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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야

by 디엔드


단단하지만 따스한 사람이 되기를, 화려하진 않지만 진실된 마음을 품고, 느리지만 치열한 하루를 살아내며 혼자이지만 혼자이지 않은 삶을 살아가기를.




https://brunch.co.kr/@time-limit/106


덤덤하게 글을 쓰긴 했지만, 어제의 여파가 꽤나 컸던 탓일까. 눈을 뜨니까 오전 11시였다. 12시간을 넘게 잤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은 어제 평소보다 수면제를 많이 삼키긴 했다. 알람도 모두 끄고 잠이라도 푹 자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너무 많이 잔 걸까. 두통 때문에 아침부터 타이레놀을 삼켜야 했다는 사실이 나를 좀 초라하게 만들었다.



폰을 켰더니 연락이 와있다.

구독해 놓은 모닝 메시지다.



생각해 보니, 요즘 밥을 안 먹은 지 꽤 됐다. 따뜻한 한 끼가 있어도 돌 씹는 기분으로 살고 있어서, 매번 군것질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맛있는 걸로 기분 좋은 하루를 만들어보자고? 하나의 숙제가 생긴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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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베프에게도 카톡이 와있다.



대한민국 고삼으로 지낸다는 것 자체가 참 벅찬 일일 텐데, 이렇게나 다정한 사람이 내 친구라니. 매번 브런치를 읽고 연락을 해주는 마음에 참 고맙기도 하고, 미안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칙칙한 내 세상에 색채를 더해주는 친구이기에, 나는 늘 고마워하며 살아야겠다.




봄이 되면, 한로로의 “입춘”이라는 곡을 듣는다.


푸른 낭만을 선물할게
초라한 나를 꺾어가요


오늘도 입춘을 들으며 집을 나섰다. 이런 기분엔 노이즈 캔슬링이 필수다. 세상의 잡음을 감당할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내 귀엔 입춘이 들리고 있는데, 나와보니 밖엔 눈이 내리고 있었다. 3월 중순에 눈이라니. 내 컨디션도 이상한데, 날씨가 더 이상해서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목적지는 은행이다. 퇴원 이후에 학교 밖 청소년 활동을 열심히 했더니 장학금을 주겠단다. 통장 사본이 필요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통장이 안 보인다. 대기표 81번.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통장 재발급 받으러 왔어요.”

“네, 계좌번호랑 신분증 주세요.”

“여기요.”

“나이가 07년생? 8월? 만으로 17세네요?”

“네.. 연나이 18세..”

“부모님이랑 같이 오거나, 서류 챙겨 오셔야 해요.”

“그럼 통장 사본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요?”

“네 그건 가능해요. 어떤 이유로 필요하세요?”

“장학금을 받는데, 필요하다고 해서요.”


“?! 디엔드님, 축하드려요! 멋지고 장하네요!!”


“아고.. 감사합니다.. 네….”


그렇게 통장 사본을 들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낯선 감정을 느꼈다. 축하드려요? 멋지네요? 장하네요? 이런 말을 너무 오랜만에 들어봐서 기분이 이상했다. 나보다 더 기뻐하는 은행원님 덕에 힘이 났다.


그녀의 따뜻한 마음이 지친 나를 달래주는 것 같았다.




이후에 독서실을 갔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이 소란스럽다.

방법을 찾다가 마음을 달래고자 책을 들었다.



내과의사 쓴 책이다. 두개골 박살, 간질성 폐질환, 알코올 중독, 심정지. 지옥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남의 불행을 보며 위안을 얻는 내가 무척이나 싫었지만, 하루가 만만치 않게 괴로웠기에 책을 넘기는 행위를 멈출 수 없었다. 불행만이 불행을 이해할 수 있고 다독여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자꾸만 몸이 불편하고 통증이 느껴졌다. 사실은 마음이 아픈 건지, 몸이 아픈 건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몸살 난 기분을 느끼다가 계획이 망했다는 생각 때문에 자책을 했다. 위대한 12주를 시작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꽤나 괴로웠다.


무기력하게 있다가, 상담 선생님의 부재중을 봤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상황을 설명했다. 결론은 “어젠 힘들었지만, 이제 괜찮아졌어요.“ 습관성 괜찮음은 나를 피곤하게 한다. 스스로를 속이는 말이기도 하고. 하지만, 상담 선생님에게는 습관성 괜찮음이 오래 유지되진 않는다. 벼랑 끝에 서있던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고, 이미 상황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숨길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도움을 받고자 현재의 내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얘기했다.


