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고1, 여느 때처럼 수업이 끝나자마자 조용히 가방을 챙겼다. 야간자율학습이 필요 없는 예체능 아이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놀러 가는 건 아니었다. 매일 6시부터 10시까지 미술학원에 다녀야 했으니 어쩌면 집에 가는 시간은 더 늦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갈 때마다 눈치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짝에게 눈인사만 남기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이대역 4번 출구, 신촌 방향 버스 정류장까지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먼 거리도 아닌데 촉촉하게 땀이 맺혔다. 미술학원이 있던 '산울림 소극장'까지는 네 정거장. 홍대 가는 버스는 워낙 많아서 바로바로 오기 마련인데 이 날따라 버스가 오질 않았다. 도로가 한산한 걸 보니 아현동 쪽에서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정류장에 사람이 늘어날수록 더 덥게 느껴졌다. 버스 앞 문이 열릴만한 위치에 자리를 잡은 뒤, 고개를 빼고 버스를 기다렸다. 자리 선점이 중요했다.
드디어 익숙한 버스 한 대가 점점 커지는 모습이 보인다. 역시 사람이 많다. '좀 더 기다릴까? 아니야, 가까우니까 참고 가면 되지.' 내가 먼저 올랐고, 내 뒤를 따라 사람들이 계속 탄다. 의자는 어림도 없고, 천장에 달린 손잡이 하나를 겨우 잡아 쥐었다. 다음 정류장에서 사람이 타지 않기를 바랐지만 다른 정류장 사정은 더 좋지 않다.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 행렬이 멈추지 않는다. 나는 결국 완전히 끼인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몸이 움직여지질 않는다. 만원 버스다.
덜컹 버스가 천천히 출발하자 파도에 밀려 나도 휘청거린다. 순간 느낌이 이상하다. 몸은 흔들리는데 아래쪽은 이 거센 파도를 잘 버티고 있다. 고개를 억지로 숙여보니 낯선 손 하나가 내 하얀 바지에 달린 금색 지퍼를 잡고 있다. 분명한 남자 손. 믿을 수가 없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움직여 보려고 했지만 지퍼를 쥔 손이 강하게 붙들고 있다. 이럴 때 어떻게 하면 되는지 배운 기억이 없다. 고개를 살짝 틀어보니 저 감색 티셔츠, 눈에 익다. 숨을 몰아쉬며 버스에 타는 모습을 보고 ‘되게 더운가 보다.’ 생각했었던 서른 살 초반의 남자.
다음 정류장에서 사람들이 좀 내리면 움직여 보기라도 하겠는데 버스는 참 천천히도 간다. 내 몸처럼 시간도 얼어붙은 것 같다. 차리라 모른 척하자. 아무도 모르게, 마치 나도 몰랐다는 듯 가만있다가 내리자. 남자 손에 붙들린 채 나는 그렇게 하기로 한다. 만 15세의 내성적인 여자아이에게 다른 방도는 생각하기 어려웠으니까.
하지만 남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위로는 더운 입김을 뿜어대고, 아래로는 손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지퍼가 조금씩 내려가고 멈추길 반복한다. 구멍이 조금씩 입을 벌리는 게 보인다. 남자 손을 잡으면 그만둘 것 같은데도 가위에 눌린 듯 손이 움직이질 않는다. 눈동자마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잊은 듯 정면만 응시한다. 아무도 보지만 말아달라고 속으로 빌고 또 빈다. 식은땀인지 눈물인지 흐르는 게 느껴진다.
그 순간이다. 강하게 미는 두 손에 의해 내 몸이 창가 쪽으로 떠밀린다. 목이 꺾일 정도의 강한 힘이다. 덕분에 남자 손도 떨어져 나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판단이 되질 않는다. ‘누가, 왜?’ 누군지 확인하고 싶어 창문을 슬쩍 올려보니, 내 바로 뒤에 한 아줌마가 보인다. 내 옆에 아무도 오지 못하게 나를 감싸 안은 형태로 버티고 서 있던 아줌마. 그때 알았다. 이 어른이 날 도와줬다는 사실을. 감사하다는 말도 못 한 채 나는 조용히 지퍼를 올린다. 더 이상 아무도 나를 주시하지 않기만 바라면서.
