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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 Aug 10. 2024

이른 출근길

2024.06.10. 월

2024.06.10. 월     

이른 출근길.

신호등 앞에서 딱 마주친 눈빛.

사방을 둘러보아도 차는 보이지 않는다, 비록 빨간불이지만.

건넌다, 모르는 체.

알아도 모른다.

콘크리트 옹벽의 손톱만 한 구멍, 그곳으로 얼굴 내민 부잡한 꽃.

밤새 임 찾아 내려왔다 다시 돌아갈 힘 떨어져 잠시 쉬고 있는 달팽이.

초등학교 담에 초등학생 닮은 재잘대는 포도알.

너희들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말아라, 비밀.    

 

열 번째 역에서 내려, 한자 간판들을 지난다.

어지럽게 널려있는 담배꽁초들, 다양한 얼굴들.

밤을 꼴딱 새웠을 피곤함과 새날을 시작하는 바쁜 발걸음이 교차한다.     

교무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선다.

창문을 열고, 진득한 공기들을 밀어낸다.

묵직한 가방에서 나오는 실내화, 세면도구, 책, 필기구.......

제자리 잡아 정리하고, 책을 편다.


“범계중에 계셨어요? 거기와는 조금 다를 거예요.”

교실의 절반은 중국 또 절반은 러시아, 가뭄에 콩 나듯이 한국 아이라며.

아이들은 순진하다, 한국어를 모르는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며 8시도 못 되어 교실로 뛰는 선생님.

바짝 긴장된다, 휴대폰부터 진동으로.     

꼬리 물고 들어오는 선생님들의 활기찬 인사말, 반듯하게 생긴 얼굴들. 

오늘 처음 학교에 오는 미술 선생님과 함께 각 학년 교무실을 들러 인사를 하고 교장실로.

“우리 아이들이 좀 다릅니다. 수준에 맞춰 잘 알려주시고, 인성적으로도 잘 보살펴 주십시오.”

음료수를 내미는 교장 선생님은 완전 을이다.     


교무실은 다양한 동네 말씨가 섞여 있다.

“적응반 수업 때문에 김밥을 사 왔거든요. 맛있어 보여요.”

“빨리빨리 오세요. 안 오시면 미워요.”

경상도 아지매의 애교 넘치는 투정.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이는 아이를 앞에 세우고 급하게 굳어지는 말씨며 표정.

아마도 학생부장님인가 보다.   

  

수업 시작 5분 전, 가느다란 떨림. 

복도에는 아이들로 가득하다.

새로운 얼굴에 호기심을 보이는 아이들이 웃으며 다가온다.

첫 반, 4반.

칠판에 쓴 내 이름을 읽을 줄 안다.

수업해야 할 쪽을 펴고 문제를 읽는다.

등식, 부등식, 방정식, 삼각형, 정삼각형, 둘레, 길이.........

잘 따라 오는 몇, 텅 빈 눈 뒤의 얼굴 몇, 고개를 묻는 둘.

열 명이 조금 넘은 교실이 꽉 찬 느낌이다. 

수학이 문제가 아니라 용어에 대한 설명이 급하다.

아주 천천히, 목소리는 높게, 알아듣는지를 송곳처럼 날카롭게, 땀나게 열심히.

수시로 손을 들어 이해했는지를 확인하며.

내가 멕시코에서 수학 수업받으면 아마 이럴걸. 

세 문제를 풀었더니 종이 울린다.     


세 번째 반, 1반.

외모로는 완전 러시아 둘, 중앙아시아 쪽 셋, 중국 동남아 정도 팔, 한국 얼굴 넷, 왜 이렇게 이쁘고 잘생겼나?

양쪽이든 한쪽이든 한국 이외 나라의 부모님인 상황.  

또록또록 여문 눈망울, 알아먹었다는 격한 반응.

혹 엎드리는 친구가 있으면 깨우고, 곤란한 표정의 아이를 보면 아직 한국말이 서툴다고 거들기도 하고.

최고의 반이라고 엄지를 세워주었더니 완전 환호성이다.

수업이 끝나자, 대여섯 명이 문 앞에 서서 배웅한다.

이거 너무 정들면 또 힘들어지는데.     

매운 설렁탕에 배부르게 점심을 먹고, 책을 보고 있다.

퇴근 시간까지 죽치고 에어컨이나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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