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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크 Oct 11. 2023

마당은 응접실이 되고 카페가 됐다

[걷다 보니 ‘발품 컨셉’-커피] #부산(11)


“사람을 만나는 공간은 집이 아닌 카페가 됐다.”


 스타건축가인 홍익대 건축학과 유현준 교수는 자신의 책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한국 사회에 유달리 카페와 호텔이 많은 이유를 이렇게 봤다. 그리고 그 원인을 가구 수의 구조적 변화에서 찾았다. 


 누군가를 만나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찾았던 카페가 달라진 시대에 사회적 기능까지 감당하고 있음을 보여준 건 부산이다. 응접실 같은 카페, 거실 같은 카페 말이다.



“카페가 된 마당


 한옥건축역사학회가 정의한 한옥은 다음과 같다.


한옥이란 온돌과 마루와 부엌과 마당 등으로 구성된 공간 조직을 바탕으로 하며, 한국의 전통적인 목구조 방식을 기본으로 구축된 건축물.”


 구조적인 부분에 집중한 학회는 야외 공간일 수도 있는 마당을 한옥의 건축 구조 안에 넣었다. 이는 한옥에서 마당의 기능과 역할이 작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출처 : 이상현 한옥연구가 유튜브 채널

 ‘한옥과 함께하는 세상여행’을 출간한 이상현 한옥연구가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난방을 이야기하며 마당을 건축 공간의 일부로 설명했다. 


 구들이라는 전통 난방 구조를 도입한 한옥은 냉기를 차단하기 위해 공간을 작게 만들었다. 대신 건축물 외부에 마당이라는 공간을 크게 했다.


 반대로 난방시설이 없는 유럽은 생활공간을 집 안으로 끌어들였다. 중정이 생겨났고 건축물은 커졌다. 난방의 차이가 건축물의 크기와 구조로 연결된 셈이다.


 이 연구가가 눈여겨본 건 마당의 기능이다. 집이 작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부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마당에서 잔치를 하고 수확한 농산물을 타작하는 등 기능적 역할과 함께 친인척은 물론 마을사람과 소통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런 마당의 공간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주거 공간인 아파트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2022년 인구주택총조사 집계결과를 보면 일반가구의 거처종류 중 압도적 1위가 아파트다. 절반이 넘는 52.4%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출처 : 통계청

 유 교수가 2018년부터 홍대신문에 세 차례에 걸쳐 기고한 ‘아파트의 재구성’이란 글에서 아파트 안 마당의 힌트를 찾을 수 있다.


  "거실이라는 용어가 우리 건축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해방 이후이다. 그 이전 한옥에 살 때에는 우리나라에 거실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한옥은 중정 형식의 마당을 중심으로 하여 사랑채와 안채가 있고, 안채를 구성하는 안방과 건넌방 사이에 대청마루가 있는 것이 보편적인 형태다… 이렇게 수백 년을 살던 한국인들이 아파트를 지었을 때에도 전체적인 틀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전형적 쓰리베이(3-bay) 아파트의 구성은 한옥 마당이 거실이 되고, 대청마루 부분이 식탁을 놓는 자리가 된 것과 비슷하다.”


조선시대 때 각종 농사일의 작업장이었던 마당에 지붕을 씌운 것이 거실이 됐다는 게 유 교수의 얘기다.

 그런데 유 교수는 아파트 안 마당이었던 거실의 공간이 인구 구조의 변화로 인해 카페로 옮겨가게 됐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의 책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사진)에선 과거 3대가 모여 살던 대가족 형태가 핵가족으로 바뀌더니 어느새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시대가 됐다고 전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1인 가구수는 750만2350가구로 전체 가구의 34.5%였다.


 자연스럽게 큰 평수의 주거 공간은 필요치 않게 됐다. 오피스텔이나 원룸 형태의 공간엔 가족이 모이는 거실의 공간이 사라졌다. 대신 지인이 찾아오면 거실이 아닌 집 근처 카페에서 가격을 지불하고 차를 마시고 디저트를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됐다.