이 날 남자가 언제 내렸는지, 나는 무슨 정신으로 미술학원까지 갔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이후 내가 기억하는 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는 사실 하나다. 엄마에게도, 친한 친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 아무도 모르면 없던 일이 된다는 듯 모른 척했다. 기회가 충분히 있었는데도 남자 손을 낚아채지 못한 내 탓 같아서, 수많은 사람들이 옆에 있었는데도 도와달라 말할 용기가 없었던 내가 싫어서. 그걸 누군가 아는 게 부끄러웠다.
사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1학년때 화학 선생님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팔을 주무를 때도 나는 어색하게 웃고만 있었다. 그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내 손을 끌어당겨 자신의 회색 양복바지에 비볐을 때도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 바랬다. (나중에 학교에서 갑자기 잘렸는데, 아무래도 비슷한 일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홍대 놀이터에서 아랫도리를 내밀고 웃고 있는 바바리맨을 만났을 때는 아예 보이지 않는 듯 굴었다. 홍대 가는 버스에서 가운데 머리가 훤하게 벗겨진 아저씨가 내 엉덩이를 두 손으로 잡고 문질러 댔을 때도 얼어붙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때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나는 성추행 피해자가 아니라, 바보같이 당하고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병신일뿐이었다.
버스에서 지퍼 성추행범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아침이다. 교실 뒷문이 쾅 열렸다. 돌아보니 반 여자아이 하나가 흥분한 채로 교실로 들어오며 외쳤다. “나 버스에서 변태 봤어!”라고. 먼저 등교해 교실에 있던 아이들 눈이 일제히 이 친구에게 쏠렸다. 들어보니 마을버스를 타고 오는데 엉덩이를 만지는 변태를 만났고, 소리소리를 질렀더니 다른 어른들이 도와줬다는 스토리. 나는 멀리서 이 아이가 늘어놓는 무용담을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부러웠다. 평소에는 눈이 잘 가지 않던 그 아이가 얼마나 멋져 보이던지. 내 모습과 나란히 놓고 비교를 하니 스스로가 더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때의 난 또래보다도 더 어려보였고,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말하는 듯한 눈동자를 가진, 딱 봐도 약하고 순진한 아이였다. 아무래도 성추행범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생긴 어린 여성을 타깃으로 삼았던 것 같고, 나는 쉬운 먹잇감처럼 보였을 거다. 그들의 예상대로 생긴 대로 행동했으니 적당한 대상을 잘 고른 셈이다.
벌써 30년 가까이 된 일이지만 지금도 예전의 그때가 떠오르곤 한다. 버스에서 내 바지 지퍼를 잡고 있던 강한 손이, 그 남자의 더운 입김과 거친 숨소리가, 선생님의 회색 양복바지와 닿아있던 기분 나쁜 감촉이, 홍대 놀이터에서 아랫도리를 흔들던 아저씨의 비릿한 웃음이, 생생하게 각인되어 눈앞에 펼쳐진다. 아마도 아쉬움 때문일 거다. 즉시 행동에 나서지 못한 아쉬움, 잘못한 사람을 그냥 놓아준 아쉬움, 주변에 도와달라고 말할 용기를 내지 못했던 아쉬움, 부모님이나 친구에게 이야기하고 마음에서 털어버릴 기회를 놓친 아쉬움 말이다.
지금은 안다. 내 잘못이 아니었다. 이 당연한 사실을 나는 꽤 커서야 깨달았다. 나는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한 못난 사람이 아니라 명확한 피해자였다. 병신이 아니라 그런 무서운 순간들을 겪어도 씩씩하게 잘 살아주었으니 용감한 아이다.
이제 나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할 수 있는 눈을 가졌고, 주변 상황에 유난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안테나를 장착했으며, 어린 시절 나를 도왔던 아줌마처럼 용기도 생겼다. 이제 그런 상황을 만나면 내가 먼저 나서서 도와줄 거다. 아이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조용히 감싸줄 거다. 그때 나를 도와줬던 그 아줌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