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한 날 아침, 즉흥적으로 남편이 카페에 가자고 할 때가 있다. 대체로 따라 나가지만, 집에 머무르고 싶은 날도 있다.
평소처럼 토스트 한쪽과 블랙커피 한 잔으로 간단히 아침을 하고 각자 편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럴 때 나는 가만 앉아서 책을 읽거나, 생각을 하거나 하는 시간을 가진다.
(얼마 전 갤럽의 강점혁명 검사를 했는데, 강점 1순위로 ‘지적사고‘ 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 테마를 가진 사람은 아무튼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밍밍해 보이기는 하지만 나의 최애 활동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
뭔가 뚜렷한 계획이 있지 않은 이상, 남편의 제안을 거절하기가 어렵다. 그가 카페를 가자는 데는 나들이 겸 데이트 겸 아침 겸 복합적인 이유에 더해 내가 카페를 좋아한다는 것도 크게 작용하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을 아니까 ‘집에서 쉬고 싶은데’라는 사유로 제안을 거절하는 것이 미안하게 느껴진다. ‘고작‘ 쉰다는 일로 거절하는 것이 충분한 사유가 아니라는 내 안의 판결이 먼저 따른다. 게다가 평소 집에서 쉬는 시간을 많이 가진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이다.
다만, 여기서 한번 짚어봐야 할 것은, 나를 위해 제안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에 대해서이다. 정말 상대가 나를 위해서 카페에 가자고 한 것일까? 혹은 그 의도가 어느 정도일지는 당사자에게 묻지 않는 이상 정확히 알 수 없다.
상대방의 의도와 바라는 바를 나름 잘 느끼는 나는 그 마음에 동조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안함을 크게 가진다. 상대방이 느낄 실망, 아쉬움, 무안함, 당혹감, 의기소침 해지는 그런 감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그런 감정에 노출되는 일이 나로 인해 벌어지는 것만큼은 무엇보다 막고 싶은 마음이 크다. 상대방이 불편한 감정을 겪지 않길 바라며 즐거움과 만족을 얻길 바란다.
동시에 나는 내 감정과 욕구에도 민감한 사람이라 그것을 무시하거나 억압하는 일이 쉽지 않다.
상대방의 바람과 내 바람이 상이하여 하나는 양보해야 할 때, 처음에는 상대방의 바람을 우선시할 때가 많다. 하지만 금세 반작용의 힘이 튀어오른다.
두 가지 상반된 욕구를 동시에 품는 것, 그것이 바로 갈등이다.
상대의 욕구에 맞춰주고 싶지만, 그와 상반되는 내 욕구도 중요할 때 갈등이 생긴다.
나는 처음 모습 그대로 쭉 상대의 욕구에 맞춰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도, 늘 처음에는 그렇게 하려는 것이 문제다.
내 욕구를 표현하기 힘든 상대라면 결국 그를 멀리하게 되고, 어느 정도 욕구의 핑퐁이 되는 사이여야 관계가 유지된다.
욕구를 잘 알아차리는 것과 표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서 상대에게 내가 원하는 바를 전달하는 것이 큰 과제이기도 하다. 상대의 바람을 들어주지 못하여 거절하거나 선을 긋거나 해야 할 때, 때로는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 울먹이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관계를 좋게 하려는 의도가 양날의 검이 되어 돌아온 격이다. 나를 죽이며 잘 지내는 관계란 있을 수 없다. 서로의 욕구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노'가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때로는 '예스'보다 진심 어린 '노'가 더 깊고 단단한 관계를 만든다는 것을 배우는 중이다.
왜 "노"라고 말하고 싶은데도 "예스"라고 말하나?
자신이 원하는 것은 제쳐두고 남들의 계획, 선택, 원하는 것을 했던 때를 기억해 보라.
그렇게 했을 때 당신은 어떤 느낌이 들었는가?
스스로에 대해서 어떻게 느꼈는가?
원치 않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은 없었는가?
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포기했는가?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무엇을 얻기를 희망했는가?
<에니어그램의 지혜. 9유형 연습문제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