한다. 


 “가치 있다는 건 ‘바랄 만한 것’이며, 그게 무엇이건 본질적인 것이 바랄만한 것이라는 사실.”


 이를 커피에 대입해 본다면, 커피의 가치는 그 본질인 맛에서 나오며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바랄 만한 게 됐다는 것. 부산에서도 커피의 본질인 맛을 통해 ‘바랄 만한' 가치를 구현하는 동시에 가치 확장에 나서고 있는 카페들을 만날 수 있었다.


“생명을 불어넣은 맛”


 “저널리즘의 세계에서 (기자는) 팀을 응원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기자석에는 환호가 없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준수하는 규칙이다… 하지만 규칙은 깨지도록 만들어졌다.”


 지난 2019년 세계적인 커피 저널인 스프럿지(Sprudge)의 편집자이자 작가인 잭 캐드월러더가 작성한 기사의 서두다. 참고로 스프럿지는 장시간 근무한 바리스타의 옷과 신발에 나타나는 커피 부스러기, 얼룩을 뜻하는 단어다.


 이 기사는  미국 스페셜티커피협회 (SCAA)와 유럽 스페셜티커피협회(SCAE)가 공동 주최하는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World Barista Championship)의 우승 소승을 전하고 있었다. 우승자는 모모스커피의 전주연 바리스타였다.

스프럿지(Sprudge)에 게재된 2019년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 우승자를 알리는 기사(왼쪽)와 2023년 1월 ‘올해의 로스터’ 선정 기사. 출처 : 스프럿지 홈페이지


 이어 기사는 기자로서의 규칙을 깨게 한 전주연 바리스타를 설명한다.  


 “전씨는 무대에 오르는 순간 언론(기자)을 비롯한 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테이블에 앉아 심사위원들에게 연설하는 이 경쟁자는 누구인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그녀가 전달하는 메시지엔 매력적인 게 있었다.”


  물론 전주연 바리스타가 테이블에 앉아 메시지를 전달하는 퍼포밍 때문만으로 챔피언이 된 건 아니었다. 

출처 : 스프럿지 홈페이지

 기사는 “대회 심사위원들이 보는 건 커피의 가공 등 기술적 측면과 그 반대편에 있는 감정적 루틴을 보는데, 전씨는 둘 다 갖고 있었다”면서 “전씨는 탄수화물, 특히 단당류와 다당류가 커피를 마실 때 맛의 균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이날 전주연 바리스타는 시드라 품종을 생산하는 콜롬비아 커피 농장인 ‘라 팔마 이 엘 투칸’의 원두를 사용했고, 심사위원들은 전주연 바리스타의 요청에 따라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기사는 “(전씨의 퍼포밍은) 무미건조한 주제에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도 덧붙였다.

 

 그리고 전주연 바리스타가 있는 모모스커피는 지난 1월 스프럿지가 주관하는 ‘올해의 로스터’에 선정되면서 2022년 전세계 최고의 로스터에 오르기도 했다. 이 상은 커피업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린다. 


부산의 지역 카페가 한국의 커피맛을 대표하게 된 셈이다. 그 맛의 시작을 경험하고 싶어 모모스커피 본점이 있는 온천장을 찾았다.


 겉모습은 -편견을 빼고 얘기하자면- 명성에 비해 다소 누추(?)했다. 도로를 마주한 카페 전면은 쨍한 고광택(high glossy) 플라스틱 소재를 사용한 덕에 한결 저렴해 보였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선 안 된다는 걸 알게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늘의 커피' 명판을 지나 묵직한 덩굴을 이고 세월을 안은 듯한 한옥식 나무문을 넘어가니 예상치 못한 풍경이 펼쳐졌다. 

