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 둘째 딸이 이번 시험에서 모든 과목 1등급을 목표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평소와 다르게 시험 중간 채점을 하지 않고, 멘탈을 끝까지 유지하도록 했다. 시험을 볼 때는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끝까지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험이 끝나고 채점을 해보니 실수도 많았고, 자신 있는 과목은 문제 난도가 낮아 모두가 잘 봤고, 자신 없는 과목은 어렵게 나와 점수가 떨어졌다.
아이의 표정은 금방 어두워졌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다시 공부할 마음을 만드는 것이다. 인간은 희망이 있어야 움직이고, 움직여야 희망이 현실이 된다.
재수생들을 가르쳐보면 멘탈이 약한 아이들은 쉽게 흔들리고, 그 흔들림이 누적되면 수능 성적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큰딸은 멘탈이 강한 편이라 묵묵하게 공부하면 성적이 올라가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둘째 딸은 인정 욕구도 크고 자존감이 약하다. 스스로 회복하기 전까지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영화감독처럼 여배우 옆에서 자존감을 채워줄 사람이 필요하다.
노력을 많이 한 아이가 가장 무서워하는 생각은 이것이다.
“나는 해도 안 되는 사람인가?”
이 문장이 아이의 행동을 멈추고, 결국 희망도 사라지게 만든다.
나는 예전에 동화책을 내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공모전도 내고 출판사에도 투고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어느 날 한 출판사 편집장이 말했다.
“작가 꿈꾸는 사람은 많은데 대부분 포기합니다. 여기 있는 직원들도 그렇고요.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그나마 글 잘 쓰는 사람이 유명인들 그림자 작가해주는 거고요.”
그 말을 듣고 거의 1년을 절필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시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출판 여부와 상관없이 글을 쓰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브런치에 올리고, 한 명이라도 읽어주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리고 계속 쓰다 보니 예전보다 글이 깊어지고 안정됐다는 것을 느꼈다. 김영하 작가의 작품을 연대별로 읽으며 알게 된 것도 있다. 초기작은 거칠고 자기 이야기 중심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야기 구조가 탄탄해지고 문장이 깊어졌다. 계속 쓰면 성장한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었다.
이 이야기를 왜 꺼내냐면, 희망은 그냥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희망은 ‘현재 상황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현실적인 전략’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전략을 보며 “이렇게 하면 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아이에게 생기는 순간 행동이 다시 시작된다.
그래서 수학 시험 오답 정리를 마무리하고 치킨집에 데려갔다. 그리고 아이에게 희망을 만들어줬다.
내신을 못 봐도 정시나 논술로 충분히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 너는 문과·이과 모두 강하니 인문 논술 + 수리 논술 모두 쓸 수 있다. 인문계 논술에 수학까지 잘하면 한양대, 중앙대, 건국대같이 인문+수리 논술 전형을 대학들은 무조건 합격한다. 연고대는 인문으로 쓸지 수리로 쓸지 고3 때 결정하면 된다. 문과로 가도 적성이 안 맞으면 이과로 이중전공 하는 것도 요즘은 흔하다. 외고·국제고 아이들도 이 방식으로 많이 간다.
모의고사가 잘 나오는 건 엄청난 강점이다. 지금 모의고사 성적처럼 수능만 잘 보면 SKY 최상위 과도 가능하다. 특히 서울대 정시는 지금 내신만 유지해도 충분하다. 서울대 수시는 올 1등급을 받아야 가능할 수 있어도 정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수능을 잘 보는 재수생이나 특목/자사고 아이들이 내신이 나빠 서울대를 못 쓰고 연고대로 집중할 것 같으니 너 같은 일반고 학생들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겨울방학 계획도 다시 정리해 줬다.
수학은 12월 미적1, 1월 대수·확통으로 이미 공부했던 것을 복습 위주로 하고, 그 시간에 국어·영어·과학 2과목을 더 신경 쓰라고. 가급적이면 국어와 영어는 특강까지 다 들으라고. 수학은 네가 원래 잘하니 지금 페이스만 유지하면 된다고.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영화를 한 편 보고 쉬라고 했다.
새벽까지 신나게 보더라.
오늘 아침에는 다시 문자를 보냈다.
OO아, 시험이 어떻든 너는 충분히 잘해 나가고 있어.
내가 볼 때 내년부터는 분명히 성적이 오를 거야.
실력은 충분히 있는데 시험으로 나오지 않은 것이니.
모의고사 성적이 지금처럼 나오면 스카이 최상위권 과도 수능으로 갈 실력이 있는 거야.
어제 계획한 대로 하면 충분하니까 걱정하지 마.
방학 때 수학은 그렇게 하고, 과학 2과목, 국어와 영어도 꾸준히 하면 돼.
그리고 정시로 서울대도 갈 수 있어. 수능을 잘 보면 지금 내신으로도 충분해.
내신이 아예 자사고나 특목고같이 3~4등급대 애들이 힘든 거야.
달려야 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