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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brella - 비를 사랑하는 여인

삶, 회복력, 그리고 삶의 끝자락에서 피어나는 우아함에 대한 기록

by Dream into Action

1978년, 한 젊은 여인이 다섯 살 아들과 함께 희망을 가득 품은 작은 여행가방 하나를 들고 미국 땅을 밟았다.


고국에서는 사진을 공부하던 학생이었지만,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렌즈를 통해 아름다움을 담던 그녀의 손은 이제 식당에서 접시를 나르며 하루를 보냈다.


말은 서툴렀지만, 감수성만큼은 여전히 섬세하고 깊었다.




워싱턴주의 긱 하버(Gig Harbor).


그녀는 비가 끝없이 내리는 이곳에 조용히 뿌리를 내렸다.


사람들이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불평할 때, 그녀는 빗소리를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에게 비는 슬픔이 아닌, 살아 있다는 것,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 모든 희망을 상기시켜 주는 음악이었다.




매주 수요일이면, 아들과 함께 교회로 향하며 속삭였다.


“하나님, 이렇게 멋진 아들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이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월이 흘렀다.


아들은 어른이 되었고,


바다를 건너온 그 여인은 이제 80세의 노년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난소암 4기라는 삶의 마지막 관문 앞에 서 있다.




그녀는 나의 새로운 직업, 사회 복지사로서 연중 평가를 맡은 첫 클라이언트다.


그날, 나는 슈퍼바이저와 함께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그녀는 작고 연약해 보였지만 눈빛은 유난히 맑고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우리가 인사를 건네자, 마치 꽃이 천천히 피어나듯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했다.




집은 단정하고 고요했다,


천정에는 아담한 크리스털 샹들리에와 집안 곳곳에 스탠드 램프들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끌었다.


빛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은은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품은 빛들.




연중 평가가 시작되었고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선생님께 가장 완벽한 하루는 어떤 날일까요?”




그녀는 잔잔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여섯 해 전에 제가 한 달밖에 못 산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이후 제겐 하루하루가 귀한 선물이에요.


어떤 날이 더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가 없죠.”




그리고 우리를 바라보며 고요하게 덧붙였다.


“오늘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완벽한 날입니다.”




그녀는 미국 시민권 취득 시험 때 있었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Nickname(즐겨 부르는 이름)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Umbrella요. 저는 비를 사랑해요.


우산은 비가 올 때 조용히 펼쳐져 사람들을 보호해 주고,


햇살이 나오면 말없이 접혀 쉬어요.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필요할 때는 나 자신을 펼쳐 남에게 도움이 되고, 아닐 때는 조용히 자신에 충실하는 삶.”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어로 한 문장을 쓰라는 과제에 그녀는 이렇게 적었다.


“I love Washington State, because of the abundance of rain."

나는 워싱턴주를 사랑합니다. 비가 많이 내리기 때문이죠.




지난 6년 동안 그녀는 모든 치료를 묵묵히 견뎌냈다.


항암, 표적치료, 수술, 수십 번의 CT 촬영…


그리고 최근, 의사는 거의 모든 치료 방법이 소진되었다고 조심스레 전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빛으로 가득했다.




요즘 그녀는 소소한 일상에서 기쁨을 느낀다.


아들과 나누는 대화, 오랜 친구들과의 따뜻한 시간,


조용한 기도와 고요한 침묵.




그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냥 이사 가는 거예요.


조금 더 좋은 집으로요.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밤마다 이야기를 나누는 하나님을 만나겠죠.”




램프와 샹들리에를 향한 그녀의 사랑은 남다르다.


살림이 넉넉지 않았던 시절에도,


약간의 돈을 모아 모아 마음에 담아두었던 램프 하나 사는 일이


그녀의 소소한 희망이었다.




이유를 묻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빛이 있는 곳은 공간의 느낌이 확연히 달라져요.


그저 그런 공간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되죠.


빛은 우리가 주변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줘요.”




이제 그녀는 곧 그녀에게 다가올 마지막 시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이 아끼던 램프들을 하나, 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건네며 말한다.


“이 전등의 빛이, 당신을 통해 계속 빛나기를 바래요.”



그리고 지금, 그녀는 즐거운 소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으로 생의 마지막 기다림을 선택했다.


고요하게, 두려움 없이,


창가를 두드리는 빗소리와 함께.




그녀에게 비는 이별의 소리가 아니다.


잘 살아낸 삶을 축복하는 박수의 리듬이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슈퍼바이저와 나는 오늘 만남이 특별했음을 공유했다..


진정한 삶의 아름다움이란,


우산처럼 필요한 순간에 펼쳐져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깊이 사랑하며,


끝마저도 두려움 없이 감사로 받아들이는 삶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녀는 이 고요한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하얀 캔버스를 펼쳐 들고,


누에가 마침내 실을 끊고 나비로 날아오르듯


부드럽지만 단단한 마음으로 하늘로 향하는 순간


자신의 삶을 가장 아름다운 그림으로 완성할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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