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네가 얘기했던 고민 있지?
“사람들 얘기하는 거 잘 들어주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다들 나한테만 쏟아내더라구요. 제가 감정 처리반이 된 것 같고, 듣다 보면 너무 지치고… 제가 너무 착해서 그런 걸까요?”
그 말이 이상하게 계속 남더라. 소통하려고 하는 너의 노력이 뭔가 묘하게 왜곡된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나는 그게 단순히 네가 착해서 생긴 문제라고 보진 않아. 오히려 그건 대화의 균형이 깨졌을 때 생기는 구조의 문제고, 말을 주고받는 방식이 한쪽으로 기울어졌을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거든. 소통은 결국 서로 밀고 당기고, 주고받는 균형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무너지면 한쪽은 계속 붓고, 한쪽은 계속 받아내는 형태가 되기 쉬워.
일단, 내가 지켜보니 네 대화 패턴은 일반적으로 이런 흐름을 갖었어.
첫째, 너는 말을 거의 끊지 않아. 그건 장점인데 동시에 이렇게도 읽혀. “이 사람은 반박 안 하고 다 들어준다.” 그렇게 인식되면 감정은 더 많이, 더 깊게 흘러들어와. 경계가 없으면 말은 계속 넘치게 되어 있거든.
둘째, 듣기만 하고 되돌려주진 않아. 피드백 없이 듣기만 하면 그건 소통이 아니라 감정 배출을 받아 주는 것에 가까워. 너는 진심으로 들어주는데, 상대는 그걸 ‘비우는 공간’으로 사용해버리는 거지.
셋째, 너는 의미를 찾으려고 듣고, 상대는 감정을 해소하려고 말해. 목적이 다르니까 더 지치는 거야. 너는 소통을 하고 싶은데 상대는 속을 비우고 싶은 게 목표니까.
결국 듣는 사람이 소모되기 시작하면 그건 좋은 경청의 자세가 아니야. 경청만으로는 균형이 유지되지 않고, 어느 정도 서로간에 '기준'이 있을 때 비로소 청자도 존중받을 수 있어.
그 기준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내가 생각해본 방식이 있어. 크게 어렵진 않은데, 적용해보면 지금보다 훨씬 덜 지칠 수 있을 거야.
1. 피드백을 짧게, 거울처럼 돌려주기
듣기만 하지 말고 상대방의 감정을 되돌려 짧게 피드백을 주는 거야. 감정을 대신 들고 가는 게 아니라, 감정의 주인을 본인에게 돌려주는 방식. 예를 들어 '네가 봤을땐 뭐가 제일 문제였던 것 같아?' 거절의 표현은 아니지만, 그러면 상대는 그 순간 미묘하게 알아차려.
"아, 이 사람은 감정을 끝없이 받아주지 않는구나."
즉, 이 관계는 말이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통로가 아니라, 서로 오가며 왕복하는 대화의 공간이라는 걸. 더 이상 감정을 쏟아 내기만 하는 배출구가 아니라는 시그널을 간접적으로 보내는 거지.
2. 대화에는 ‘끝’이 있어야 해
오픈된 경청은 끝이 없어. 그래서 가끔은 부드럽지만 선명하게 마무리를 제안하는 게 필요해.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다음에 이어서 얘기하자”
이 말이 나오면 상대는 잠깐 멈추고 스스로 생각하게 돼. ‘내가 조금 길어졌나?’ 하면서, ‘아, 이 대화에는 끝이 있구나’라는 인지를 하게 되는 거지. 그 순간부터 말은 배출이 아니라 정리로 넘어가.
3. '경청의 깊이'에도 기준이 있어야 해
경청은 친절이 아니라 시간, 감정, 집중력이라는 자원을 쓰는 일이야. 말은 가벼워 보여도, 받아내는 과정은 사실상 '소비'나 다름 없거든. 그래서 스스로에게 먼저 묻는 과정이 필요해. 이 대화를 듣는 이유가 있는가? 지금의 내가 감당 가능한가? 이 흐름은 소통을 향하나, 단순 배출에 머물까?
경청은 좋은 마음만 가지고는 지속될 수 없어. 내가 쓸 수 있는 만큼 듣고, 필요하면 멈추는 선택이 있어야 균형이 유지돼.
네가 좋은 소통을 위해 경청하려고 한다는 걸 정말 잘 알고 있어. 다만 좋은 청자는 상대방의 감정을 일방적으로 끝없이 받아내는 사람이 아니라, 말이 흘러가고 정리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소통이란 결국 두 사람의 에너지가 오가며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야. 감정을 다 품어내기보다 필요한 만큼만 받아두고, 나머지는 되돌려 균형을 맞추는 것.
그게 어쩌면 네가 말하던 ‘경청’의 모습과 더 가까울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