“어제의 일에 아직까지 영향을 받아서 공부에 집중을 못하는 제가 너무 싫어요.”


현재의 내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라고 해주셨다. 오히려 그 사람을 보고 오랜만이라며 기쁜 마음이 든다면, 그게 더 문제인 거라고.. 하지만, 자기혐오의 감정을 느끼는 건 잘못됐다고 단호하게 얘기하셨다. 자책을 할 필요가 있을지 생각을 해보라고 하셔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았다.


“어제는 대처를 잘했어요. 쉽지 않았을 텐데 카페에서 마음을 추스른 것도 잘했고요. 이번에 해봤으니까 다음번에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도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감각에 집중하는 연습을 꾸준히 했으면 좋겠어요. 방법은 많으니까 하나씩 해보면 돼요.”




통화를 종료한 뒤에,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그리고 이번에 한 번 더 느낀 게 있다. 부정적인 감정과 상황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은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 흘려보낼 수 있다면, 흘려보내는 게 가장 좋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다면 해소를 의식적으로라도 해줘야 한다. 이 부분에서 가장 도움이 많이 되는 건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감정이 해소가 되고, 자신에게 너무 크게 다가왔던 일이 돌이켜보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스스로 대처하기가 어렵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는 글쓰기를 했음에도 감정을 해소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져서 상담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 오늘 내가 가족도, 친구도 아닌 상담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던 이유는 “객관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위로는 자기가 자신에게 할 때 가장 힘이 세다. 가족과 친구에게 받는 위로도 도움이 되고 좋다. 그러나, 그건 가벼운 일일 때만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트라우마 수준의 무게감이 있는 일이 일어났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얘기하는 건 큰 부담을 주는 일인 거 같았다. 혼자서 나름의 방법을 해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얘기를 하는 편이다. 오히려 가깝고 친한 사이일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내린 결론이다.




상담 선생님은 현재의 나에겐 정서적 지지보단, 일상생활을 할 때 덜 힘들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해 주신다. 제시한 방법을 해보고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관찰을 해보고 스스로 알아차리길 원하신다. 선생님이 과거와 현재의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걸 느낀 뒤에 비교를 하며 생각해 봤다.


작년의 나는 이성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이었기에, 방법을 제시해 줘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결론은 죽음으로 이미 정해뒀기 때문이다. 너무 부정적인 감정에 깊게 빠진 사람은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다.


그땐 정서적 지지가 필요한 게 맞다.


난 너를 언제든지 도울 수 있고, 네 편이라는 걸 잊지 마.


라는 말을 꾸준히 해줘야 한다. 우울에 빠진 사람은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에 그 상황 속에서 “넌 혼자가 아니야.”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된다. 상대방이 어느 정도 우울의 터널에서 벗어났다면, 그때부터 더 나은 삶을 보낼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해 주면 된다. (이건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위로를 건네는 법”이라는 주제로 다음에 자세히 써볼 예정이다.)




결론적으로 어제와 같이 힘든 상황이 생겼을 때,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계속 생각했고, 도움을 받았고, 스스로 일어나고자 한 의지가 있었기에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


곁에 좋은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자신이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나는 여러 번의 실수를 통해서 삶에 책임을 져야겠다는 마음을 강하게 가졌다.


내가 내 삶을 책임진다는 건, 스스로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연락을 준 친구에게, 축하해 준 은행원에게, 병원 이야기를 집필한 작가에게,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주신 상담 선생님께, 그리고 꾸준히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며 글을 마친다.



p.s.

모닝메시지가 맛있는 걸 먹으라는 말을 해줘서 불닭발을 시키고 글을 쓰고 있네요. (첫끼니까 누룽지탕도 시켜줬고요..ㅋㅋ) 쉽지 않은 하루였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은 모두 해서 참 다행인 거 같아요. 학원도 일찍 다녀왔고, 위대한 12주 계획 수정도 했거든요.


내일부턴 의무를 다하면서 지내볼게요. 회복했으니까 다시 꿈을 향해 나아가야죠! 주저리주저리 쓰다 보니 글이 길었는데,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이 있다면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늘 응원할게요 :)



세 얼간이


AII is well

모두 잘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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