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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지 Aug 26. 2024

과일은 맛있겠지만  나는 아프다.

이 느낌..

열이 나고  근육통이 있는 이 아픈 기분이 잊으려 해도 기억 속에 선명한 아픈 느낌.


어릴 적 하필 병원이 문을 닫는 공휴일이면 나는 열감기에 시달렸다.

어릴 적부터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키가 160이 넘던 나이에도 종합병원응급실은 나에게 익숙했다.

평소엔 엄하셨지만 마음이 약하셨던 나의 아버지는 내이마를 짚어보고서는 40도가 넘는 고열이 날 때면 응급실로 달려가곤 하셨다.


어떻게 던 열을 내려야 하기에 칸막이를 쳐놓고 이미 덩치가 커질 데로 커진 나는 러닝샤츠와 속옷차림으로 뜨거운 몸의 열을 떨면서 식히느라 그렇게나 추웠었다.


늘 그랬다.

열이 오르면 응급실에 갔다가 수액을 맞고 억지로라도 열을 내리면 그다음은 해열제를 타서 집으로 돌아왔다.


응급실은 어린 내게도 아빠가 내게 다 보여주신 최선이었고 평소엔 무섭기만 했던 아버지가 내이마를 짚어보는 날이면 난 어쩌면 아픈 날이 오히려 아빠와 친근할 수 있어서 좋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랬다.

편도선이 부어서 열이 났고  고질병처럼 장염에 시달리며 고열이 났다.

개근상이 중요했던 아버지에게 나는 단 1년도 개근하지 못한 딸이었다.


아파서 좋은 것도 있었다.

수액을 맞고 어찌어찌 병원을 나서면 엄마는 언제나 먹고 싶은 거 다 말하라며 뭐든 사주셨으니..


그 시절 비쌌던 바나나와 달콤한 카스텔라 그리고 울릉도 마른오징어.

아플 때면 돈이야기 안 하고 뭐든 사주셨던 엄마.

아마 더 비싼 것도 사주셨을지 모르지만 난 내 맘 속에 적정선을 그었던 것 같다.


지난주 둘째가 컨디션이 나빠서 피곤해할 때 나도 모르게 빵집으로 달려가 카스텔라를 사고 마트에서 바나나를 사고 부드러운 오징어를 사면서 빙그레 웃음이 났다.


사랑 안 해주고 표현 안 해주는 엄마였다고 마음 한편 서운함이 컸지만 기억조각 너머의  엄마는 늘 다섯 딸들에 최선을 다하셨었다.

내가 다섯 아이의 엄마라면 나라고 어찌 하나하나 잘 살폈겠는가 감당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그저 엄마에게 죄송한 맘뿐이다.

파머스마켓 토마토



둘째는  학교로 돌아갔고 지금 냉장고엔 카스텔라가 있고 싱크 위엔 바나나가 있다.


이마를 짚어주시던 아빠의 따듯한 손길이....

뭐든 사라고 좋아하는 것을 사주시던 엄마의 포근함이...

없는 지금 나는 아프다.


큰애가 작은애와 만나서 파머스 마켓에서 장을 봤다고 보내온 포도사진이 흐드러지게 달게 보이고 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들이 싱싱하고 달콤하겠지만

나는 지금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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