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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글을 브런치에 꺼내는 이유

새로운 글을 시작하면서

by 자몽



한동안 책을 써보겠다고 말 그대로 난리를 친 적이 있다.

(브런치에도 '내 글은 책이 될 수 있을까'라는 이름으로 매거진이 올라가 있다.)


아주 사소한 사건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당시 나는 공저로 책을 냈고, 블로그로 글 올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욕망은 채워지지 않았다. 공저는 내가 쓰고 싶은 대로 글을 쓸 수 있는 게 아니었고, 나는 거기에 고작 4 꼭지의 글을 올릴 수 있었다. 나는 할 말이 많았다. 4 꼭지로는 택도 없었다. 검색어 기반의 블로그는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을 수 있는 온갖 방법을 연구해야 했다. 글 올리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드는 자동 댓글도, 댓글 하나를 얻기 위해서 내가 누군가에게 찾아가 댓글을 남겨야만 되는 현실도 지치게 만들었다.그래서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야겠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주 막연하게. 그리고 그다음 날, 우연히 크로거(Kroger) 마트에 있는 스타벅스에 갔다가 단번에 주제를 잡아버렸다. 아주 성급하지만, 매우 신나게.





사건은 이렇다.

카트에 담은 식품들을 계산하고 스타벅스에 갔을 때, 직원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화장실에 갔나?'싶어 서성이는데, 지나가던 마트 직원이 환하게 웃으며 '스타벅스 직원'을 불러주겠다 했다.


잠시 후, 한쪽에서 머리를 핫핑크 색으로 물들인 흑인 여자가 천천히 걸어왔다. 단잠을 깨웠나 싶을 만큼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계산대 앞에 선 그녀는 나를 쳐다보지도, 인사도 건네지 않았다. 긴장됐다. 이 여자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복잡한 주문을 하면 싫어할 것 같았다. 그래서 전에 주문했던 내역을 보여주며 그대로 만들어달라 말했다. 내가 하나씩 말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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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음료가 잘못 나왔다. 평소라면 아무 말하지 않고 받아갔을 텐데, 오랫동안 벼르고 벼르던 커피 한잔을 맛없게 먹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소금이 들어간 거품을 시켰는데, 여긴 설탕이 들어있어." 그 직원에게 이야기했더니 눈을 내리깔고 자기는 맞게 잘 만들었단다. 응? 말문이 막혔다.


가격도 내가 이전에 먹던 것보다 1불이 비쌌다. 다시 물었고, 그녀는 그제야 나를 처음으로 쳐다보며 답했다. "원래 온라인이랑 여기는 가격이 달라." 차라리 쳐다보지 않았을 때가 나았다. 눈빛이 살벌하다. 가격이 다르다니, 첨 듣는 이야기지만 직원이 그렇다니 그런가 보다 했다. 더 이상 말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결국 원하지 않는 커피를, 평소보다 1불 더 주고받아온 셈이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안에서 검색해 보고야 알았다. 그 여자가 틀렸다. 당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스타벅스 앱에 이 사실을 남겼고, 다음날 나는 커피값의 두 배를 받았다.





인종차별인 줄도 모르던 소심한 아줌마


얼마 전, 맥도널드에서 인종차별을 받았다며 올러온 동영상이 화제가 된 일이 있다. 70분 동안 기다렸는데 결국 받지 못하고 떠난 커플. 인종차별이라며 분노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믿을 수 없다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바보같이 우는 여자와, 받아내지도 못하고 떠난 커플을 조롱했다. 70분이나 기다린 그들을 바보 취급했다.


나도 오래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70분은 아니고 50분. 그때도 스타벅스였다. 사람이 분비는 시간이었지만 나는 미리 앱으로 주문하고 픽업만 하러 간 거였다. 나보다 늦게 온 모두가 떠났다. 매장은 한산해졌고, 직원들은 농담을 하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내 음료는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몇 번을 물어봤지만 기다리라 했다.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었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이곳에서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오기가 생겨 결국 끝까지 기다렸다. 그때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50분을 기다렸을 때나, 잘못된 음료를 다시 만들어주지도 않고 가격도 더 받았을 때나, 나도 인종차별로 걸고넘어지면 그럴 수 있는 일이다. 누구는 나더러 바보 같다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기특했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뭐라도 했다는 사실에, 돈을 받아낸 것이 뿌듯했다. 나에게는 큰 용기였고,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대체 나는 뭘 하고 살았길래 이 당연한 요구조차도 기특하다 생각하는 거냐.


이거구나. 나같이 소심한 사람들을 위한 글을 쓰라는 신의 계시처럼 느껴졌다.

앞으로 펼쳐질 고난의 크기도 모르고, 마냥 가슴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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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러지 말았어야 했다


40 꼭지면 책이 만들어진다기에 신나게 썼다. 너무 신나기만 했다. 주제를 날카롭게 다듬지 않았고, 누구에게 하고 싶은 말인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래서 참 많이 헤맸다. 오랫동안 그랬다. (이렇게 간단히 말할 일이 아니지만) 굳이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1. 처음에는 평생을 소심하게 살아온 내가, 사람들에 잘 섞이는 외향형 사람들을 부러워하던 이 40대 아줌마가, 변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니 당신도 할 수 있다고 말하려고 했다. 세상에 소심한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런데 정말 잘 변한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닌 것 같았다. 자신이 없었다. 글이 가짜 같았다.


