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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못 쓰는 몹쓸 병

by 자몽


“저는 사람 만나면 신발부터 봐요. 신발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니까요.”


몰랐다. 신발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거였다니. 나는 신발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슬러퍼 하나와 운동화 하나, 등산 신발 하나면 충분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부지런하지도 않아서 늘 깨끗하게 신발을 유지하는 편도 아니다. 평소 상태가 어떤지 크게 관심을 가지지도 않는다. 캠핑이라도 가서 엄청 더러워지지 않으면 빨지도 않았다. 나에게 신발은 발을 보호하는 수단일 뿐이었고, 그래서 다른 사람을 만나 신발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그래서 정말 몰랐다.




그날은 다른 집에 초대를 받아 갔던 날이다. 그 집 남편은 우리 집 남편 후배이기도 하고, 나와도 스타트업에서 4년을 같이 일했던 동료이기도 하다. 미국도 같은 시기에 왔고,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 몇 년간 종종 만났다. 여행을 같이 가기도 했으니 내 기준에서 꽤 가까운 사이었다. 그날 식탁에 둘러앉은 자리, 와이프분이 꺼낸 말 한마디에 나는 당황하고 있었다. 여러 해 만나면서 그동안 내 신발을 분명 봤을 텐데? 오늘 운동화는 상태가 어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당장 달려가 운동화를 확인하고 싶은 지경이었다.


이 집은 감각적인 와이프 손을 거쳐 집도 이쁘게 꾸며져 있고, 소품도 모두 신경 쓴 티가 났다. 그릇도 하나하나 이뻤다. 커다란 화병에는 늘 꽃이 풍성하게 꽂혀 있었다. 소파는 나는 알지도 못하는 어느 브랜드 것을 몇 달을 기다려서 받았다고 하고, 박스채 가지런히 보관된 신발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차 있던 그런 집이었다.


그래, 그간 조금씩 비교가 되긴 했다. 그런 감각이 부럽기도 했고, 왜 나는 물건 하나도 자꾸 싸구려만 사는지 짜증도 났다. 그래도 잠깐이었다. 다시 나 혼자가 되면 금방 잊었다. 한데 이날은 부끄러웠다. 그간 내가 신었을 신발들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남편을 흘깃 보니 내 심정을 아는 눈치다.


역시나 집에 가서 아이들을 재우자마자 이 남자는 나를 보며 막 웃어댔다. 그동안 내 신발 계속 봐왔던 거 아니냐며. 그러고 보니 또 그렇다. 이제까지 내 신발을 못 보진 않았을 텐데 대체 왜 그런 말을 꺼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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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릴 때부터 돈 쓰는데 소질이 없었다.

한참 외모에 관심을 가질 중학생 때도 돈 쓸 줄은 모르고 미련스럽게 모으기만 했다. 메이커 사달라고 조르는 고등학생 한 명(친오빠)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철없다고 속으로 욕도 했다. 부모님은 검소한 편이었는데 유독 오빠만은 달랐다. 자주 사달라는 것도 아니었고, 한번 사면 오래 입는 편이었는데도 우리 집에서 오빠는 문제아 취급을 받았다. 반면에 나는 무조건 가격이 먼저였다. 돈 앞에서 늘 벌벌 떨었다. 무슨 대단한 주관이 있던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생겨먹었다.


