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친한 동료의 집들이
어제는 회사 사람 집들이에 다녀왔다. 최근에 이직한 동료가 먼저 와 있었는데 자기 회사로 이직하라고 사람들을 부추겼다.
- 야 경수님 우리 회사로 와요
- 누구는 오기로 했어 우리 회사에
- 너는 우리 회사 오면 뭘 해야 하지?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에 어색한 분위기를 채우려 했던 것일까. 반응이 신통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직을 부추기는 말들을 계속했다. 사람들은 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 그다지 매력적인 제안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나게 된 자리라는 긍정적인 면과 악의 없어 보이는 명랑한 태도 때문에 그다지 불쾌한 기색 없이 받아들였다.
- 그래 프로젝트는 어떤데?
- 다닐 만은 해?
궁금하지 않은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이야기는 각자 회사에 다니는 푸념과 상위 직책자에 대한 뒷담화로 이어졌다. 빠짐없이 화를 한 번씩 냈다. 그리고는 회사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라면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털어놓는, 이직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다는 이야기로 마무리 됐다. 회사에 대한 결론을 짓고난 뒤. 여자 이야기로 소재를 바꿨지만 길게 가지 않았다. 다들 자리를 떠날 준비들을 했다. 그리고 나가서는 절차를 진행하듯 조용한 담배를 한 대씩 피고는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는 이직을 권유하던 동료를 서울역까지 태워주게 됐다. 만나는 사람 없냐는 질문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최근의 가벼웠지만 인상적이었던 이성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로 열을 올렸다. 시간이 흘러 중년이 되며 변곡점을 맞은 삶의 형태들 때문에 청년때와는 달라진 선택들로 서로 놀라워했다. 내려줘야 하는 곳을 조금 지나고 나서야 차를 멈췄다. 뒤늦게 시작된 재밌는 이야기들을 나중으로 미뤘다. 오랫동안 같은 커리어를 쌓으며 지내온 동료가 친구처럼 느껴졌다.
학교 친구들과도 바쁜 일을 이유로 만남이 소홀해지고 대부분의 시간들을 회사 사람들과 보내면서 고민이 생겼다. 이익집단에서 만난 관계와 어느 정도까지나 소통해야 하는 걸까? 회사 안에서 친구를 만드는 일은 가능한 것인가? 미운 사람의 반댓말이 친구라면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회사에서 사람이 미워지는 이유를 정리해 보자.
1. 일을 잘못해서 나에게 그 일이 넘어와 다시 그 일을 해야 할 때
2. 나에 대한 뒷 담화를 3자를 통해서 듣게 될 때
3. 불량한 위생으로 주위사람에게 피해를 줄 때
4. 친한 척하면서 모임을 강요할 때
5. 바보 같은 사람들끼리 뭉쳐 다닐 때
6. 재미없는 농담을 계속할 때
회사에서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은 위에 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1번의 문제는 본인이 그것을 어찌할 수 없다는 지점에서 어려운 문제 같다. 일을 그르쳐서 남에게 넘기겠다고 일부러 작정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나. 본인의 커리어를 걸어야 할 문제일 텐데. 2번부터 6번까지의 문제들은 회사와 큰 관련은 없는 것 같다. 결국 사내에서 친구가 가능한 조건은 본인 일 정도는 깔끔하게 해낼 수 있는 게 전제조건이 될 수 있는 듯하다.
그러나 다양한 경험으로 사내에서 본인일을 깔끔하게 해낸다는 것은 개인의 역량 외에도 어쩔 수 없는 사내 정치적인 요인에 많이 휘둘리게 되어 있는지 알게 되었다. 이 말은 회사에서 1인분을 하고 있나에서 더 나아가 사랑받고 있냐 아니냐의 문제일 수도 있다. 회사에서 사랑받는 사람은 대부분 친하고 싶어 하거나 불편해한다. 불편해하는 일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본인의 일이 그 사람에게 넘어가게 된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더더욱이 그렇다.
생각해 보니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끼리 친구가 되는 경우도 많다. 우리가 특별히 취향이 맞지 않더라도 만나서 할 이야기가 많은 관계라면. 그것은 같은 적을 두고 있는 상태일 것이다. 혐오로 맺어진 관계들은 주로 음지에서 활동하며 누군가 지나가면 (그들 입장에서는 나타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다.) 스르르 흩어지기 때문에 아무리 밤새 이야기 할 수 있을지라도 그런 관계를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건 너무 독한 맛에 취해있는 관계다.
1인분을 할 수 없다는 말로 누군가를 멀리 해야 할지 말지는 모르겠다. 사내관계의 한계는 이런 곳에서 있는 것 같다. 1주일 전.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되는 한분이 업무성과가 낮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나가게 되었다. 물론 그분이 못한 일은 내가 아니라 다른 분이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힘든 일이 생기지는 않았다. 나에게 그 일이 왔었다면 나는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됐을까? 어차피 일은 위에서 만드는 게 아니던가?
대단히 잘 맞지 않아도 서로의 삶의 태도에 공감할 수 있고, 다른 부분은 유머로 감당할 수 있다면. 회사라는 이익집단 안에서도 나는 친구를 두고 싶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은 길고 나는 재밌는 걸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친구가 1인분을 못하게 되어 나에게 일이 넘어온다면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될까? 연휴가 끼어있는 긴 휴가를 앞두고 동료들은 친한 사람들과 커피타임을 가지느라 사무실은 한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