“사람을 만나는 공간이 되다"


 2019년 부산시는‘낭만카페 35선’을 선정, 발표했다. 부산 전역을 현장 조사해 카페와 레스토랑 134곳을 정한 뒤 시민 설문조사와 음식평론가 건축문화 기획자 카페여행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특별팀의 조사와 전문가 심의 등의 절차를 거쳐 최종 선정했다.


출처 : 부산시 홈페이지(왼쪽), 오후의홍차


 선정된 곳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카페의 메인은 커피였다. 그러다 보니 대놓고 ‘차’ 파는 곳이라며 이름을 내건 카페에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민락수변로에 있는 ‘오후의홍차' 얘기다.

 차가 메인이라는 점도 일반적이지 않은데 위치 선정도 예사롭지 않다. 


 사람들의 접근성을 생각해 대부분 1층에 자리하는 카페와 달리 오후의홍차는 건물 4층에 있었다. ‘타워프레임(Tower FRAME)’이란 이름의 이 건물은 2018년 부산다운건축상 금상을 받았다.


 4층으로 올라가니 예상한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광경이 나온다. 카페보다 살롱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정도로 고전미가 가득하다. 


 묵직해 보이는 사각의 나무 테이블과 무게가 나가는 목재 의자, 목재 진열장이 보인다. 소파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목재 테이블로 향하게 된다. 


 주문한 차도 예사롭지 않은 형태로 나왔다. 은색 철제 쟁반엔 티팟과 에스닉한 찻잔이 올려져 있었다. 찻잔을 보니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5층 루프탑은 테이크아웃 잔으로 주문할 때만 이용할 수 있다는 안내의 이유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선택한 차는 가장 대중적인 ‘다즐링’. 커피와 달리 차에 대해선 아는 게 별로 없었던 터라 위험 부담이 적은 걸로 택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오후의홍차의 시그니처는 밀크티라고 한다. SNS를 통해 따뜻하게 마시는 걸로만 알고 있는 차를 아이스로 즐길 수 있다는 정보도 알려준다. 즉석 냉침하면 차 향이 잘 살아나기 때문에 아이스로도 맛있다는 얘기다. 프랑스식 구움 과자인 티그레 등 디저트도 만나볼 수 있다.


출처 : 오후의홍차 인스타그램

 차를 받아 자리에 앉으니 비로소 쏟아지는 비에 가려졌던 풍광이 보인다. 


 수영강이 수영만이 되는 곳, 고층 건물이 자리한 센텀시티가 보이는 곳에 위치한 덕에 맑은 날 야경도 좋을 듯 하지만, 나름 밝은 대낮의 비 오는 날 풍광도 나쁘지 않았다. 


티팟에서 우러난 차를 찻잔에 옮겨 담는 소리, 창 밖의 빗소리, 사람들이 소곤대는 소리가 편안함을 준다. 자연스럽게 책을 꺼내게 된다.


 문득 루프탑이 궁금해진다. 계단 끝에 다다르니 수영강 전경이 펼쳐지듯 보인다. 

 3열의 계단식 의자들은 모두 한 방향을 보도록 배치돼 있다.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 때문이다.


 

 부산에 또다시 가게 된다면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응접실도 있다. 바로 기장군의 로와맨션이다. 가구 수 변화에 따른 카페의 역할을 설명한 유 교수가 직접 설계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독 로와맨션의 후기엔 '외국집 응접실 같다'는 표현이 많다.

출처 : 유현준건축사사무실 홈페이지

 로와맨션은 세 동으로 나뉜 건물이 하나로 연결돼 있다. 건물 사이로 일광의 바다가 보인다. 내부는 공간에 따라 라탄과 우드 소재를 사용해 편안하면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군데군데 조개와 종이배를 모티브로 한 조형물도 자리했다.



*메인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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