대학생 시절에도 그랬다. 친구가 쇼핑하자며 나를 끌고 명동에 간 날, 역시나 나는 금세 지쳤다. 남자들이 여자친구 쇼핑에 따라가서 받는다는 스트레스를 나도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내 눈앞에 펼쳐진 수십 개의 선택지도, 모르는 점원과 말을 섞어야 하는 상황도, 가격표를 보며 슬쩍 내려놓는 나 자신을 보는 것도, 모두 불편했다. 나는 빠르게 웃음을 잃었고, 눈치가 빤한 이 친구는 근처 커피숍에 나를 앉혀놓고 떠났다. 한 시간 후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직장 다닐 때도 마찬가지다. 게임회사로 이직해 첫 출근하던 날, 자그마한 여자 팀장이 나를 격하게 반겼다. "여자 직원이 들어와서 정말 기뻐요."라는 그녀의 들뜬 목소리에서, 동지라도 만난 듯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서 나는 '쇼핑 친구야 반가워.'라는 그녀의 속마음을 읽고 말았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하필이면 회사 옆 건물이 현대백화점이었고, 그녀는 점심시간마다 나를 끌고 그곳으로 향했다. 백화점 구석구석을 누비길 며칠, 내 얼굴에는 ‘피곤해요’또는 ‘가기 싫어요’가 여과 없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샘플 화장품 여러 개를 안겨주어도 내 표정이 밝아지지 않자, 팀장은 결국 나를 회사에 두고 나갔다. 홀가분했다. 역시 사회생활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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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할 때도 그렇다. 결혼할 때 시댁에서 반지를 해주겠다 했을 때도 내가 거절했다. 대신 우리는 25만 원짜리 커플링을 맞췄고, 그걸 17년 넘게 끼고 있다. 내 몸에 걸치는 건 뭐든 '사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 내 옷장이나 신발장은 헐렁하고, 액세서리는 결혼반지 이외에는 한 개도 갖고 있지 않다. 그간 아빠로부터, 남편으로부터, 친구로부터 선물을 받은 적도 있지만 칠칠치 못한 성격과 여러 번의 이사로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좋은 물건은 관리를 잘해야 하는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명품백을 갖고 싶다 생각한 적도 없다. 아마 나는 나에게 돈을 못쓰는 병에라도 걸렸나 보다.




"너, 좀 가꾸고 살아. 옷도 좀 사 입고." 엄마가 말씀하신 적이 있다. 딸이 더 이쁘게 하고 다니길 바라는 마음, 나도 안다. 하지만 쇼핑은 내 우선순위에서 너무 멀다. 집안일하고, 마트에서 장보고, 아이들 챙기고, 책도 읽고, 드라마도 보고, 게임도 좀 하고 나면 내 에너지는 거의 남지 않다. "엄마, 나는 사람 많은 곳에 가서, 수백 개 펼쳐진 보기에서 답을 찾아내는 자체가 스트레스야." 내 말을 들은 엄마는 한참을 생각하신 후에 말씀하셨다. “그냥 네가 관심이 없어서 그래.”


맞는 말 같다. 어릴 때부터 꾸미는 데 관심이 없었고, 그보다 돈이 아까웠다. 결혼하고 애 낳고 미국까지 왔더니 그 관심에서 더 멀어져 버렸다. 누군가를 만나기 살기 전까지는, 캘리포니아에 살 때까지는, 나도 괜찮았다.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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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에서는 내가 마주치는 엄마들은 대게 운동복 차림이었다. 만나는 사람들도 편한 복장이었다. 그때는 아이도 어렸고, 코로나도 있었기에 사람을 많이 만나지도 못했다. 하지만 텍사스에 오면서부터가 상황이 달라졌다. 이전 동네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한국 주재원들을 이곳에서는 흔하게 만났다. 한국물을 아직 잘 머금고 있는 그녀들은 젊었고, 이뻤으며, 자신을 아낄 줄 알았고, 그만큼 잘 꾸미고 다녔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들 잘 꾸민다. 딱 나만 빼고.


비교가 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내 신발에, 내 옷에, 내 가방에, 내 얼굴에 꽂히는 것 같았다. 샤넬백 든 친구를 보며 내 하나뿐인 토리버치 가방을 슬며시 내렸다. 몰랐을 때는 편했는데 가격 차이가 10배 가까이 나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굳이 꺼내놓고 싶지가 않았다. 화장품이나 브랜드를 주제로 대화에 열을 올릴 때면 한 마디도 끼지 못했다. 스스로 잘 가꾸는 사람들 눈에는 내가 걸친 모든 껍데기들이 쓰레기처럼 보일 것 같아 초라해졌다. 좋은 가구와 그릇으로 채워진 다른 집에 다녀오면 우리 집에 초대하기 부끄러워졌다. SNS에 올라온 친구들의 고운 얼굴을 보고 나면 화장기 없이 나이 들어가는 내 얼굴이 유난히 보기 싫었다. 20대에는 피부가 좋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던 나지만 마흔이 넘으니 얼굴은 가꾼 대로 드러난다.


