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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최고, 최선을 뒤로하는 나이

초라하지 않으면서도 정결하게 꼿꼿하게 살기

by 비터스윗

생각이 길어집니다. 깊어져야 할 텐데. 길다고 오래 한다고 깊어지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쓰면서 정리를 좀 해보렵니다.


얼마 전

'우린 왜 늘 꼭 가득 채워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득히 최선인, 최고가 칭찬받는, 그런 게 의미가 없어지는 나이가 됐습니다, 제가요.


넘칠수록 좋아 넘쳐도 좋아


넘칠 만큼 따라줍니다.

친구가 소주를 가득 따라 줍니다.

넘치게 따라주면서 우정이 넘쳐서 그렇다고 합니다.


일본 주도에도 그런 것이 있더군요.

우리나라 '되'처럼 생긴 '마스(枡)'라는 나무 상자 안에 사케 잔을 놓고 술이 넘치도록 따라주는 ‘못키리’ 문화.

술집 주인의 최고의 서비스, 모임 호스트의 융숭한 대접을 의미하는 문화라고 합니다.


어쨌든 그날 갑자기 가득 채우는 것에 회의적인 기분이 들었어요. 왜일까.

이제 내 나이에 전력질주는 의미 없음을 깨달은 것이 아닐까. 온몸과 마음을 다하는 사랑도 부질없음을 깨달아서일까.

그래서 술을 따라주는 것도 가득 찰랑찰랑 하도록 따르는 것도 크게 감동적이지 않아요. 8부 정도나 9부 정도가 좋지요. 사실 술도 끊거나 줄여야 하는 나이입니다.


누가 주량이 얼마냐고 가끔 묻습니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요.

컨디션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그날 곁들이는 음식에 따라 다르니까요.

그게 뭐라고 예전에는 본인의 최고 주량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너 달리기 100m 몇 초야? 제일 잘 달렸을 때의 기록.

키 몇이야? 제일 높았을 때 수치를 말합니다. 반올림해서.


가장 최고일 때의 기준으로 살아왔습니다. 그거 하나 열심히 기억하며 살아왔습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다른데도.


미니멀리스트라고 굳이 안 해도 이제


뭐든 최고, 최고. 이젠 진력이 납니다. 몇 등, 몇 번, 최고, 최대, 최고급, 최상위...

태어날 때부터 비교하며 비교당하며 열심히들 살아왔어요.

이러니 나이 들면 다들 자신의 피크 때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합니다.

저희 친정어머니만 그러시는 줄 알았는데, 다른 친구 부모님들도 그러신다고 하더군요.

무슨 이야기만 나오면 당신의 최고 전성기 때 이야기를 한 시간 동안 늘어놓으십니다.

제 연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며칠 전에도 어떤 지인이 20대에는 배도 안 나오고 여자들에게 인기남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저 웃었지요.


중년에 접어들면 이제는 내려갈 일만 남았거든요. 40대 중반부터 이미 내리막 길이지만 은퇴하고 아이들이 하나 둘 떠나가면서 실감을 하게 됩니다.

물론 간혹 어떤 분들은 중년 이후 꽃을 피우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그의 수십 년의, 십수 년의 노력이 결실을 이루는 것이지요.

갑자기 대박이 날 일은 아마도 없지 않을까요. 기대도 안 합니다.

부자 되세요, 대박 나세요, 이런 건 진정한 인사가 아닙니다. 건강하세요, 건강하자가 최고의 인사입니다.


이젠 적게 원하고 적게 쓰고 적게 만족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단가가 비싸도 먹을 만큼의 장을 봅니다. 싸다고 콩나물을 오천 원어치 사겠냐고요. 두부를 열 모를 사겠냐고요.

무한리필 식당도 가고 싶지 않습니다. 뷔페식당 간지도 5년이 넘은 것 같습니다.

채우지 않는다고 그렇다고 남겨도 안되니까요. 나에게는 남아돌아도 누군가에겐 절실하게 필요한 그 무엇일지 몰라요.


나의 현재를 초라하게 여기지 말길


간혹 저희 친정어머니는 부풀리기도 잘하십니다.

전후 세대 치열하게 살아온 이들이 어떻게든 몸집을 키우기 위해 그러시던 게 버릇이 되셨나 봅니다.

적당히 20~30%는 부풀리셨다 생각하고 이해합니다. (심지어 매 번 말하실 때마다 달라집니다. 300만 원이 500만 원으로, 천만 원으로...)

점점 위축되고 기력도 떨어지시니 백번 이해합니다. 가족들과 얘기할 때 그러시는 거야 양념이고 애교죠.


그렇다고 잘하셨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늘 다짐합니다. 겸손하자. 절제하고 말을 아끼자. 나를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남을 비판하지 말자.

저는 상당히 비실용적이고 비경제적인 사람인데요, 어쩌면 이런 것이 경제원리인가요.

최소한의 노력이나 비용으로 최대의 만족이나 결과를 얻으려는 것.


그럴듯합니다.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이제는 그런 지혜가 필요한 나이가 됐나 봅니다.

최소, 최저를 지향한다고 남에게 지나치게 각박하거나 불편을 주어선 안 되겠죠.

우리는 늘 선을 잘 지키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지성인(!)이니까요.


초라해지지는 말자고요. 초라하지 않으면서도 정결하게 꼿꼿하게 살면 되거든요.

초라해 보이기 싫다고 남들 앞에서 잔뜩 몸집을 부풀리고 하는 이들이 더 안쓰럽더라고요.

그럴수록 그들의 영혼은 더 초라해 보이거든요. 그렇죠? 제 말이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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