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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지 Nov 13. 2024

총각김치가 익었을 때 사랑고백을 받았습니다.

남편은 푹 익은 김치를 싫어합니다.

겉절이처럼 풋내 나는 막 무쳐낸 새 김치를 좋아하는 남편에게 적당히 익을 무렵의 총각김치를 내어줬을 때 행복해하는 남편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좌로는 섞박지와 우로는 총각김치 센터엔 마늘장아찌와 파란 시금치무침이면  남편은 웃습니다.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이걸 안 해줬는지 괜스레 미안한 맘도 듭니다.


정성이 가득한 남편만을 위한 김치를 내어놓기까지 나도참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엄지 척을 연신하면서 밥 한 그릇을 비워내는 남편을 보니 세월을 담은 미소가 아련합니다.


남보다도 못하고 밉고 싫기만 하던 남편이 김치하나에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나를 냉정한 사람이었다 책망하는 것 같아 못 본척해봅니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며 길이 좁아져 앞서가는 남편의 뒷모습이 그림자로 길게 늘어져가고  찻길을 달리는 자동차들 소리에 섞인 남편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 우리 와이프 사랑해! 저녁 잘 먹었어 너무 고마워!"


'총각김치가 별거라고.. 총각김치 하나 때문에 사랑이 나오고....'

불평하듯 말하는 나와  남편뒤로 달빛이 따라옵니다.

이젠 내 마음도 괜찮습니다. 매일 더 나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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