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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 Sep 11. 2024

내가 부모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제는 나도 부모라서 어쩌면_

 아빠가 다리를 다쳤는데 혹시 엄마에게 들었냐며 걱정하지 말라는 문자를 받았다. 다리를 다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나 이 문자를 보낸 의도는 알 수 없어 순간 멍해졌다. 나는 아빠가 다리를 다친 줄도 몰랐는데 본인이 알려주고는 걱정하지 말라니 이 이중메시지에 순간 어이가 없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엄마는 본인 아픈 얘기만 하기 바쁘셨다. 아빠가 다리를 다쳤다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유튜브에서 보고 서울에 있는 병원에 상담 예약을 해놓았다고 했다. 엄마에게 파킨슨 증상보다 더 힘든 것은 다리 통증이었다. 무릎 연골 수술 이후 통증이 계속되어 수술받은 병원에 가서 검사도 다시 받아보고 처방받은 약을 먹어 봐도 차도가 없다고 했다. 줄기세포 어쩌고 하시면서 서울에 있는 다른 병원에 가보려고 한다고. 요즘 엄마는 줄기세포에 꽂히셨다. 파킨슨 역시 줄기세포로 치료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대화상대를 막론하고 시종일관 엄마의 대화 주제는 자신의 병이고 증상이다. 엄마는 엄마의 주치의를 믿지 못한다. 매번 약이 듣지 않아서 너무 아프고 힘들다고 불평한다. 의사는 환자가 원하는 대로 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약을 더 높이면 안 된다고 거듭 말해도 환자는 계속해서 불평을 늘어놓기 때문이다. 직접 겪어보라고 하는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을 것이다.

 약의 강도가 세어지니 몸에 이상증상이 따라왔다. 팔다리가 저절로 움직이고 혀에 백태가 끼더니 급기야 혀가 붓고 갈라지기 시작했다. 밤만 되면 온몸에 열이 오르고 몸에 힘이 하나도 없으며 숨이 가빠졌다. 숨이 넘어가니 아빠는 놀라서 구급차를 불렀다. 온몸에 열이 나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체온은 정상이었다. 응급실에 가도 병원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다음에도 증상에 놀라 또 구급차를 불렀다. 그리고 응급실에서 진정제를 맞고 별수 없이 되돌아오는 일을 서너 번 반복하셨다. 병원에 간다 해도 내보내기 일쑤이니 밤마다 엄마의 숨이 넘어갈 때마다 아빠가 감당해야 했다. 약물 부작용과 공황장애 증상 같다고 했더니, 엄마의 주치의도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약을 좀 줄여보도록 권유했고 노력해 보겠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어느 날은 혀가 너무 아파서 구강외과에 갔고 거기서 또 검사를 받고 약을 받아왔다는 말을 했다. 약물 부작용으로 생긴 병에 다시 약을 쓴다고 하니 신물이 났다. 

 엄마 본인이 아닌 이상 곁에 있는 가족들도 모를 것이다.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울지, 얼마나 암담하고 절망스럽고 두려울지. 그럴 때 약은 병을 낫게도 해주며 때론 손쉽게 고통을 줄여준다. 엄마에겐 약 밖에 의지할 곳이 없는 것 같다. 지금 엄마의 몸은 멀쩡한 곳이 없다. 파킨슨병 말고도 그로 인해 파생되는 여러 병들로 인해 날마다 고통스럽다고 한다. 엄마의 관심은 오직 아프지 않은 생활이다. 

 병원 쇼핑을 다니면서 건강에 그토록 집착하는 엄마에게 물었다. 아프지 않았다면 엄마는 제일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돈을 벌러 가고 싶다고 했다. 돈을 벌어서 하고 싶은 것이 뭐냐고 했더니, 노후 대책을 해야 한단다. 앞으로 먹고살아야 하니까. 50대 후반에 파킨슨 병을 진단받은 엄마의 시간은 어쩌면 그때부터 멈추었을지도 모른다. 아프지 않았다면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이 그저 돈을 버는 일이라니. 놀 줄 모르고 즐길 줄 몰랐던 엄마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대답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엄마는 평생을 돈 걱정에 본인한테는 제대로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살다가 슬프게도 몸에 병이 들어서야 병원비로 실컷 쓸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돈 모으는 재미로 사셨다. 우리가 어릴 적엔 밤 까는 부업부터 요구르트 배달에 식당일도 하고 청소일도 하며 그렇게 알뜰살뜰 모으고 보태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자식들 공부도 결혼도 시켰다. 엄마는 자신이 아플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미처 몰랐다고 하시며 너무 억울하다고 하셨다. 그렇게 바쁘고 정신없이 사는 동안 엄마는 자신의 몸이 병들어 가고 있음을 몰랐다. 

 어쩌면 엄마는 지금 엄마만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족들이 보기에 그 방식이 설사 좋은 선택은 아닌 것처럼 보이고 주변 사람까지 괴롭게 만들기도 해서 뜯어말리고 싶더라도 말이다. 요즘의 나는 그런 엄마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한다. 사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순간이 더 많다. 

 본인의 고통에만 몰두해서 곁에서 간병하다 다친 아빠의 부상은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엄마에 대한 원망이 먼저 앞섰다. 그런 마음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으나 지금 드는 생각은 '이제는 엄마도 엄마 본인만 생각해도 되지 않나' 하는 것이다. 가엾고 불쌍한 마음이 든다. 안타깝지만 내가 쉽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엄마의 삶이다. 내 삶이 내 것인 것처럼. 고통을 대신해 줄 수 없는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은 묵묵히 지지해 주는 것뿐이라는 것을 아빠도 알고 있는 듯하다.    

 부모라고 자기가 원하는 자식을 고를 수 없듯이 자식들 역시 자신이 원하는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다. 어릴 때 부모는 자식에게 세상의 전부이고 절대적인 존재이지만, 커가면서 내 부모가 불완전한 한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간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바라는 모습의 부모는 아니었다. 그리고 나 역시 우리 부모님이 기대하는 그런 자식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들도 나도 나름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는 것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상처를 주고 싶어서 준 것이 아니라 우리는 모두 사람이라 그런 거라고. 

 이제는 그만 탓하고 싶고 그만 원망하고 싶다. 내 부모님은 여전히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이 아니며 언제나 나를 걱정시키고 때때로 성가시게 한다. 그렇지만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스스로를 괴롭히는 대신 연민의 마음을 가질 것이다. 나이가 마흔 줄에 들어섰는데, 이제는 부모 탓 그만할 때도 되었다. 이제는 다 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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