 햇빛은 빽빽하게 서 있는 나무와 나뭇잎에 걸러지듯 들어와 한낮인데도 어둑했고 나무 사이 비좁은 길 양 옆엔 석상과 석탑이 덩굴과 이끼를 누른 채 서 있었다. 어디선가 물소리도 들렸다. 토끼굴로 들어간 앨리스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출처 : 부산관광공사 블로그

 기묘한 감정을 안고 비로소 도착한 카페 건물-본채-의 규모는 작았고, 사람들은 1층과 2층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별채 마냥 맞은편에 자리한 단층 작은 건물에도 빈 테이블은 없었다. 뒤편 마당에 놓인 야외 테이블에서도 앉을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눈치싸움 끝에 겨우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러 갔다.

 사람이 많아도 직원들은 커피를 고르는 손님의 질문에 성의를 다해 답해 줬다. 특별한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말에 직원은 파나마 엘리다 로마 센트로를 추천했다.


 주문을 마치니,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가 보였다. 브루잉바의 높이가 낮으니 누구나 자신의 커피가 어떻게 추출되는지 볼 수 있었다.


 티포트에 담겨 나온 커피는 차와 같았고 농도 역시 연했다. 

 아마도 직원은 ‘산도 있는 강한 맛’을 선호하는 손님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던 듯싶다. 


 그리고 새로운 경험인 게 맞았다. 매번 마실 때마다 독특한 풍미로 놀라움을 주던 ‘게이샤’에 대한 기억과 기대감을 사라지게 해서다. 엄격하게 얘기하자면, 예상과 기대를 뛰어넘다 보니 감동보다 당혹감을 준 게 맞는 듯했다. 당혹감 탓에 향이나 맛은 기억에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특징을 찾자면, 뒷끝없는 개운함.


 커피를 마시니 비로소 주변이 보였다. 정원의 의자들은 다소 불편해 보이는데도 사람들은 공간이 주는 힘에 만족감을 보였다. 실내에 있는 사람들도 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모모스커피만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바로 커피와 원두에 대한 자신감. 브루잉바 바로 옆 진열대에 올려진 종류별 원두와 진열대 앞 시향원두, 전주연 바리스타의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 수상 세리머니 사진과 기사가 보인다. 그리고 기사와 사진 사이 가격표와 이름이 적힌 배지가 눈길을 끈다. 


 '2019년 월드바리스타챔피언'과 '2021년 월드컵테이스터스챔피언' 배지다. 모모스커피에선 현재 전주연 바리스타와 함께 2021년 당시 호주대표로 월드컵테이스터스챔피언십에 출전해 우승한 추경하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리고 있다. 추경하 바리스타 역시 부산 출신이다. 

 커피의 맛으로 공간의 힘을 만드는 모모스커피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2016년 부산시보에 올라온 글을 기초로 모모스커피의 시작을 살펴봤다.


 그 시작은 미미미했다. 건설회사 엔지니어로 회사를 다니던 모모스커피 대표는 서른 살이 되던 2006년 그만뒀다. 그리고 부모님의 식당 한 귀퉁이에 13㎡(약 4평)짜리 공간을 월세 50만원에 임대해 테이크아웃 바를 창업했다. 모모스커피 본점이 있는 자리다. 


 사업이 잘 되면 프랜차이즈로까지 영역을 늘리겠다는 당찬 꿈도 꿨지만, 쉽지 않았다. 꿈을 키우기도 전에 난관에 직면했다. 하루 18시간씩 일해도 벌어들이는 돈은 일매출 10만원도 안 됐다. 외려 빚만 늘었다.


 이때부터 커피의 전문성을 키우기로 했다. 2009년 미국에서 커피의 신세계도 만났다. 그해 4월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스페셜티커피박람회에서 기존에 알고 있던 커피와는 전혀 다른 커피를 알게 됐다. 이후 LA 포틀랜드 시애틀 등 스페셜티커피전문점을 찾아다녔다. 여기서 스페셜티커피란 전문가들이 향미 맛 후미 바디 등 10가지 항목을 평가해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 받으면 붙여진다.