2. 그 이후에는 '뭐 사람이 꼭 변해야 해? 생긴 대로 살면 되는 거 아냐? 내가 가진 모습을 인정하면 되는 거잖아. 아니, 내성적인 사람이 뭐 나빠?' 식의 의식의 흐름들이 지나다녔는데, 이런 주제의 책은 이미 시중에 많았고 그만큼 식상했다.


여기까지 1년은 걸렸을 거다. 이때 처음 투고를 했다. 그리고 그제야 알게됐다. 반기획이니 기획이니하는 출판 용어도 모를 만큼 내가 출판계에 무지했다는 걸, 그만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는 걸, 내가 1년간 지지고 볶은 글은 기껏해야 '반기획'으로밖에 세상에 나올 수 없다는 걸, 그렇게 나온들 봐줄 사람이 많지 않다는 그 불편한 현실을 깨달았다.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뭘까? 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3.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어릴 때부터 대문자 I이긴 했지만, 크면서 더 심해졌다. 원인은 명확했다. 바로 자기가 집에서도 대표인 줄 아는 기 센 남편(그와 17년을 넘게 살았다), 영어를 극도로 싫어했던 내가 지금 사는 곳이 하필이면 미국이라는 점(벌써 10년이다). 그렇게 장을 새로 배열하며 또다시 썼다.


4. 끝이 아니다. 순서가 한참 잘못되었지만, 이제야 다른 책들을 꼼꼼히 들여다보니 에세이보다는 자기계발서를 접목한 방식이 나을 것 같아 보였다. 다시 고민에 빠졌다.

깊게 들어가 보니 내 성격은 변하지 않았는데 이전과는 다르게 마음이 편안했다. 분명 뭔가 나는 변했다. 그렇다고 성격이 변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히 나는 달라졌다. 뭔지 모르지만 그걸로 모든 게 바뀌었다. 뭘까. 뭐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대단한 게 아니었다. 별 것도 아닌 아주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그렇게 나를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목차를 재배열했고, 새로운 글을 썼으며, 이미 써놓은 글을 수정했다. 이제야 조금은 세상에 내놓고 싶어졌다.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40 꼭지를 다 쓴 후에 투고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40 꼭지를 다 쓰고 난 후에야 기획서를 쓰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어느 분야의 책을 쓸지 먼저 정했어야 했다.

분명한 독자 한 명을 정하고, 콘셉트를 선명히 잡은 후, 기획서부터 썼어야 했다.

그 방향대로 목차를 만들고, 글의 성격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글들만 잘 써서 출판사의 반응을 먼저 봐야 했다.

반응이 없으면 기획서부터 수정해야 했다.


혼자 고민하고 40 꼭지를 여러 번 다시 쓸 게 아니라!





결국 투고를 포기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투고를 포기했다. 출간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고이 접어버렸다. (물론 반기획이니 하는 현실을 알게 된 이유도 크다.) 저 과정에서 투고는 한차례밖에 하지 않았다.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제 풀에 나가떨어진 셈이다. 옆에서 책이 언제 나오냐며 궁금해하던 딸과, 조심스럽게 물어보던 남편의 관심도 멀어졌다. 일 년 넘게 붙들고 있던 내 글들은 그렇게 아무도 찾지 않는 어느 컴퓨터 폴더에 잠들어버렸다. 내가 쏟아부은 그 시간과 커피값에 속이 쓰렸지만 더 이상 세상에 꺼내놓을 생각은 들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도 잊을 만큼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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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글을 브런치에 꺼내는 이유


열흘 전이다.

나의 이런 사연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분이 나에게 물었다.


"갑자기 뜬금없이 궁금해졌는데 반년 정도 되었나? 그때 그 원고. 여전히 제목에 '소심한'이 들어가? 지금은 완전 아닐 것 같은데?"


내가 답했다.

"내가 생각해도... 이제 나는 괜찮은 것 같아. 성격이 변한 게 아니라 그걸 바라보는 내 마음이 변했어~ 마음도 되게 편안해지고, 그 글을 쓰면서 나를 들여다보고 이해하게 된 것 같아. 이제는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 같아."라고.


맞다. 비록 '종이책으로 출간'할 거라는 처음의 꿈은 접었지만, 이 글은 감사하게도 나를 변하게 했다. 밥을 하다가도, 운전을 하다가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도 나는 계속 생각했다. 그런 메모들이 수십 장이 쌓일 만큼. 어쩌면 변해서 쓰기 시작했던 게 아니라, 쓰는 대로 내가 변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은 감사하다. 그리고...


이제는 세상에 꺼내놓을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브런치를 통해 조금씩 세상에 꺼내보려 한다.

누군가, 나 같은 사람에게 닿길 바라면서.

그들의 마음에 잔잔히 스며들면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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