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재료로 나 챙기기
일이 밀려 점심시간을 놓칠 때가 있다. 이번에도 하는 김에 끝까지 마무리하고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했는데 당장 확인할 일이 생겨 밥때를 놓쳤다. 그냥 먹지 말까 싶었지만 배가 고팠다. 대충이라도 먹을 것이 있나 싶어 냉장고를 열어 기웃거렸다.
점심을 못 먹은 날에 누군가가 점심을 먹었냐고 물어보면 먹었다고 말한다. 밥을 안 먹었다고 하면 다음 이야기하기가 불편해지고 왠지 프로페셔널하지 않은 것 같아서 안 먹어도 먹었다고 할 때가 많다. 그리고는 과일로 때우거나 빵이 있으면 빵으로 대신한다. 이번에도 그러려고 하는데 며칠 전 만들어둔 두부패티가 보였다. 햄버거를 만들면서 고기패티 대신 만든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남아있던 것이다. 거기다 햄버거에 넣는다고 양상추도 샀는데 할인하는 시든 양상추를 샀더니 색이 변하기 시작해서 얼른 먹어치워야 했다.
다시 햄버거를 만들자니 빵도 없고 번거롭다. 그래서 그냥 접시에 다 펼쳐놓았다. 접시의 반을 나눠 한쪽에는 양상추와 양파를, 한쪽에는 두부패티를 놓았다. 그리고 채소를 샐러드처럼 먹으려고 소스만 후다닥 만들었다. 소스는 귤드레싱소스다. 자주 해 먹는 소스에 레몬즙이 들어가는데 귤로도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만들었더니 꽤 맛이 괜찮았다. 귤껍질을 까서 끝을 약간 잘라 손으로 눌러 즙을 짰다. 레몬에 비해 물렁해서 즙이 잘 나왔다. 여기에 올리브오일, 소금, 후추, 꿀을 넣으면 상큼한 귤소스가 만들어진다. 귤이 없다면 레몬, 레몬도 없다면 식초라도 넣어서 만들면 된다. 마지막으로 귤 하나 더 껍질을 까서 듬성듬성 올리고 만들어둔 소스를 전체적으로 뿌렸다.
두부스테이크에 귤소스가 어울릴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순한 두부패티에 새콤한 맛이 포인트가 되어주었다. 책상에 가지고 가 두부스테이크 한 입, 샐러드 한 입 먹으면서 배를 채웠다. 재료가 없는 데다가 급하게 만들어서 예쁘진 않지만 그냥 과일을 먹는 것보다 포만감이 들어 좋았다. 자주 이렇게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밀프랩이 유행이던데 두부패티를 얼려 밀프랩 해둬야겠다. 근사한 브런치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정성이 담긴 한 끼는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누가 집에 왔다면 귀찮아도 뭐라도 만들어서 대접했을텐데 내가 먹는 거니까, 집이니까 대충 먹지 않냐고 말이다. 나도 나에겐 참 소중한 사람인데 나한테는 왜 못할까. 또 반성을 하게 된다. 저질체력이라 조금만 움직여도 힘들고 쉬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그럴 테지만 가끔은 이렇게, 손님에게 하듯이 작은 거라도 신경 써서 나를 챙겨 먹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