 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SCAA)가 아칸사스에서 열고 있는 커피감정사(cupping judge)와 큐-그레이더(Q-Grader·생두감별사) 교육과정까지 이수해 관련 자격증을 획득했다. 국내에서 커피감정사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던 시절이었다.


 부산으로 돌아와 자신이 경험한 커피의 새로운 맛을 고객에게 알려줬다. 커피에 과일 향도 있고 꽃향기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고객들을 통해 입소문이 났다. 찾는 사람이 몰려들었고 부모님이 경영하던 음식점을 인수해 1, 2층 공간 모두를 카페로 변신시켰다. 창업 2년 7개월 만이었다. 


모모스커피 생두창고. 출처 : 모모스커피 유튜브 채널

 이후 베이커리, 커피 아카데미로 영역을 확장하고 2012년부터는 더 좋은 재료를 찾아 커피산지와 직거래를 시작하면서 스페셜티커피 전문기업이 됐다. 


 첫해는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케냐 등 4개국에서 20t 정도의 원두를 수입했다.

 모모스커피를 시작한 사람, 이현기 대표다.


 지금도 이현기 대표는 공동대푤가 된 전주연 바리스타 등과 함께 산지에 직접 가서 직거래로 세계 유명 커피 원두를 구매하고 있다. 


  2~4월엔 파나마 등 중미, 7~9월엔 브라질 등 남미, 12월엔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를 다니며 원두를 확보하고 있다.


 부산시보를 통해 이현기 대표는 본점 정원에 대한 이야기도 해 줬다. 그는 “원래 정원이 없는 휑한 공간이었는데, 부모님이 가꾸기 시작했다”며 신비한 느낌의 정원을 갖게 된 이유를 알려줬다.



“저녁엔 오지 마세요”


‘17시 30분에 라스트오더.’

 포털에 모모스커피를 검색하니 나오는 이 짧은 안내 글엔 모모스커피가 커피의 맛이나 공간의 해석만으로 매력있는 카페가 아니라는 걸 간단하면서 명료하게 알려준다. 


 이현기 대표는 부산시보를 통해 '라스트오더 17시 30분'의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해 준다.

 “모모스커피를 더욱 특별하게 하는 것은 바로 사람, 직원"이라고.


 그러면서 “(카페 문을 열 때부터)카페 또는 식당을 운영하거나, 그곳에서 일하는 많은 분들이 '자녀를 키우기'에 충분한 처우를 받기 어려운 구조적 원인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있었다”고 했다. 

 구조적 원인을 들여다보는데 그치지 않고 원인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도 적극적으로 실천했다. 


출처 : 네이버

 카페 영업을 오후 6시에 마감하는 것도 실천의 방법 중 하나다. 직원들에게도 저녁이 있는 삶, ‘워라밸’을 부여한다는 점.


 근무 시간뿐만이 아니다. 

 직원 모두 정규직인데다 복지혜택 역시 대기업이 부럽지 않다. 3년 이상 근무하면 한 달간 유급휴가도 눈치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 

 

 

 “저는 사장이 아니에요."

 2019년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 우승자가 된 뒤 전주연 바리스타가 가장 많이 한 이 말에도 모모스커피가 직원을 위해 실천하는 방법이 숨어 있다. 당시 언론 등에선 당연히 카페 대표가 챔피언이 됐을 거라는 편견을 섞어 질문을 던졌다.

 

 전주연 바리스타를 사장이라 오해한 데는 한국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한 조직 문화 덕이다. 대한민국은 직원이 조직 안에서 자기계발에 나서는 걸 곱지 않게 본다. 개인의 영달을 위한 거라는 편견 덕에 교육 지원은 인색하고 시선은 불편하다. 그러니 2009년부터 10여년간 커피를 연구하고 공부해 우승자가 된 전주연 바리스타를 사장으로 본 게 어쩌면 당연한 오해였다. 