어쩌면 나는 정말 관심이 없던 게 아니라, 그저 돈이 아까워서 못 쓰는 사람이 된 건 아닐까.비싼 물건을 사지 못할 바에는 '아예 안 꾸미는 사람이 쿨 해 보이지'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던 게 아닐까. 애초에 왜 돈 쓰는 게 힘들까. 이제는 여윳돈이 있는데 언제까지 돈에 민감할까. 나는 왜 나를 더 아껴주지 못할까. 왜 아이들에게까지 ‘사기 전 정말 필요한 건지, 단순히 갖고 싶은 건지 생각해 봐.’라고 이야기하고 있을까. 잘 꾸미는 사람이었다면 더 자신감 있게 살았을까. 그랬다면 소심한 성격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많은 질문들이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마음이 괴로웠다. 초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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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서를 처음 접하며 나를 괴롭히던 질문의 답을 조금씩 찾을 수 있었다. <세이노의 가르침>과 <돈의 속성>을 읽으며 돈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잘못된 게 아니구나 느꼈다. 미국에서 상위 2%의 부자들을 추적 조사한 <이웃집 백만장자>를 읽으며 매스컴에서 부자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고급스러운 삶은 그들의 실제 삶과 달랐음을 알게 되었다. 돈을 버는 액수보다 어떻게 쓰는지가 중요했다. 백만장자들은 차는 중고로 샀으며 고가의 옷을 사는 비율도 현저히 낮았다. 그들이 말하는 ‘부자의 소비’와 나의 소비 패턴은 닮은 구석이 많았다.


나는 아낄 수 있는 부분은 아끼더라도 경험을 쌓는 곳에는 투자가 필요하다 생각해 왔다. 내가 만지고 오래 쓸 물건은 어느 정도 비싸더라도 그만큼 가치가 있다 여기며(물론 실제로 돈을 들여 사는 건 아직 어렵지만), 명품백을 살 돈으로 주식을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외모보다 내면을 채우는 것에 관심이 많던 나는, 구질구질한 사람이 아니라 부자의 마음으로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코딱지만큼은 내가 멋있어 보인다.


앞으로도 나는 명품백을 살 마음은 없다. 단지 브랜드 이름을 갖기 위해 돈을 쓸 생각도 없고, 신발장이나 옷장을 가득 채우고 싶지도 않다. 나는 그런 것들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갖고 있으면 피곤하기만 할 거다. 글러먹었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나(잘 놀러 다니겠다는 이야기), 베개나 그릇같이 내 손길이 닿는 것들에는(사실 이런 건 셀 수 없이 많으니 엄청 쓰겠다는 거고), 푸석한 얼굴을 생기가 돌게 만드는 데에는(피부는 다시 어려지고 싶으니까 이것도 돈 좀 들 것 같고), 내가 좋아하는 책을 사는 데에는(전자책 말고 종이책으로), 뭔가 배우고 싶은 곳에는(애들한테 쓰듯, 나에게도 좀 써보고 싶다), 건강을 위해서는(이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니까) 생각 없이 돈을 좀 쓸 생각이다. 쓰다 보니 집이 거덜 날 것 같지만, 그깟 거덜 좀 나보련다. 40대가 지나기 전에, 돈을 못 쓰는 몹쓸 병을 그렇게 고쳐보고 싶다.

그리고 사실, 마흔이 넘어가면 명품백보다 몸에 붙은 근육이 진짜 명품이 아닐까. 그건 좀 많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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