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극(間隙 : 사귀는 사이나 의견 등에서 생기는 틈).
미대 여자와 공대 남자. 논리를 싫어하는 여자와 논리로 생각하는 남자.
이른바 성격 차이. 하지만 살아보니 우리의 간극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았다. 성격은 살면서 맞춰질 거라는 기대라도 할 수 있지만, 이건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17년을 살아보니 이 간극은 예상보다 더 거리가 있었고, 조금도 좁혀지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교수 자식이 왜 저래?”라는 말을 대놓고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공부 이야기라는 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 말을 하던 아이 표정, 순간 얼굴이 뜨거워진 느낌까지도.
나는 아이큐 검사 결과는 꽤 상위권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공부 쪽으로는 소질이 없었다. (아이큐 믿을 거 못된다!) 학교 성적도 좋은 편이 아니었고 수학머리도, 암기머리도 없었다. 융통성도 없어서 완전히 이해될 때까지 대충 넘어가지도 못해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다. 미술학원에서도 선생님이 설명해 주면 아이들이 각자 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묻고는 했다. 공부는 원래 내 길이 아니라 느껴서인지 욕심도 없었고, 부모님도 공부해라 잔소리하지 않았다. 자식 교육에 큰 관심이 없던 분들이었다.
그나마 그림은 어느 정도 그렸던 편이라 서울에 있는 대학에는 입학할 수 있었다. 비록 재수지만 특차로 합격했다. 졸업 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석사 과정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공부에 뜻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아빠 권유였고, 마침 나도 그림으로 먹고 살 마음이 없던 데다가, 아빠가 계시던 학교라 학비가 저렴했다. 어찌어찌 학벌은 생겼지만 머리가 갑자기 좋아질 리 없었다. 말도 조리 있게 잘하는 편도 아니고, 상식도 부족했다. 그러니 저런 애가 석사를 졸업했다고? 의아해 하지나 않을까 싶어 어디 가서 말하기가 싫었다. 교수 자식이 왜 저러냐던 그 아이 눈빛이 계속 따라다녔다.
스스로 자신이 없다 보니 똑똑한 사람을 보면 긴장을 하곤 했다. 혹시나 내 얕은 지식을 알아보지나 않을까, 비웃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면서. 좀 모른다고 누가 대놓고 욕을 하는 것도 아닌데 방어부터 하기 바빴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 말할 용기가 없었다.
그러던 내가 하필이면 똑똑한 남자를 만났다.
그것도 태생부터 똑똑하게 태어난 사람.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하던 이 아이는 중3이 되어서야 과학고에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 시절에도 과학고 준비학원이 있던 모양인데(난 그 나이에 대한민국에 과학고가 있는지도 몰랐다), 보통 그 시절에 과학고를 희망하는 아이들은 중1부터 준비를 시작했다고 한다. 중3에 시작하는 건 많이 늦은 편이었다. 아이가 스스로 마음을 먹었으니 집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면 좋았겠지만, 남자의 집은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생업이 바빠 아이의 학업에 관심을 갖기도, 학원비를 대주기도 어려웠다. 똑똑한 아이를 알아본 것인지 이 남자가 찾아간 학원에서는 학원비를 받지 않았고, 이 남자는 그 학원에서 유일한 합격생이 되었다.
그로부터 2년 뒤, 과학고등학교를 2년 만에 졸업한 남자는(사실 나는 이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고등학교를 일찍 졸업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카이스트에 입학한다.
나는 10가지를 들으면 10가지를 다 까먹는데, 저 남자의 머리에는 뭐가 든 것인지 10가지를 들으면 다른 10가지와 조합해 20가지를 만들어낸다. 그 20가지는 다시 논리적으로 재배열되어 말로 술술 나온다. 그뿐인가. 언어 감각도 탁월하다. 대학교 때 1년간 일본으로 연수를 다녀온 것이 전부인데, 일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 그 덕에 지금도 일본과 비즈니스를 하며 돈도 번다. 영어도 잘하고, 스페인어, 중국어도 어느 정도 할 줄 안다. 반면에 나는 모국어만 가능하다! 일본에도 살아봤고, 미국에는 살고 있는데도 도통 늘지 않는다. 이 남자는 어쩌면 내가 가장 피해야 할 종류의 사람이었을 거다.