 이현기 대표가 직원에게 교육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자신이 해외에서 경험한 커피의 신세계를 직원들도 보고 느끼기를 바라서다. 그 사례가 바로 전주연 바리스타였다.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주연 바리스타가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 우승자가 됐는지 들여다봐도 알 수 있다.

 2007년 임상심리를 전공하던 대학생 전주연씨는 아르바이트생으로 모모스커피에 들어왔다. 대학 졸업 후 진로를 정하지 못하던 그에게 이현기 대표가 입사를 제안했다. 


 온라인팀과 바를 오가며 일하던 전주연 바리스타는 2009년 미국에서 돌아온 이현기 대표를 통해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이현기 대표, 다른 직원들과 함께 공부하기 시작했다. 

 전주연 바리스타는 배움을 위해 2009년 챔피언 국가대표로 참여한 이종훈 바리스타를 만나러 서울까지 가기도 했다. 이현기 대표는 교육에 필요한 모든 걸 지원하고, 직원들도 그의 빈자리를 대신 메웠다.


 전주연 바리스타에게 통과해야 할 첫 관문은 국가대표였다. 단 한 명의 국가대표를 뽑는 도전은 번번이 좌절됐다. 부침을 거듭하고 실력을 다듬으며 2018년 국가대표가 됐고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에 출전했지만 그해 받아든 성적표는 14등이었다.


출처 : 모모스커피 인스타그램


 절치부심한 그는 이듬해 챔피언 트로피를 들었다.


 교육의 혜택을 받은 건 전주연 바리스타뿐만 아니다. 모든 직원이 교육의 기회를 무한 제공받고 있다. 

 ‘직원이 오너와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게 축복이라 생각했기에 가능했다.


 ‘함께 성장’이라는 말처럼 직원의 성장은 모모스커피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 

 모모스커피가 시선을 둔 성장이란 규모가 아닌 가치다. '가치의 성장'


 직원들은 모모스커피의 가치를 키워가는 데서 나아가 지역 예술가들과 협업해 로컬 문화를 알리는데 앞장선다. 부산의 유명인사가 된 전주연 바리스타는 부산의 커피를 소개할 기회가 생길 때면 골목 안 지역카페를 홍보하는 데 공을 들인다. 


 생두 생산 농장을 직접 찾아가는 데도 이유가 있다. 단순히 질 좋은 원두를 저렴하게 구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생산 농장의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삶을 같이 고민한다.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은 주요 커피 생산국의 농장에 갈 때면 가격을 더 주고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글의 마무리를 이현기 대표가 쓴 글로 대신해 보려고 한다. 


 이현기 대표는 지난 2월 원두 산지에서 모모스커피 계정의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올렸다. 그 글은 모모스커피의 경영 철학이 어디에 방점을 두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출처 : 모모스커피 인스타그램

 “지난 16년간 하루 평균 18시간을 커피와 관련된 시간을 보내며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록지 않은 일들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디자인과 건축 관련해서는 재주가 없음에도 지난 2년간 영도공사에 매진하느라 마음 편히 지내지 못했습니다.


  이후 부족한 디자인과 공간에 대한 고민과 채움에 시간을 더 보내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이 많았는데 이렇게 산지에 오고 나니 모든 게 명확해졌습니다. 더 만들기보다, 지금까지 우리가 만들어온 두 곳을 더 멋지고 특별하게!


 박정수 대표는 교육의 시간을 줄이고, 추경하 바리스타는 로스팅팀과 같이 더 나은 로스팅 결과물을 끌어내는데 집중하기로. 전주연 대표는 저와 함께 산지에서 더 좋은 재료를 찾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하기로.


 애초 7주 계획으로 출발했던 이번 산지 일정은 아마 12월까지 이어질 예정이며 이어서 에티오피아 그리고 중미까지 하면 아마 내년 3월까지는 정처없이 떠돌아 다녀야... 저희는 앞으로도 더 많은 공간 보다는 더 특별한 커피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유행어인 듯한데, 많관부입니다."



*메인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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