사실 연애할 때는 잘 몰랐다. 눈이 씐 콩깍지가 한 몫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보니 비교가 되기 시작했다. 남편과 내가, 남편 친구와 내 친구가, 그리고 남편 친구 와이프들과 내가. 똑똑한 남편의 똑똑한 친구들은 또 비슷하게 똑똑한 여자들과 결혼했다. 누구 와이프는 어디 교수가 됐다더라, 누구 와이프는 공부를 더 하고 있다더라. 듣기만 해도 스트레스였고, 그래서 거리를 두었다. 눈을 막으니 좀 나아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남편으로부터 다른 이야기가 전해지기 시작했다.
(똑똑한) 친구 누구네 집 아이는 무슨 상을 받았다더라, (똑똑한) 친구 누구네 집 애들이 이렇게나 똑똑하다더라, (또 다른 똑똑한) 친구 누구네 집 아이는 벌써 이런 걸 한다더라! 그의 똑똑한 친구들은 왜 죄다 똑똑한 와이프를 만나, 똑똑한 아이들을 낳는 것인지!
"너, 나중에 애가 공부 못하면 사람들이 니 머리 닮았다고 할 거야." 내가 첫 아이를 낳고 엄마가 했던 말이다. 애가 공부 잘하면 자랑스러운 사위 덕, 공부 못하면 내 탓이라니. 그 한마디 때문에 내가 아이들을 키우며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상상도 못 했을 거다.
부모님은 처음부터 남편을 마음에 들어 하셨다. 그를 처음 보자마자 '저 녀석을 반드시 사위 삼아야겠다' 마음먹으셨다고 한다. 오랜 기간 대학에서 많은 학생들을 보아온 아빠의 눈에는, 생긴 것만 봐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느껴졌던 거다. 게다가 첫 만남에서 ‘자네, 미래 과학산업의 전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그가 거침없이 답을 하자, 아빠는 속으로 모든 검증을 끝낸 모양이다. 그때부터였다. 별 볼 일 없는 딸보다 사위를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시작한 때가.
남편이 스타트업을 시작하고 종종 인터넷 기사에 등장하면서부터는 더 ‘자랑스러운 우리 사위’가 되었다. 엄마는 네이버에서 남편 이름을 검색하곤 하셨는데, 뭐라도 기사가 나오는 날이면 나에게 링크를 보내주셨다. 가끔은 남편이 페이스북에 업로드하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말이다. 그러면 아빠는 엄마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아 주변 친구들에게 자랑하셨다. 아빠는 자식자랑 못해본 한을, 사위 자랑으로 풀어냈다.
남편이 잘 되면 분명 기쁜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아빠가 '우리 자랑스러운 사위'라고 남편을 칭하면서도, 정작 딸에게는 그저 '복이 많아 똑똑한 사위를 만났다'는 듯 말하실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엄마는 또 어떤가. 남편과 나를 대놓고 비교하지는 않았지만 '애들이 공부 못하면 니 탓이야.'처럼 지속적으로 돌려 까기 해서 나를 후드려 팼다. 만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똑똑한 형제를 둔 동생처럼, 함께 살며 계속 비교를 당해야 했다.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인데 잘난 사람 옆에 있으니 괜히 오징어가 되고, 멍청이가 되고, 자꾸만 주눅이 들었다. 나는 좀 우쭈쭈 해줘야 기가 사는 사람인데, 이 사람 옆에서는 자꾸만 기가 죽었다. 역시 가장 피해야 할 종류의 사람이었을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누굴 닮았냐고? 안타깝게도 내 유전자가 많이 강했나 보다. 아이들 셋은 아주 평범하다. 아이들이 공부를 특출 나게 잘했으면 '애들 머리는 엄마 머리를 닮는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믿어보려 했는데, 이제 그 말은 믿지 않는다. 그러려고 노력한다.
다행히 지금은 행복도, 자산도 성적순이 아닌 세상이다. 머리가 비범하지 않으면 어떤가. 좀 평범하면 어떤가. 아이들 나름의 길이 있을거고, 나는 그 길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면 될 일이다. (라고 주문을 외워본다,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